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는 어제 지젝의 방한 첫 강연이 있었다. 일정 때문에 가보진 못했는데, 내일자 경향신문의 '동행 인터뷰'를 보니 이번 세 차례 강연에 8000명이나 신청했다고 한다. 이택광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 가운데 관심 있는 대목을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42154465&code=960201&nv=stand 참조).
이택광=알랭 바디우는 낡은 것으로 간주되어온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재사유하면서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내자고 했다. 당신도 의기투합해 바디우와 함께 런던, 뉴욕, 베를린에서 ‘공산주의의 이념’ 콘퍼런스를 열었다. 이번 서울 콘퍼런스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젝=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이번 행사는 내게 ‘철학적 콘퍼런스’라는 것이다. 네팔의 ‘공산주의자 친구’들이 어떤 구체적인 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논하려는 자리가 아니다. 바디우나 내게 이 콘퍼런스는 ‘영원한 이념’ 같은 근본 문제를 따지는 자리다. 공산국가는 몰락해도, 공산주의는 살아나곤 하는 보편적 이념이다. 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난해 6월 서울에서 만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 이익과 직업이나 지키려는 멍청한 노동자들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삶의 방식을 지키려는 것임을 깨닫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관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이들의 투쟁에 담겨 있다. 공산주의의 소생은 하트와 네그리가 말했던 ‘공통적인 것’과도 관련 있다. 우리가 공유하는 실체인 자연이나 대중교통, 전기 같은 시설이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사유화에 대해서는 폭력적 수단을 써서라도 저항해야 한다.
이택광=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것은 다양하다. 한국에선 북한을 떠올리곤 한다. 한국은 오랜 기간 냉전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 있어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직된 태도가 남아 있다. 물론 과거 역사적 공산주의를 실패한 기획이기 때문에 아예 논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많다.
지젝=북한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를 언급도 잘 하지 않는다. 기이한 체제를 유지하는 북한에서 볼 수 있는 건 군사적 애국주의뿐이다. 이것을 두고 단순히 “호호호” 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마르크스를 인정하지 않아. 그러니까 더 이상 우리의 문제가 아냐”라고 쉽게 받아들여선 안된다. 역사의 교훈은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20세기 공산주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아주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패의 지점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젝은 북한이 유튜브에 올린 선전 동영상을 거론하며 “‘우리 위대한 지도자’가 어쩌구 하는 부분을 잘라서 보면 서구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해 꽤 괜찮은 분석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지난 3월 타계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두곤 이런 비유를 했다. “그는 ‘돈 많은 카스트로’였다. 그가 한 일이라곤 돈을 뿌린 것뿐이다.” 쿠바식 공산주의를 베네수엘라에 이식하려 한 차베스의 시도를 비꼰 말이었다.
이택광=바디우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까다로운 주체>를 쓸 때만 해도 바디우에 비판적이지 않았나. 지금은 충실한 사도인 것 같다. 철학적 견해는 다르지만, 정치적 입장에서 바디우가 공격 당하면 그를 옹호하곤 했다. 친구이면서 라이벌 관계인 것 같은데.
지젝=그와 나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대 처음 만났는데, 당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좋아하지 않았다(웃음). 비판도 많이 했다. 바그너에 관한 것은 ‘무조건’ 통한다. 바디우가 <바그너는 위험한가>(북인더갭)를 썼을 때 발문도 썼다. 포스트모더니즘 흐름의 한 부분이 되지 않으려 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그와 차이점도 있다. 그에 대해 놀랐던 건, 프랑스 엘리트들은 미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타이타닉>을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한 걸 이야기하면, 메릴 스트립이 나왔던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웃음).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플라톤은 <국가>에서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시보다 철학의 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바디우는 시와 철학의 화해를 시도한다. 바디우는 시적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시가 진리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본다. 역사적 사건을 봐도 대부분 전체주의자들은 예술에 대해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시적인 열정이 좋은 결과를 초래한 적이 없다. 시를 지나치게 찬양하면 문제가 생긴다(웃음).
이택광=국가에 관한 입장은 상반되어 보인다. 바디우가 국가의 상징성에 주목한다면, 당신은 국가를 변화하는 현실적 토대로 여기는 것 같다. 또 국가가 완벽하게 기능하는 것일 수 없다고도 생각하는 듯하다.
지젝=이번 행사를 두고 말하자면, 바디우와 나는 국가에 관한 시각이 다르다. 바디우는 반(反)국가주의자다. 그는 국가 자체를 타락한 것으로 본다. 한편 그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국가라는 문제에 집중한다. 전형적인 프랑스 좌파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당분간 인류 사회가 존재하는 한 국가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국가를 없애지 못할 것이다.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공산주의의 이념을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는 하나의 도구나 물질적 토대라는 측면이 있다. ‘저기 있는 국가’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국가는 적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사회 안에, 시스템에 있다.
이택광=한국인들은 자신이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다고 생각하고, 또 탈이데올로기적인 삶일수록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도발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그 점에 매료된 것 같다. 당신은 한국에서 인기가 좋다. 세 차례 예정된 당신의 대중 강연에 8000명이 신청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1800페이지 분량의 <헤겔 레스토랑> <라캉 카페>(새물결)도 초판이 열흘 만에 다 나갔다고 들었다.
지젝=고마운 일이다. 한국인들이 날 왜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겠다. 얼마 전 번역본을 받았다. (두꺼워서) 책장을 채우기 좋은 책이다(웃음).
12. 09. 25.
P.S. 이번 방한에 맞춰 몇 권의 책이 출간됐는데,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이택광 교수의 인터뷰집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자음과모음, 2013)도 그중 하나다. 연휴 전에 나온 <바디우와 지젝 현재의 철학을 말하다>(길, 2013)는 물론 <맑스 재장전>(난장, 2013)에도 지젝의 대담 내지 인터뷰가 포함돼 있다. 가벼운 분량의 책들인 만큼 무거운 책(책장을 채우기 좋은 책)들과 씨름하기 전에 워밍업 삼아 읽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