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는 전혀 진도를 못 빼고 있는데, 어느덧 3월이 코앞이다. 당장 개강이라 머리도 마음도 분주하고 복잡한 상황인데, 일단 하나라도 해치우자는 심정으로 '3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라 내일 할일을 오늘 당겨서 하는 것이니 스스로 치하할 만하다. 겨우내 별로 잘한 일도 없는 것 같으니 봄맞이라도 잘해봐야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박완서 선생의 마지막 소설집 <기나긴 하루>(문학동네, 2012)다. 지난달에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인데, 최근엔 세계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이 22권짜리로 갈무리됐다. 애독자들에게 장서용 컬렉션이 될 만하다. 더불어 생전의 서울대 강의록 <박완서>(서울대출판문화원, 2011)과 여성동아 문우회가 지은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문학동네, 2011)도 작년 봄에 나온 책들이지만 이 봄에 같이 읽어도 좋겠다.

 

 

3월에는 '춘심'에 이끌려 시집들을 손에 들어도 좋겠다. 마침 두 중견 서정시인의 신작도 출간됐다. 장석남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와 문태준의 <먼곳>(창비, 2012). 문인수 시인의 <적막소리>(창비, 2012)까지 한권 더 얹어도 좋겠다.  

 

 

혹은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부 마쓰모토 세이초 컬렉션은 어떨까. 장르소설의 독자들에겐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작은 출판사 두 곳이 의기투합하여 펴낸 '세이초 선집의 첫 두 권 <짐승의 길>(북스피어, 2012)과 (모비딕, 2012)이 출간돼 있다. 장르소설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독자라도 40년 동안 700권의 작품을 쓴 이 미스터리한 일본 '국민작가'에게 눈길을 두어봄직하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알베르토 안젤라의 <고대 로미인의 24시간>(까치, 2012).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이후, 일반 독자들의 로마시대사에 대한 식견은 대단히 높아졌다. 이 책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은 그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2천년 전 고대 로마의 하루 일상을 상정하여 당시 로마인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준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좋은 로마사 대중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평이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제롬 카르코피노의 <고대 로마의 일상생활>(우물이있는집, 2003)도 절판된 책이지만 적어둔다. 다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짝을 맞추자면 이디스 해밀턴의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까치, 2009)도 보태야겠다. '생활'과 '생각'이란 짝이다.

 

 

개인적으로 박정희 시대의 역사도 3월에 읽어보면 좋겠다 싶다. 계기는 김재홍의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책보세, 2012)였다. 10.26 사건에 관한 공판기록들을 처음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영화 <그때 그 사람들>도 다시 봤다). 덕분에 관련서도 몇권 더 구했는데, 이미 갖고 있는 책으론 <박정희의 맨얼굴>(시사IN북, 2011)과 <박정희 정권의 역사>(필맥, 2011)이 작년에 나온 것들이다. 책은 관심이 뻗칠 때 읽어야 하는 것이니 찾아서 모아놓아야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허태균의 <가끔은 제정신>(쌤앤파커스, 2012)이다. 교양심리학 책이지만 심리학 카테고리가 따로 없기에 철학분야의 책으로 뽑혔다. "심리학자인 저자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 봄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주장에 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보다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주입식 착각에 대한 책으론 엘든 테일러의 <무엇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가>(알에이치코리아, 2012), 그리고 남녀간의 본질적 착각을 다룬 앨런 피즈의 <밝히는 남자 바라는 여자>(김영사, 2012)도 소프트한 심리학책으로 읽어볼 만하겠다.

 

 

좀 하드한 책으로 미셸 푸코는 어떨까. 다시 나온 디디에 에리봉의 평전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2012)는 두께에 비해선 부드러운 책이고, 프랑수아 퀴세의 <루이비통이 된 푸코?>(난장, 2012)도 푸코의 책을 몇권 읽어본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푸코의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난장, 2011)은 도전해 볼만한 책. 요즘 유행하는 '통치성'이나 '생명정치'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더더욱.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도넬라 메도즈 등이 쓴 <성장의 한계>(갈라파고스, 2012)다. 1972년에 나왔던 <성장의 한계>의 30주년 기념 개정판.1992년에 낸 두번째 책 <성장의 한계, 그 이후>에 이은 세번째 경고라 한다. 환경 파괴에 맞선 대안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해보는 책으로 <기후정의>(이매진, 2012)와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서해문집, 2012)까지 같이 묶어볼 수 있겠다.

 

 

 

