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26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교양인, 2013)을 읽고 적었다. 전작 <전쟁과 선>(인간사랑, 2009)와 같이 읽어도 되고 따로 읽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전쟁과 선>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건 지젝의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인간사랑, 2004)에서였던 듯하다... 

 

 

 

주간경향(13. 05. 21) 일본 군국주의와 선불교는 어떻게 결합했나

 

미국의 불교학자이자 승려이기도 한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은 불교에 대해서, 더 넓게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원제는 <선과 전쟁 이야기(Zen War Stories)>로 전작 <전쟁과 선>(인간사랑·2009)의 속편이다. 전작은 일본의 고명한 선승들이 군국주의와 전쟁의 열렬한 지지자였다는 걸 폭로하여 일본뿐 아니라 서양의 선 수행 공동체에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하지만 저자의 초점은 폭로가 아니라 불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법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엄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특정 선사가 군국주의자들과 맺은 관계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자는 먼저 일본의 많은 선불교 지도자들이 1930∼1940년대에 선을 무엇이라고 믿고 이해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설명해준다. 일례로 나카지마 겐조 선사는 15세에 정식으로 승려가 된 인물로 21세 때 자진해서 입대하여 일본제국 해군에서 약 10년간 복무했다. 그가 80세를 넘기고 쓴 회고록에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경험담이 포함돼 있는데, 전우들의 비참한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 깊은 슬픔을 느끼면서도 일본의 공격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고통에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겐조 선사는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대동아전쟁의 잘못은 전쟁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패배에 있는 것처럼 기술했다.

이런 태도는 겐조 선사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그의 스승인 야마모토 겐포 선사의 설법에 따르면 “절대자인 부처님께서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자들이 있을 때 그들을 죽이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듯 깨달은 사람들은 선악과 생사를 초월한다는 선불교의 믿음이 겐조 선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과적으론 이기주의적 무관심을 낳았다.

 



선악과 생사의 초월이 선 수행자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선불교와 군국주의가 자연스레 결합될 수 있는 배경인데, 1942년 당시 ‘전쟁의 신’으로도 불렸다는 육군 장교 스기모토 고로는 자신에게 선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백하면서 “선이 군인에게 필요한 이유는 일본인, 특히 군인이 모두 자아를 없애고 자기를 제거하여 군신일여(君臣一如)의 정신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미천한 나 자신을 버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사생관이 천황 숭배와 결합되면 그 결과는 가공할 만한 것이 된다.

전쟁 말기 일본 선불교의 지도적 인사들은 천황폐하의 1억 신민은 모두 명예로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적이 보이면 죽여야 한다. 거짓을 타파하고 진실을 확립해야 한다. 이것은 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면서 모든 국민이 결사항전에 나서는 ‘국민 절멸 체제’를 정당화했다. ‘나’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은 마당에 적의 생명이 중요할 리 없었다. 군인의 최고 영예는 죽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살아서 포로로 잡히는 일은 가장 큰 치욕이었다. 일본군이 전쟁포로들을 유난히 경멸하고 학대한 것은 그런 이유, 곧 그들이 명예롭게 죽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천황을 모시는 ‘황도 불교’가 궁극에는 ‘불교 파시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저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의 정립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것은 민족적 정체성이나 국가적 정체성 혹은 종교적 정체성을 초월하는 윤리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윤리다. 비단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인이라면 온갖 ‘성전(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13.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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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별 2023-01-07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러시아문학에 관한 선생님의 강연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올해도 더욱 건강하시고 다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로쟈 2023-01-08 21:0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