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에 관해 글도 쓰고 강의도 해야 하는 터라 손에 든 책은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다. <인생은 의외로 멋지다>(웅진지식하우스, 2005)에 이어서 이 책을 만든 편집자에게 선물받은 책인데, 에디터의 말에 이렇게 적혀 있다. "에디터의 장점 중 하나는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한나 아렌트라는 사상가와 많이 친해졌다. 왜 멋진 사람들 중에 '아렌티안'이 많은지 알 것 같다." 아렌트가 특별히 언급된 건 제목의 '인간의 조건'이 아렌트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11. 11. 12) 인간의 조건 지키며 사는 게 왜 이리도 힘든 것인가
국회의원이 쓴 책이라고 하면 대체로 자기자랑이겠거니 하고 치부하기 쉽다.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은 건축 분야의 전문가이자 지식인이며 민주당 국회의원인 저자의 사유와 자기 성찰이 담긴 책이다.
책에는 두 명의 본보기가 등장한다. 한 명은 책의 제목까지 빌려 쓴 해나 아렌트(1906~1975)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이정희(42) 민주노동당 대표다. 독일의 유대계 정치철학자인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 등의 저서를 통해 평생 전체주의의 기원과 악의 평범성을 고발했다.
김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이정희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해 큰 화제가 됐다. 김 의원의 이 말은 이 대표가 대통령감이라는 것뿐 아니라 그가 대통령이 되기란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것이었다고 한다. 변호사를 지내다 정치에 뛰어든 이 대표의 내공은 자신이 할 말을 직접 자신이 쓰는 ‘법조 훈련’을 통해 키워졌다고 김 의원은 분석한다. 그리고 ‘가슴에 불을 안은, 된 사람’이 제대로 된 법조 훈련을 받았을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는 299개의 대통령 당선 시나리오가 있다는 농담이 있다. 국회의원 숫자가 299명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혐오집단인 국회의원이 된 심정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건축가로서 주목받았던 그가 정치를 시작한 동기는 ‘더 좋은 생각을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도록 하자.’는 좋은 정치에 대한 열망 때문이다. 17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18대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것도 우연이었다. 당선되었던 한 비례대표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김 의원 앞의 승계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던 것.
그는 국회에서 전공 분야를 살려 4대강 사업과 뉴타운을 비판하는 전사로 활약하고 있다. 책은 그러나 4대강 사업 비판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진 않는다. 대신 1994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21세기 리더 100인’에 꼽으면서 갑자기 주목받게 된 사연을 얘기한다. 한 번은 전화로, 또 한 번은 찾아온 기자와 인터뷰한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는 김 의원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기대받는 사람이 되었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했고 좋은 채찍이었다고 말한다.(윤창수기자)
11. 11. 12.
P.S. 책에는 저자의 롤 모델로 아렌트뿐만 아니라 이정희 의원도 거명되고 있다. 딸아이가 정치가가 될 생각도 있다고 해서 여성 정치인의 책 몇권을 사다준 적이 있는데 <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도 나보다는 아이에게 더 영감을 줄 만한 책 같다. 내겐 저자가 속해 있는 국회 국토해양위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무슨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게 해준 책이다. 김진애 의원은 국토위에 대해서 겉모습은 '공룡위원회', 속모습은 '이권위원회', 그리고 본색은 '거수기 위원회'라고 적었다. 18대 국회에서 '4대강 사업' 관련으로 국회 차원의 공청회 한번 없었다고 하니 저자의 말대로 믿기지 않는 일이다...
한편, 올해는 아렌트 입문서가 한꺼번에 여럿 출간된 해이기도 한데, 홍원표 교수의 <아렌트>(한길사, 2011), 사이먼 스위프트의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앨피, 2011), 그리고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의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 등이 거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