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내과에 다녀왔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인간이 생로병사의 몸이란 걸 병원보다 더 명료하게 알려주는 곳이 있을까.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었지만(무의식적으론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미디어, 2012)를 손에 들었다.

 

 

다치바나는 2007년에 방광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는데, 처음엔 NHK PD와 함께 '다치바나 다카시가 암에 걸려서 이랬느니 저랬느니' 식의 다큐를 구상했다가 암 자체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가제로 시작한 작업이 2009년 늦가을에 방영된 'NHK 스페셜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란 다큐이다. 책은 이 다큐(1부)를 바탕으로 다치바나가 <문예춘추>에 연재한 '나는 암수술을 했다'(2부)를 더한 것이다. 아니 연재물이 방송에 많이 반영돼 있기에 다치바나는 2부를 1부보다 먼저 읽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서문은 대충 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절을 읽었다. 서두가 이렇다. "요즘 일본에서는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에 걸리고,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암으로 죽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누군가는 암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나만 해도 지금까지 전처, 장인, 친구 등 주변의 여러 사람을 암으로 잃었습니다. 지금도 지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23쪽) 우리는 서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암과 교통사고가 사망사유의 수위를 다투고, 병사일 경우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지 않나 싶다(우리도 셋의 하나?). 중년의 나이이고 보니 주변에서도 암에 걸린 분이 드물지 않다.

 

놀라운 것은 암에 대한 책이 국내에 드물다는 것. 암 치유에 대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암환자 가족들이 주로 독자다) 암이 무엇인지 대한 책, 말하자면 '암 생물학'에 관한 책은 아주 적다. 다치바나의 책과 같이 보려고 거실 책장에서 빼온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까치, 2011)이 거의 유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내가 갖고 있는 게 이 두 권이긴 하다). 그런데 다치바나의 책을 읽다 보니 그게 아주 이상한 일만은 아니다. 인간이 암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얼마되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도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이렇게 말한다.

1971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국가적 정책 목표로 '암극복(War On Cancer)'을 내걸었습니다. 1940년대의 원자폭탄개발이나 1960년대의 우주개발(아폴로계획) 때처럼 나라의 예산과 지적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다면 10년 안에 인류 최대의 난치병인 암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1조엔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습니다.(25쪽)

한데 40년 가까이 지나도 암정복은 아직 난망이다. 오히려 암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더 난해해졌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2008년 9월 15일자)가 암과의 전쟁을 총괄한 '우리는 암과 싸웠다... 그러나 승자는 암이었다(We Fought Cancer... And Cancer Won)'라는 기사를 실었을 정도입니다.

이어서 다치바나는 취재차 미국 방문시 만난 암 연구 권위자와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미국 암 연구의 중추 중의 중추인 MIT의 로버트 와인버거 박사"이다. 한데 이름이 'Robert Weinberg'이므로 '로버트 와인버그'라고 표기해야 맞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에서도 와인버그라고 나온다(이 저명한 암생물학자는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의 하나다). 어떤 인물인가.

 

박사는 암유전자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며 전 세계 암 연구자들이 표준 교과서로 애용하는 <암 생물학>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암 생물학>이 어떤 책인가 싶어서 바로 또 찾아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지난달에 번역돼 나왔다! <암의 생물학>(월드사이언스, 2012). 목차를 보니 말 그대로 전문의학서이고 의대 교과서이다. 이 교과서의 저자가 다치바나에게 이렇게 실토한다. 암 정복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 알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아니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암이 애초에 어떤 병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26쪽)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암은 극소수이며, 대부분은 완치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치바나는 암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적어도 암을 대하는 그의 생각은 이렇다.

여기서 우리는 암과 아무리 철저하게 싸우려고 작정해도 그 투쟁은 대개 헛고생으로 끝나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끝까지 싸운다'가 아니라 '암과 공생한다'고 할까, '암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28쪽)

해서 '완치'나 '정복' '극복' 같은 말은 암과 관련해서는 조금 눅여서 쓰는 게 현실적이며 좀더 지혜로운 태도로 보인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게 지혜라면 말이다. "암과의 투쟁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암 극복이란 골인 지점까지는 얼마나 더 달려야 합니까?"란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을 다치바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나의 질문에 모두들 진지하게 답해주었지만, 10년, 20년이면 극복될 거라고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10년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제약회사 직원이었습니다). 짧게 잡아도 20년이나 30년은 필요하다는 견해가 태반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일흔 살이니, 그 대답은 곧 내 살아생전에 암이 극복될 희망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29쪽) 

다치바나의 육성과 함께하는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는 그런 현실을 직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12. 02. 04.

 

 

 

P.S. 암 관련서로 역시나 최근에 나온 책은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팀'의 <암중모색, 암을 이긴 사람들의 비밀>(비타북스, 2012)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책으로도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암 시리즈로는 <위암>, <유방암>, <대장암> 편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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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9-02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