 전지구적 사고 못지 않게, 당면한 우리의 현실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들도 꼽아본다. 요즘 뉴스타파의 칼럼으로도 친숙한 CBS 변상욱 기자의 <굿바이 MB>(한언출판사, 2012)는 일단 제목만으로도 뭔가 '타파'하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KBS 박에스더 기자의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쌤앤파커스, 2012)는 한국사회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날카로운 성찰이다. 거기에 <또, 라이 가카>(책보세, 2012)도 보탠다. 'MB의 거짓말 100과 사전'이란 부제가 모든 걸 말해준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김훈민/박정호의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한빛비즈, 2012)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들은 인문학 서재에 있는 신화나 설화,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서적에 모두 경제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단군신화에서 경제문제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경제학의 주요 논제인 시간적 비일치성을, 세계적인 명화에서 과시적 소비를, 벤담의 공리주의에서 법경제학을 찾는다." 나도 책은 진즉에 구해놓고 아직 손에 들진 못했는데, 몇 개 장은 이달에 읽어봐야겠다. 경제쪽으론 단골 저자들의 신간도 눈길을 끈다. 이정전 교수의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 2012)와 선대인 '세금혁명당' 대표의 <문제는 경제다>(웅진지식하우스, 2012). "이대로 가다간 다 같이 망한다"는 문구가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면 필히 읽어볼 만하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의 추천도서는 <예술 속의 과학>(북스힐, 2012)이다. 김 위원에 따르면, "요즘 창조적인 지식인을 육성하기 위해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융합인재교육(STEAM)이 주목받고 있다. 스팀(STEA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예술(Art), 수학(Mathematics)의 영문 첫 알파벳을 따서 만든 용어이다. 예전에는 이공계 학생들이 이과 과목만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인문·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전문인으로 양성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창의적인 융합 인재를 필요로 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예술과의 융합, 인문사회과학과의 융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교양과학도서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술 속의 과학>은 그런 추세에 부응하는 책. 더 찾아보면  박우찬의 <미술, 과학을 탐하다>(소울, 2011)나 홍성욱 외, <예술, 과학과 만나다>(이학사, 2007) 같은 책들이 더러 있었다. '융합 인재'를 필요로 하는 시대라고 하니 고등학생들도 한번 읽어봄직하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하워즈 휴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무이야기, 2012)다. 할리우드의 전설이 된 거장의 작품세계를 다룬 책. 500쪽이 넘어가는 분량도 무게감을 안겨준다. 영화감독론으로는 인터뷰집 <대니 보일>(마음산책, 2012), 스페인문학 전공자가 쓴 전기순의 <알모도바르 영화>(커뮤니케이션북스, 2012)도 눈길을 끈다. '악동'이었던 알모도바르도 어느새 '노장'이 됐군...

 

 

문득 오래전에 본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는 비디오로 봤고, <욕망의 낮과 밤>과 <하이힐>은 극장에서 봤다. 알모도바르의 인터뷰집도 구했던 기억이 난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을유문화사, 2012)이다. 이렇게 평했다. 

어려운 고전에 대한 길잡이를 자처하는 책은 많지만 잭 머니건의 <고전의 유혹>만큼 유혹적인 책은 드물다. 원제는 <해변의 베어울프>. 중세 및 르네상스문학을 전공했다는 저자가 해변에 접이의자를 펴놓고 중세 영문학 고전인 <베어울프>를 읽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좀더 친숙한 버전으로 바꾸면 ‘해변의 신곡’이나 ‘해변의 파우스트’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그건 여행가방에 샌들과 자외선 차단제와 함께 단테의 <신곡>과 괴테의 <파우스트>를 챙겨 넣는다는 뜻이다. 그게 가능할까? 저자의 부추김에 따르면 얼마든지! 그는 “위대한 책들에 담긴 유머와 드라마, 모험, 섹스, 신랄함, 우아함, 비극, 아름다움”에 우리가 마음을 열도록 이 ‘휴대용 도감’ 속에 온갖 비결과 팁을 내장해놓았다.(...) ‘고전 기피증’이나 ‘고전 부담증’에 시달리는 독자라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볼 만한 유혹이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의 추천서는 오경아의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샘터, 2012). 가든 디자이너의 책인데, 저자는 "방송작가로 일하다 나이 서른아홉에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 곳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6년간 정원 공부를 했다고 한다." 영국식 정원 이야기이기도 한 듯. '영국식 정원'이라고 하니 피터 그리너웨이의 퍼즐풀이 같은 영화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도 생각난다.

 

 

원제는 <제도사의 계약>.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개봉시 잘려먹은)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아직 못 본 영화는 <차례로 익사시키기>. 모두 출시돼 있으니 조만간 <차례로 익사시키기>도 구해보고 싶다.

 

 

 

10. 저항자들의 책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저항'이다. 앤드루 샤오와 오드리아 림 엮은 <저항자들의 책>(쌤앤파커스, 2012)가 계기다. 이 앤솔로지에는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느냐?"고 외친 만적의 '노비들에게 고함'(1198년)과 광주 시민군의 ‘모두가 함께 부른 노래’(1980년)도 포함돼 있다. 추천사를 의뢰받고 나는 이렇게 적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층 인(人)과 피지배층 민(民)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인’이 사람이었다면 ‘민’은 사람도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철거인’과 ‘철거민’도 그렇게 나뉘지 않는가. 이 책은 세계사 속에서 그렇게 억눌린 ‘민’들의 목소리와 그들과 함께하려던 지식인, 그런 세상을 바꾸려던 혁명가들의 주장을 모았다. 애초에 글과 책은 지배층의 독점물이었다. 글을 모르는 ‘민’은 ‘인문(人文)’의 세상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저항자들의 책>은 그와는 다른 ‘민문(民文)’의 역사를 우리에게 펼쳐준다. 패배한 자들의 역사, 스러진 자들의 역사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기억과 함께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개인적으론 <저항자들의 책>이 계기가 돼 에릭 홉스봄의 <반란의 원초적 형태>(온누리, 2011)와 <밴디트>(민음사, 2004)까지도 구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월스트리트 시위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점령하라> 두 권과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비판을 담은 <대학에 저항하라>(시드페이퍼,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제 봄이고 4월 선거도 얼마남지 않았군...

 

12. 02. 29. - 03.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아리스토파네스다. 특히 그의 작품들 중에서 <리시스트라테>.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전쟁을 밥 먹듯이 하며 패권을 겨루던 시절 주인공 리시스트라테는 그리스의 모든 여성이 단합하는 '성적 스트라이크'를 통해서 남자들을 굴복시키고 국가 사이의 화해와 평화를 달성하고자 한다. 번역은 <리시스트라테>(동인, 2004)가 있으며 <그리스 희극: 아리스토파네스 편>(현암사, 2006), 천병희 선생 번역으론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2>(도서출판숲, 2010)에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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