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 토요판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몇 곳의 조사를 교정했다). 최근에 <햄릿>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어서 <햄릿>(동인, 2007)에 대해 적었다. 제1사절판(1603) 번역본이다.

 

 

한겨레(12. 03. 16) 햄릿 엄마의 근친상간 그것이 문제로다

 

세계문학의 대명사가 셰익스피어라면, <햄릿>은 셰익스피어 문학의 대명사다. <햄릿>만큼 널리 알려지고 그만큼 많이 읽히는 작품도 드물다. 놀라운 건 그만큼 난해한 작품도 드물다는 점이다. 이 난해함은 주로 부왕의 죽음에 대한 햄릿의 복수가 어째서 지연되는지 모호하기 때문에 빚어진다. 그래서 ‘복수극’보다는 ‘복수 지연극’으로 분류하는 게 더 적합하다. 이렇게 복수가 지연되기에 종결이 늦춰지고 극의 분량도 당연히 길어진다.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분량이 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무리 걸작이라고 해도 너무 긴 거 아닌가란 의문이 제기될 정도다. 전막을 그대로 공연하면 4시간이 넘어가는데, 이것은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의 통상적인 상연시간의 두배에 가깝다. 자연스레 갖게 되는 질문. 정말 그대로 공연됐을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햄릿> 판본사가 그걸 말해준다.

 

 


<햄릿>은 통상 1604년에 출간된 제2사절판과 사후에 나온 제1이절판을 절충하여 편집한다. 문제는 가장 먼저 1603년에 나온 제1사절판이다. 이것은 셰익스피어가 썼을 자필원고를 짧게 줄여 재구성했거나 출연 배우 몇 명이 기억을 되살려 만든 공연본이라는 게 학자들의 생각이다. 놀랍게도 이 판본의 분량은 다른 판본들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공연시간도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순회공연용’이었을 것으로도 추정되지만, 많은 오자와 함께 중요한 독백들이 생략돼 오랫동안 ‘저질 사절판’으로 평가절하돼 왔다. 다수의 <햄릿> 번역본들이 출간돼 있지만 이 제1사절판의 번역은 한 종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 ‘짧은 <햄릿>’의 미덕이 배우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간추린 <햄릿>’이기도 하다면 <햄릿>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판본들과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5막의 구성 대신에 17장으로 구성된 이 판본의 두드러진 차이점은 더 젊어진 햄릿의 나이와 함께 어머니 거트리드(다른 판본에서는 ‘거트루드’)의 태도다.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의 침소에 찾아간 햄릿은 어머니의 행실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아들 햄릿의 계획이 무엇이든 돕겠다고 맹세하는 거트리드의 모습은 다른 판본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면이다.

 



물론 모든 판본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부왕 햄릿과 숙부 클로디어스에 대한 비교다. 첫번째 독백에서부터 햄릿은 두 사람을 비교한다. “내 아버지의 동생? 전혀 닮지도 않았어, 나와 헤라클레스가 다른 것보다도 훨씬 더.” 즉 숙부가 아버지와 닮았다면 나는 헤라클레스겠다, 라는 식이다. 어머니의 침소 장면에서도 햄릿은 다시금 두 사람을 들먹인다. 군신 마르스와도 같았던 부왕의 모습과 “살인자, 강간범에 딱 어울릴 상판대기”의 숙부가 비교대상이라도 되느냐는 게 햄릿의 불만이다. 그래서 다그친다. “거지발싸개 같은 왕 때문에 진짜 군주의 풍모를 지닌 분을 저버려요?”

 



곧 햄릿에게 난해하기 짝이 없는 수수께끼는 어머니의 욕망이다.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남자 중의 남자’ 대신에 고작 ‘사형집행인’ 같은 얼굴의 남자와 근친상간의 쾌락에 빠진 것일까. 이 물음이 풀리지 않는다면 <햄릿> 또한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12.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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