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철학책들이 연이어 나왔다. 물론 철학 쪽만은 아니다. 역사나 사회과학 분야로도 묵직한 책들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는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란 염려다. 그래도 염려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이주의 저자'는 이 철학자들이다.

 

 

먼저 일본의 헤겔학자 하세가와 히로시의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도서출판b, 2013)이 출간됐다. '헤겔총서'의 셋째 권인데, 먼저 나온 <헤겔>과 <헤겔의 서문들>과 마찬가지로 이신철 박사의 번역이다. 현재까지는 1인 번역 총서인 셈이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언젠가 혁명적인 <정신현상학> 번역으로 국내에서까지 화제가 됐었는데('읽을 수 있는 헤겔'이 그 혁명의 목표이고 결과다), '옮긴이 후기'를 보니 그게 1998년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 그는 <철학사 강의(전3권)와 <역사철학강의>, <미학강의>를 차례로 옮겼고 <정신현상학> 번역으로 독일 정부로부터 레싱번역상까지 수상했다고(한국어 헤겔 번역 현황에 견주어 부러운 일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은 새로 번역한 <정신현상학>을 토대로 쓴 것으로 1999년에 나온 책이다. <정신현상학>에 대한 해설서나 입문서는 몇 권 나와 있지만, '헤겔 번역 혁명'은 가져온 저자이기에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아예 하세가와판 <정신현상학>을 중역하는 건 어떨까란 생각도 든다).

 

   

두번째 저자는 폴 리쾨르로 <해석의 대하여>(인간사랑, 2013)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다. 부제는 '프로이트에 관한 시론'으로 1965년에 나온 책이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번역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대작이 나왔다(언젠가 구해놓은 영어판 <프로이트와 철학>도 찾아봐야겠다). 이로써 리쾨르의 주요 저작 가운데는 <살아있는 은유> 정도가 아직 번역본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프로이트에 관한 책을 쓴다면 당연히 자크 라캉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해석에 대하여>에 대해 라캉은 별무반응이었다(고 읽은 것 같다). 이후엔 리쾨르도 라캉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던가). 정신분석가와 철학자의 차이로 일반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해석에 대하여>가 떠올려준 책은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고려원)이다. 그의 프로이트론을 담고 있는 책으로 오래전에 번역됐다가 '오역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고 지금은 절판된 지 오래다. 요는 이후에 아직도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의사소통행위이론>만큼 중요한 저작이라고 말들은 하면서도 아직까지 손놓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부분의 주저가 번역된 상태에서도 이 책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세번째는 미국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다. 현상학자로 메를로퐁티, 레비나스의 영역자로 유명한데, 1980년대 중반부터 독자적인 자기 철학은 전개하고 있다. 국내에는 <낯선 육체>(새움, 2006)가 소개된 적이 있고, 이번에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바다출판사, 2013)가 번역돼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성과 무한>, <존재에서 존재자로> 같은 레비나스 저작의 영역본을 통해 링기스란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역시나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 번역자인 서동욱 교수는 추천사에서 "링기스는 합리성의 배후에서 아무것도 명시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듯한 자들이 ‘죽음’과 같은 공동의 운명을 통해 꾸며가는 보다 심층적인 차원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밝혀낸다.(...) 링기스의 이 저작은 최근 낭시나 블랑쇼 등이 내놓은 공동체론과 더불어 반드시 음미되어야 할 공동체론이다."라고 적었다.

 

 

블량쇼와 낭시의 공동체론은 이미 번역돼 있다. 그렇게 셋을 한꺼번에 묶어놓을 수 있기에 알포소 링기스도 '이주의 저자'에 포함시켰다. 링기스의 근작은 <폭력과 영광>(2011)인데, 이 역시 관심이 가는 책이다. 흠, 이렇게 모아놓으니 다 읽으려면 한달도 부족하구나!..

 

13.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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