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모이는 추석 연휴에 읽어볼 만한 책이 없을까 둘러보다가, 일단 두 권을 골랐다. 좀 껄끄러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아파트'와 '부채'를 주제로 한 책들이다. 먼저, '디자인 연구자'라는 직함보다는 '아파트 연구자'가 더 와 닿는 박해천의 신간이 나왔다.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 2013). 화제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2011)에 뒤이은 한국사회 자화상이다. 아파트 관련서로는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현암사, 2013), 박철수의 <아파트>(마티, 2013) 등 주요 저작이 연이어 나온 상태다.
디자인 연구자에게 아파트란 어떤 의미일까. 저자도 이런 질문을 의식하여 머리말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아파트에 대한 첫 번째 책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출간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디자인 연구자가 어쩌다가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였다. 내 답변은 한결같았다.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는 사실상 중산층의 역사이고,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아파트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디자인 연구자로서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부제로 달고 있는 <아파트 게임>은 어떤 책인가?
한국인의 대표적 주거 공간 아파트,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꿈틀대는 중산층의 욕망과 삶을 그린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 책은 아파트의 역사와 동시에 형성된 한국 중산층의 역사와 중산층의 사회·문화적 욕망의 변화를 세대별로 나누어 심층 분석했다. 저자는 주택담보 대출로 허덕이는 하우스푸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대중문화에 갇힌 1990년대 신세대, ‘집’이 아닌 ‘방’을 전전해야 하는 청춘 세대의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중산층에 대한 전망과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중산층 독자들에겐 가장 '실감' 있게 다가갈 만한 인문서가 아닐까 싶다.
'아파트'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중산층 키워드가 '부채'다. 여러 수준의 부채가 있을 테지만, 거시적 차원에서 부채 문제의 전모를 들여다본 홍석만, 송명관의 <부채 전쟁>(나름북스, 2013)도 일독의 여지가 있다.
부채 전쟁은 국내적으로는 감세와 증세, 연기금의 적립과 금융시장 투여 및 연기금 부채의 처리, 임금의 인상과 삭감 등 누구에게 부채를 쌓고 어떻게 갚을지 결정하는 가장 첨예한 계급 간 전투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금리, 통화와 환율, 무역, 국가 채무를 놓고 벌이는 국가 간 중단 없는 전쟁이다. ‘손실의 사회화’를 둘러싼 부채 전쟁의 시작과 끝은 결국 이 경제 위기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자 그대로 계급투쟁이다. 이 책은 현재 자본주의가 마주한 거대한 변화를 빚, ‘부채’라는 키워드로 성찰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발생한 부채 전쟁의 역사와 ‘채권 지배’ 사회가 전개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미국, 유럽, 한국에서 최근에 발생한 경제 위기의 성격과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제윤경, 이헌욱의 <약탈적 금융사회>(부키, 2012)의 좋은 짝이 될 만한 책이다. 이론적인 성찰까지 겸하자면 크리스티안 마라찌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갈무리,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흠,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에서 '부채'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가 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를 '부채인간'으로 내모는 '부채전쟁'의 실상에 대해서,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에 대해선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대출자도 생각할 권리가 있다...
13. 09.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