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휴가를 다녀오기 전에 '8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며칠 늦어졌다. 여름엔 더운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무더위가 독서의 호조건일 수는 없다. 내주엔 에어컨이 나오는 독서실에라도 다녀야 할 모양이다. 여하튼 올림픽 열기까지 겹쳐서 예년보다 더 덥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1. 문학  

 

김기현 교수가 추천한 문학서는 중국 작가 모옌의 <개구리>(민음사, 2012)다. <붉은 수수밭>(문학과지성사, 1997)으로 널리 알려진 모옌의 작품은 국내에 다수 번역돼 있는데, <홍까오량 가족>(문학과지성사, 2007) 등이 대표작이다. <개구리>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 지금까지도 중국인들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는 ‘계획생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고. 지명도만큼 많이 읽히는 듯하지는 않지만, 중국 대표 작가의 묵직한 소설을 여름나기용으로 손에 들어도 좋을 듯싶다.

 

 

 

한국문학도 몇 권 더 얹고 싶은데, 알라딘에서는 이미 마태우스님이 열광적인 지지를 표시한 심윤경의 <사랑이 달리다>(문학동네, 2012)와 함께, 내겐 언제나 '듀엣'으로 기억되는 두 작가 김애란의 <비행운>(문학과지성사, 2012)과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문학과지성사, 2012) 등이 가까이 잡히는 책들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책은 김경일의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푸른역사, 2012)다. "1920-1930년대 한국의 가족과 혼인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들을 살펴본 책"으로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푸른역사, 2004)의 속편격이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와 비슷한 모습이 많다고 하므로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거울로도 삼을 수 있겠다. 유광수의 <가족기담>(웅진지식하우스, 2012)는 시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을 들여다보다. '납량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이먼 블랙번의 <철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휴먼사이언스, 2012)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고전철학 교수인 저자는 일반 대중을 위한 교양서로도 유명한데, <생각>(이소출판사, 2002), <선>(이소출판사, 2004) 등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모두 절판됐고 나는 중고본으로 구했다). 서양철학사의 핵심적인 질문들이 무엇이고 철학자들의 대답은 무엇인지 일독해봄직하다.

 

 

개인적으로 하이데거의 책 몇 권도 도전해보고 싶다. <언어로의 도상에서>(나남, 2012)와 <근본개념들>(길, 2012), <종교적 삶의 현상학>(누멘, 2011) 등 밀린 책들이 많다. 선풍기 바람으로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사유의 무게를 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선택해볼 만하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조영달의 <고통의 시대 희망의 교육>(드림피그, 2012)이다. 제목에서 추정하자면 '고통의 시대'가 우리 시대에 대한 진단이고, 그런 가운데서도 '희망의 교육'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을 듯싶다. 저자는 "사회적 공존, 교육정의의 실현, 실패와 실험정신, 그리고 집단지성의 배양 등으로 교육목표를 재구성할 것을 제안하고, 교육행정과 교원양성제도, 학제의 개편에 이르는 광범위한 개혁을 제안"한다고. '희망의 교육' 하니까 프레이리의 <희망의 교육학>(아침이슬, 2002)이 생각난다. 예전에 사범대생들의 필독서였는데(그렇다고 들었는데)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에 대해서는 최근에 <파울루 프레이리 읽기>(우리교육, 2012)란 책도 나왔다.

 

 

