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프레시안의 제안에 따라 '3인 1책 전격수다'에 참여하게 됐다. 도서평론가 이권우 교수와 전직 영화잡지 기자이자 <범죄소설>(강, 2012)의 저자 김용언 씨가 수다의 나머지 멤버이다. 첫번째로 다룬 책은 도널드 서순의 <유럽 문화사>(뿌리와이파리, 2012)인데, 워낙 방대한 분량의 책이라 관심을 가진 분야만 발췌독할 수 있었다. 책 수다의 일부를 옮겨놓는다. 전문은 프레시안의 기사(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928124912§ion=04)를 참고하시길.
프레시안(12. 09. 28) 싸이, 모차르트가 될 수 있을까? "문제는 돈이야!"
이권우 : 이번 좌담을 준비하면서 <유럽 문화사> 다섯 권을 읽기 위해 시간을 한참 두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 한 권밖에 못 읽게 되더라고요. 목적 의식을 갖고 읽어도 이 책을 읽기가 쉽지만은 않구나, 그렇다면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땐 어떨까 싶었어요. 우리부터가 먼저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 얘기를 시작해보죠.
이현우 : 문화 사전 같다는 인상이 가장 큽니다. 사전을 누가 처음부터 마지막 쪽까지 다 읽겠어요. (웃음) 필요한 영역별로 그때그때 참조할 수 있는 사전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권우 : <유럽 문화사>의 장점이자 단점이, 연도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또 주제별로 나누어 기술됐다는 거죠. 주제별로 크게 분류되어있다면 그 흐름을 따라 죽 읽으면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두 가지 기능이 복합되어 있거든요. 게다가 다섯 권짜리 책이니 양도 만만치 않고요.
김용언 : 사전에 가깝지만, 일차적인 느낌은 서술 자체가 무척 평이하고 재미있게 쓰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200년의 문화사를 다룬다는 게 독자에게 많은 지식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는 사람이 무턱대고 책을 펼쳤더라도 그렇게까지 진입 장벽을 높진 않을 것 같아요. 문화의 각 분야 중 개인적 흥밋거리부터 천천히 읽어나가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요. 그래서 도널드 서순이 집필할 때 주된 독자층을 어떤 사람으로 상정하고 썼을지 좀 궁금했습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출판에 관련된 부분을 다루면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독자층의 변화를 일별하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 읽혀지기를 기대했을까요? 우리 같은 사람일까요? (웃음)
이현우 : 서순이 서문에도 썼지만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에 집중했죠. 출판, 음악, 영화 등이요. 그나마 미술을 뺐기 때문에 분량이 줄어들었는데, 그 많은 분야에 세부적인 디테일과 정보를 꼼꼼하게 제공하잖아요. 그게 재미있는 면인 동시에 읽기 힘든 면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문화사 서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흥미로웠어요. 중간 계급을 위한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19세기부터 시작됐는데 사실 정말 짧은 시간밖에 안 걸렸구나, 이게 우리의 전사(前事)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죠. 무척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어요.
이권우 : 저자가 책 제목을 <유럽 문화사>로 지은 것도 유의미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세계 문화사'라고 썼을 수도 있어요. 근대의 창출점이 유럽이었기 때문에, 사실 '근대 세계 문화사'라고 해도 크게 저항을 받진 않았을 텐데요. 굳이 자신의 지역적 특색을 정확하게 드러냈다는 건 어쨌든 20세기 후반 서구 지식 사회의 자기반성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유럽이라는 지역의 지난 200년을 탈식민주의적인 시선으로 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아요.
이현우 : 동아시아 쪽에서 독서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건 20세기가 넘어서부터죠. 유럽 쪽은 한 세기나 먼저 시작되었다는 시차가 존재합니다. 한국의 독서 시장에 관련해서는 천정환 교수가 쓴 <근대의 책 읽기>(푸른역사 펴냄)가 비슷한 콘셉트의 책입니다.
이권우 : <유럽 문화사>의 기본 테마가 서문에 잘 나옵니다. 정신사적 측면보다 사회사적 측면을 강하게 드러내지요. 15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지난 200년에 걸쳐 문화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한 셈이다. 바로 그 역사가 이 책의 주제를 이룬다." 이걸 놓치고 <유럽 문화사>를 읽으면 안 됩니다. 근대 문화가 결국 대량 소비 생산 체계를 구축한 근대 사회 체제와 일치하는 점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하지요.
이현우 : 문화는 생산되고 소비되는 상품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해요. 그런데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려면 시장이 있어야 하죠. 출판의 경우 책을 쓰는 저자가 있고 책을 만드는 출판업자가 있고 독자라는 삼박자가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 시장이 처음 형성되는 게 19세기부터인데, 그나마 규모까지 갖춰지는 건 19세기 중반부터지요. 그런 지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제목은 다소 평범하게 들릴 수 있는 <유럽 문화사>지만 개성을 갖고 있는 문화사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언 : 한국 독자 같은 경우 사실 '유럽의 문화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들의 역사를 왜 내가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이 책은 문화 생산의 최종 목표를 균질화와 확산이라고 정리하잖아요. 전 세계가 거의 균질한 문화를 흡수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건 하나도 없어요. 빅토르 위고의 소설부터 모차르트의 오페라까지, 우리는 그들의 역사와 생산물을 이미 내 것처럼 잘 알고 있어요. 서순이 의도했을 독자층에 동아시아 지역의 독자까지 포함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21세기의 아시아인이 읽었을 때 전부 이해가 가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결국 문화사의 진화와 확산의 최종 단계에 우리가 이미 포함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권우 : <유럽 문화사>를 읽다보면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일단 '사회사'를 강조하고 있잖아요. 하우저는 죄르지 루카치의 제자답게 계급성이나 사회의 역동성을 문화에 반영시켜 서술했죠. 도널드 서순의 경우 산업적 토대가 더 강조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근대 유럽 문화의 태동과 확산에 있어 부르주아의 역할이 컸다는 것도 강조하고요. 좀 더 정밀한 독서를 통한 비교가 필요하겠지만, 다른 측면이 분명 있어요.
이현우 : 독서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뿐 아니라 그 주변의 좀 더 넓은 계층들이 필요해집니다. 프티 부르주아부터 글을 읽을 줄 아는 노동자 계층까지, 문자 해득력을 갖춘 새로운 독서 대중이 필요하죠. 게다가 고등 교육도 필요해요. 고등 교육을 통해 배출된 어떤 독자층, 정확하게 부르주아와 딱 일치하지는 않지만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고 그들에 의해서 문화가 주도됩니다. 그들을 위한 문화인 동시에 그들이 향유하고 소비하는 문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정점에 올라갔는지의 과정은 정말 흥미로워요. 예를 들어 러시아만 해도 19세기 중반 문맹률이 95퍼센트 이상인데, 독자층이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데 문학 산업은 19세기 후반에 정점을 찍게 되죠. 거기에 견주면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시장, 출판 시장이 굉장히 큰데, 뭔가 배울게 있지 않은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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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