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 고고학 관련서가 두 권이다. 하나는 현대 고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고든 차일드(1982-1957)의 대표작 <인간은 인간 자신을 만든다(Man makes himself)>의 번역서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주류성, 2013). 고든 차일드란 인물이 생소한 사람도 '신석기혁명'이란 말은 익숙할 텐데, 바로 그 말을 만들어낸 학자가 고든 차일드이다.

 

 

뒷표지에 실린 저자소개를 보면(한국위키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명한 고고학자"로 "선사 시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사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또한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유럽과 범세계적인 선사시대 이론 개발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위대한 고고학자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1936년에 영국에서 초판이 발간됐고 1941년과 1951년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개정판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인류사의 전개>(정음사, 1959)라고 아주 일찍 나온 적이 있지만 일어본을 옮긴 중역판이었고 원문을 상당 부분 누락한 것이라 한다.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도 완역은 아닌데, 역자에 따르면 '8장 인류지식의 혁명'은 수학과 기하학에 관한 어려운 내용이어서 요약/정리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온 <인류사의 사건들>(한길사, 2011)과 함께 고든 차이들의 기본적인 생각과 입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요긴한 책이라 생각된다.

 

 

 

국내에도 고고학 관련서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보통은 학술서나 학술보고서이고 교양서로 읽을 만한 책은 드문 편이다. 이선복 교수가 쓴 <고고학 개론>(이론과실천, 1999), <고고학 이야기>(뿌리와이파리, 2005)가 모두 절판돼 쉬운 입문서는 없는 듯하고, 지금은 한국고고학회에서 엮은 <한국 고고학 강의>(사회평론, 2010)가 입문서 아닌 입문서 역할을 해주는 듯싶다(초급 전공서라고 해야 할까). 고고학의 매력과 모험을 다룬 책으론 C. W. 세람의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스티븐 버트먼의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루비박스, 2008)이 눈에 띄는 정도다.

 

 

한국고고학회에서 펴내는 책은 대부분 학술서이거나 학회발표문 모음집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주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몇 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다. <한국 농경문화의 형성>(학연문화사, 2002), <계층사회와 지배자의 출현>(사회평론, 2007), <국가형성의 고고학>(사회평론, 2008) 등이 거기에 속한다. 고고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 같은 책을 읽으면서 국가의 탄생 혹은 형성 문제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류학 관련서는 드문드문 읽었지만 사실 고고학은 나와 무관한 분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장담할 수 없는 게 세상이며, 하여간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든 차일드의 책과 함께 배송받은 건 웨난의 <진시황제의 무덤>(크림슨, 2008)이다. 웨난의 책은 꽤 많이 번역됐지만 다수가 절판된 걸로 보아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 듯싶다(그래도 <손자병법의 탄생>까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진시황제의 무덤>은 제목대로 진시황릉 발굴을 다룬 책인데,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중국 최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고고문학가"이다. 고고학자가 아니라 고고문학가(웨난은 62년생으로 생각보다 아주 젊다). 우리에게 이런 책이 없는 건 고고학자가 드물어서가 아니라 고고문학가가 없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현장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그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짚어주는 저자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싶다.

 

<진시황제의 무덤>의 머리말을 쓴 저우다커란 인물은 고고학이 학문임과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효과 또한 갖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우선 지역 관광산업을 발달시킨다. 진시황제의 병마용이 발굴되자 이 지역의 관광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그리고 둘째가 출판업과 영상업의 발전이다. 중국에서는 하이난출판사의 <고고중국(考古中國)>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문화 르네상스'로까지 이어졌다고. 우리도 참고해볼 만한 사례다.

 

 

<고고중국>이 중국의 10대 유물 발굴을 다룬 시리즈라고 하는데, 거기에 견줄 만한 책은 패트릭 헌트의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오늘의책, 2011)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들'이 부제. 그 10가지 발견이 각 장의 테마다.

제1장 로제타스톤 -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풀어준 열쇠 
제2장 트로이 - 호메로스와 그리스 역사의 열쇠 
제3장 아시리아 도서관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열쇠 
제4장 투탕카멘의 무덤 - 신격화된 이집트 왕의 비밀을 푸는 열쇠 
제5장 마추픽추 - 잉카 건축의 비밀을 풀다 
제6장 폼페이 - 로마인들의 삶을 보여주다 
제7장 사해문서 - 성서 연구의 핵심 
제8장 티라 - 에개해 청동기 시대의 중심 
제9장 올두바이 협곡 - 인류 진화의 열쇠 
제10장 진시황릉 - 증국 최초의 제국을 세우다

흠, 고고학 입문서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한국 고고학의 10대 발견은 무엇일까...

 

13. 01. 28. 

 

 

 

P.S. 고고학과 함께 고고학사도 일람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본 바로는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사회평론, 2010)이 교과서격의 책인 듯싶다. 국내학자들이 엮은 <인물로 본 고고학사>(한울, 2007)도 거기에 보탤 수 있다. 한국 고고학사에 대해서는 <일곱 원로에게 듣는 한국 고고학 60년>(사회평론, 2008)이 가장 유력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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