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가 푸는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 문학 작품들 간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연재인데, 이번에 비교해본 건 괴테의 <파우스트>와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이다. 투르게네프가 제사로 쓴 괴테의 <파우스트> 인용은 민음사판에서 가져왔다. 작가정신판에서는 같은 구절을 "너 자신을 거부해라, 스스로의 욕망을 굴복시켜라"라고 옮겼다(괴테의 <파우스트>에서의 번역도 번역본마다 조금씩 다르다).
중앙선데이(13. 12. 15) 욕망을 … 채울 것인가, 참을 것인가
괴테가 남긴 세계유산 『파우스트』의 주제는 무엇일까? 작품의 서곡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파우스트는 “하늘로부터는 가장 아름다운 별을 원하고, 지상에서는 최상의 쾌락을 모조리 맛보겠다”는 사람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무한한 욕망의 화신인 것이다. 괴테는 결국 그런 파우스트의 온갖 방황과 편력을 긍정한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을 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투르게네프가 쓴 중편소설 『파우스트』(1856)의 제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더라도 포기하고 체념하라는 명령이다. 원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이 대사는 파우스트가 자신의 서재를 방문한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하는 말이다. 학자로서 평생 절대적인 인식을 위해 철저히 공부하며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탄식하는 인물이 파우스트다. 나이는 어느덧 50대 중반.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젊었다.” 그래서 파우스트는 이렇게 묻는다. “세상이 이런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파우스트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부족해도 참아라!” 그런 포기의 명령과 체념의 권유가 바로 세상의 ‘영원한 노래’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명령을 따르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에 나서는 동기다. 즉 지상에서는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온갖 욕망을 이루어 주는 하인이 되는 대신에, 사후에는 거꾸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종이 되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영혼을 팔아넘기는 계약의 원형이 되는 이야기가 완성된다.
괴테가 1808년 발표한 『파우스트』 1부가 1840년대에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에 대한 평론도 발표한다. 괴테의 예찬자였던 투르게네프는 젊은 시절에 『파우스트』를 탐독하며 거의 암송하기까지 했다.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에서 화자 파벨 알렉산드로비치의 고백은 곧 작가 자신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파우스트』를 암송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싫증나지 않았다.”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는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서간체 소설이다. 『파우스트』의 주제를 염두에 두면서 형식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가져온 셈이다. 작품의 배경은 1850년 여름. 서른다섯 살의 파벨이 9년 만에 자신의 영지로 돌아오는데, 어느 날 대학 동창인 프리임코프를 이웃 지주로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가 바로 자신이 예전에 사랑했던 베라 니콜라예브나라는 걸 알게 된다. 외가 쪽으로 이탈리아인의 피가 흐르는 베라는 어머니 옐초바 부인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옐초바 부인은 공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여 딸에게 문학 작품에 대한 독서를 금지한다. 어머니의 엄격한 지도로, 베라는 스물여덟 살에 이르렀는데도 여태 단 한 권의 소설, 단 한 편의 시도 읽지 못했다.
그런 베라에게 파벨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가져다 낭독해 준다. 과거 베라에게 구혼했다가 옐초바 부인에게 거절당한 데 대한 일종의 복수였을까? “드디어 당신 딸에게 금지된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라고 파벨은 으스대지만 상황은 예기치 않게 진행된다. 『파우스트』가 베라의 잠자던 영혼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 『파우스트』를 읽어 주면서 파벨은 다시금 베라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베라 역시 강렬한 정념에 사로잡힌다. 베라에게 잠재돼 있던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베라는 파벨에게 “난 당신을 사랑해요, 사랑에 빠져 버렸어요!”라고 먼저 고백한다. 그러고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라고 대담하게 묻는다. 파벨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투르게네프의 독자라면 아마 예견할 수 있으리라. 강한 여주인공들에 비해 언제나 우유부단했던 남자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된다. 파벨은 당황한 나머지 머뭇거리다가 명예를 아는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대답한다. 떠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어 버린 것 아닌가. 두 사람은 『파우스트』 낭독회를 갖곤 했던 정자에서 만나 서로 포옹하지만, 바로 그 순간 베라가 어머니의 유령을 보고는 창백해진다. 결국 두 사람이 나눈 키스는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가 된다. 베라는 그날 이후 일주일간 앓다가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다시금 작품의 제사로 돌아가 보자. “부족해도 참아라!”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이 명령에 대한 불복이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에서는 그 명령이 이야기의 결론이 된다. 마지막 편지에서 파벨은 어린 시절 장난으로 꽃병을 깨뜨렸던 사건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봐라!”며 나무랐다. 괴테의 『파우스트』와는 반대로,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를 지배하는 음조는 욕망의 예찬이 아니라 욕망의 금지였다.
13.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