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중앙선데이에 실은 '로쟈가 푸는 '문학을 낳은 문학''을 옮겨놓는다(편집부의 손을 거친 원고다). 이번에 다룬 작품은 '체호프판 <햄릿>'으로서의 <갈매기>이다.

 

 

 

중앙선데이(13. 11. 17) 비극보다 더 잔혹한 희극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희곡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놀랍진 않다. 다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심지어 햄릿은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유명하다는 주인공 아닌가.

 

 



그럼 두 번째로 많이 공연된 작품은? 이건 정확한 통계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라고 한다. 아마도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유명한 극작가의 대표작이니만큼 의외라곤 할 순 없다. 흥미로운 것은 『갈매기』가 ‘체호프 판 『햄릿』’이라는 점이다. 『햄릿』의 핵심 테마를 체호프적으로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 무엇이 『햄릿』의 테마인가? 읽으면 읽을수록 복잡한 작품이지만, 보통 시해당한 부왕 햄릿에 대한 아들 햄릿의 복수를 계속 지연시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이 비극의 무게중심에 있다. 흔한 ‘복수극’이면서 동시에 이례적인 ‘복수 지연극’인 것이다. 부왕 햄릿이 살해당하자 왕위는 그 동생 클로디어스에게 넘어간다. 클로디어스는 국정을 정상화한다는 명분으로 형수인 거트루드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린다. 졸지에 숙부를 계부로 갖게 된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의 처신이 못마땅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는 그런 어머니를 비난하는 독백에 나온다. 햄릿에게 어머니는 애증의 대상인 것이다.

체호프의 『갈매기』에는 부왕의 유령도 등장하지 않으며 아버지의 복수도 펼쳐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햄릿』을 떠올리는 건 주인공 트레플료프와 그의 어머니 아르카지나의 관계 때문이다. 아르카지나는 한때 유명했던 여배우로 중년이 된 지금은 연하의 소설가 트리고린을 정부로 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던 트레플료프이지만 성인이 돼서도 그 갈구는 충족되지 않는다. 1막에서 아마추어 극작가인 자신이 쓴 희곡에 대해 어머니가 맘에 들어 하지 않을 거라고 트레플료프가 투덜거리자 옆에서 듣던 숙부가 그렇지 않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때 트레플료프는 꽃잎을 하나씩 뜯어내면서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어머니의 사랑을 점친다. 아들의 핵심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관심인 것이다.

트레플료프는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나르시시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스물다섯의 장성한 아들이 옆에 있으면 아르카지나는 아직도 서른둘로 보이는 ‘여배우’가 아니라 마흔셋의 ‘어머니’가 된다. 여전히 여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누리고 싶어 하는 아르카지나에게 아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차라리 어머니가 평범한 여자였다면 아들은 더 행복했을 것을, 트레플료프는 비참하기만 하다.

 

 



그런 아들과 어머니가 『갈매기』에서 주고받는 첫 대사가 바로 『햄릿』의 3막에 나오는 햄릿과 거트루드의 대사다. 어머니의 침소를 찾아와 부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숙부와 결혼한 행실을 맹비난하는 햄릿에게 거트루드는 말한다. “내 아들아! 너의 눈이 내 영혼 깊은 곳을 보고 있구나. 내 영혼이 상처 입고 피범벅이 되어 있는 모습이 나에게도 보이니 구원받을 길은 없구나!”

아르카지나가 이 대사를 반복하는 것은 아들의 시선에서 트리고린과 거리낌 없이 동행하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읽었기 때문이리라. 이에 대해 트레플료프는 역시나 햄릿의 대사로 받는다. “어찌하여 당신은 악덕에 몸을 맡기셨나요? 어째서 그런 죄악의 심연에서 사랑을 찾았나요?”

어머니에 대한 트레플료프의 원망은 과연 어떤 행동으로 이어질까? 『햄릿』을 닮았다면 『갈매기』 역시 비장한 결말로 끝나야 할 테지만 정반대다. 체호프는 『갈매기』가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희극으로 공연했을 때 성공한 사례가 드물어서 『갈매기』의 희극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는 난제이지만, 햄릿과 트레플료프의 비교는 시사해 주는 바가 적지 않다. 햄릿은 우유부단함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인물이지만 결국엔 부왕의 복수를 결행한다. 그러나 트레플료프는 자살 시도도 처음엔 실패하고 트리고린과 결투하겠다는 의지도 말로만 떠벌리다 만다. 오히려 그가 사랑하는 이웃 처녀 니나마저 트리고린에게 빼앗기는 처지가 된다.

배우 지망생인 니나는 트레플료프가 쓴 연극의 주연으로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그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니나는 유명 작가에 대한 선망 때문에 트리고린을 사랑하게 되고 그와 동거하여 아이까지 낳는다. 하지만 아이는 죽고, 사랑이 식은 트리고린은 옛 애인 아르카지나에게 다시 돌아간다. 그럼에도 지방 공연을 전전하던 무명배우 니나는 2년 만에 다시 만난 트레플료프에게 배우로서의 자부심을 토로함과 동시에 트리고린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고백한다. 잔인한 일이지만 트레플료프는 어머니의 사랑과 애인의 사랑 모두를 트리고린에게 빼앗긴 셈이다. 그것도 완벽하게.

결국 트레플료프는 자살한다. 그의 자살은 무대 위에서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총성만 울리는 것으로 처리된다. 이렇게 체호프의 희극은 셰익스피어의 비극보다도 더 잔혹하다.

 

1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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