'정치의 해'인 만큼 연이어 나오는 정치비평서들에도 눈길이 가는데, 이달엔 이택광 등의 <우파의 불만>(글항아리, 2012), 김기원의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 2012), 이진경의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문학동네, 2012) 등을 이슈로 삼아볼 만하다. <안철수의 생각>(김영사, 2012)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고...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지난달에 읽을 만한 책으로 골랐었던 존 퀴긴의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21세기북스, 2012)이다. 저자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것은 지금까지 주류 경제학계를 지배했던 시장자유주의의 경제사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므로 이를 과감히 수정하고 21세기 경제 현실에 맞는 이론과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제는 다르지만 세계 각국의 경제전망을 다룬 <브레이크아웃 네이션>(토네이도, 2012)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애플의 '전쟁'을 다룬 <디지털 워>(이콘, 2012) 같은 책도 관심도서로 눈길을 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과학책은 김추령의 <오늘의 지구를 말씀드리겠습니다>(양철북, 2012)이다. '과학으로 읽는 지구설명서'가 부제. 청소년을 대상으로 "황사, 슈퍼태풍, 이산화탄소, 해수면 상승, 남극 빙하와 북극해, 아프리카의 기아, 생물 종다양성, 에너지, 기후변화협약" 등의 내용을 쉽게 설명해준 책이다. 개인적으로 거기에 더 얹자면, 제시카 스나이더 색스의 <좋은 균 나쁜 균>(글항아리, 2012)와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다시 만들어진 신>(사이언스북스, 2012)도 손에 들어봄직하다. 복잡성 과학자인 카우프만의 책은 '좋은 삶'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이상과 현대 과학을 재통합하려는 시도로서 흥미를 끈다. 물론 도킨스라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을 만한 책이겠다. '자연의 신성'을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조선미의 <왕의 얼굴>(사회평론, 2012)이다. 저자는 이미 여러 권의 초상화 관련서를 쓴 전문가인데, 이번 책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의 군주 초상화를 삼국의 역사 속에서 바라본다". 왕의 얼굴, 즉 어진을 다룬 책은 더 있지만 한중일, 3국의 군주 초상화를 비교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이충렬의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영사, 2012)다. "<간송 전형필>을 통해서 우리 문화재 지킴이이면서 최대 수장가 간송의 일대기를 생생하게 되살린 저자가 이번에는 혜곡 최순우(1916-1984)의 생애를 <한국미의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담았다." 추천사는 이렇다.

저자는 혜곡의 삶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그가 남긴 모든 글을 찾아서 꼼꼼히 읽고 주변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상까지 자세히 살폈다. 그 노고 덕분에 한국 현대사 최고의 ‘박물관인’의 삶과 한국 박물관 100년의 역사가 눈에 잡힐 듯 펼쳐진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짝지어 읽으면 부듯한 ‘한국미 산책’의 시간이 될 듯싶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꼽은 실용서는 <텃밭정원 도시미학>(서울대출판문화원, 2012)다. '농사일로 가꾸는 도시, 정원일로 즐기는 일상’이 부제. "미학자부터 건축가까지 다양한 직종의 종사자들이 농사와 정원일의 가치를 조명했다."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뭔가 찾아봤더니 사토우치 아이의 <원예도감>(진선북스, 2010) 같은 책이다. 거기에 더 보태자면 로버트 포그 해리슨의 <정원을 말하다>(나무도시, 2012)는 인문적 깊이를 갖춘 정원 이야기이다.

 

 

10. 삼국지 

 

이달의 주제로는 '삼국지'를 고른다. 지난주에 삼국지에 대한 책 몇 권을 둘러보다가 아예 김구용 번역판 <삼국지연의(전10권)>(솔출판사, 2003)를 진수의 <정사 삼국지(전4권)>(민음사, 2007)와 함께 구입해버렸다. '삼국지 유해론'도 만만찮은 만큼, 해독제로 '정사'와 같이 읽어보려는 계산이다. 물론 굳이 <삼국지>까지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무더운 날씨 탓이 가장 크다...

 

12. 08. 04.

 

 

 

P.S. 8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다. <삼국지>를 고른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인데, 지난주에 '공포문학'에 대해 강의하면서 관련자료들을 좀더 모았다.

 

 

<드라큘라>는 펭퀸클래식판 외에 열림원판과 열린책들판을 갖고 있다. 거기에 코폴라의 화제작 <드라큘라>(1992)도 DVD로 구했다(거기에 벨라 루고시의 1931년작도 구했다). 드라큘라가 에어콘을 대신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여하튼 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자세, 혹은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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