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 아닌 얘기를 간단히 몇 자 적는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 보면, 책과 관련된 이런저런 리스트들을 보게 된다. 그게 '마이리스트'라는 건데, 내 생각에 그 '마이리스트'의 기본적인 기능은 '뚜쟁이'의 그것이다. 즉, 이 책과 연결/접속될 만한 '다른 책'을 소개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마이리스트라는 뚜쟁이는 수사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은유의 역할을 하기도 환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령, '나에게 감동을 준 책'이란 제하의 리스트를 만든다면, 거기에 묶인 책들은 순전히 '감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붙들려나온 은유적 계열체들이다. 반면에, '들뢰즈의 책들'이라든가 하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리스트들은(나는 이런 리스트는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검색어로 '들뢰즈'를 치면 되는 것을) 들뢰즈를 구성하는 환유적 통합체들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더 의미있는 리스트란 은유적인 리스트, 은유적인 짝짓기이다(그런 리스트에서 우리는 '타자'로서의 책과 대면하게 된다).
아쉬운 것은 그런 류의 마이리스트를 만나기란 아주 드물다는 것.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은유라는 것 자체가 '천재'의 소산이기도 하지만(다름 속에서 같음을 읽어내는 게 '천재'이다), 너무 범상한 리스트들만이 넘쳐나고 있는 것. 아직 한 건의 리스트도 만들어본 적이 없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넘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름대로 '마이리스트의 조건'이란 걸 생각해 보았다.
첫째, 10권 이상은 안 넘는 게 좋겠다는 것(맥시멈 20권). 가령 베스트5나 베스트10 같은 게 좋겠다. 무작정 늘어놓는 게 아니라. 리스트란 단순히 '목록'의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니라 '선정'이란 뜻도 내포한다. 허다한 책들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권할 만한 책들을 꼽아보는 것. 그럴 경우, 너무 많은 '목록'은 제 살 깎기 식의 목록이며, 스스로의 가치와 품위를 떨어뜨리는 선정이다. 그래서 리스트에 필요한 건 랭킹감각이 아닌가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만은 꼭!'이란 생각이 리스트에는 가미되어야 한다.
둘째, 코멘트는 반드시 붙여야 하다는 것. 이건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런 책을 꼽은 이유를 간략하게라도 제시해야 하는 것. 일반 연구서들을 읽다가도 그런 코멘트가 붙은 참고문헌 서지를 읽다 보면 간혹 감동하게 된다. 먼저 읽고 나서 나중에 읽을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정신, 그게 코멘트의 정신이다. 이 책은 이런저런 장단점을 갖고 있다든가, 어디에 핵심이 있다든가, 어떤 의의가 있다는가 하는 내용들이 코멘트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개인적 사연이라도('내가 어젯밤 밤새 읽은 책'이란 식으로). 그런 코멘트 달기가 요구하는 것은 일단 자신이 읽어본 책들에 대해 리스트를 만들라는 것이다(물론 '내가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란 주제의 리스트라면 예외이겠지만, 그 경우에는 왜 읽고 싶은지 코멘트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너무 상식적이거나 상투적인 리스트는 곤란하다는 것. 어떤 분야별 리스트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런 목록은 클릭을 몇 번 하면 찾아볼 수 있는 목록이다. 해서 필요한 건 '창의성'이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지역'으로,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고자 하는 서비스 정신(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스토커>에서의 주인공처럼). 이왕이면, 그런 정신이 담겨 있는 리스트를 '읽고' 싶다. 그냥 '보는/보여지는' 리스트 말고.
이렇듯 조건을 몇 개 달아놓았으니 조만간 나서서 시범이라도 보여야 할 판이지만, 언제일는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그저 동의하시는 분들의 동참이 있으시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