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

'10월의 읽을 만한 책'의 카테고리로 '중국의 지식인'을 만들어놓고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 등을 올려놓았었는데, 마침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지식인 문제는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다. 그간에 서구 지성사에 가려져왔던 '중국의 지식인' 문제가 지식인 문제 일반을 다룰 때도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지식인' 문제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고...  

교수신문(11. 10. 04) 그들은 왜 사회의 중심을 세우는 데 실패했나    

이 책의 집필진은 중국의 지식계의 대표적인 지식인들로 구성되어있다. 黃平, 余英時, 杜維明, 徐復觀, 錢穆, 費孝通, 錢理群, 陳平原, 李歐梵, 桑兵, 章淸 등 역사, 철학, 사상, 문학, 문화, 정치, 사회학 등의 다양한 전공자들로 구성돼 있다. 포괄하고 있는 시기는 춘추전국시기에서 1905년 과거제도 폐지 전까지 제왕의 조력자이자 민간사회의 엘리트로 살았던 사대부 중심의 시기. 서양과의 충돌과 서구학문의 유입으로 신지식과 신지식인 집단이 형성된 시기, 사회주의 건설이후 지식인 사상개조로 인한 핍박과 상실의 시기, 개혁개방이후 새로운 지식인의 등장과 활발한 지식담론이 성행된 시기 등이다. 수록된 내용은 주로 지식인의 개념, 범주 및 유형, 고대 지식인의 구조와 역할, 지식인의 역사적 성격과 운명, 지식인의 주변화 현상, 지식인 집단의 몰락 및 도시 공간 속의 지식인 등 20세기 지식인에 대한 다양하고도 깊이 있는 내용들을 총망라했으며, 나아가 지식인 사회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네트워크, 매체, 사단, 학회 등의 다양한 방법과 주제를 다루고 있다. 

쉬지린 교수가 편선한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는 중국의 대표 지식인들이 바라본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역사를 소개한 책이다. 무려 중국 고대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중국의 지식인 역사를 핵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20세기는 그야말로 대변혁의 시기였다. 20세기 중국의 지식인들이 겪은 변화는 그야말로 사상적인 면에서의 가치전환일 뿐만 아니라 사회사적인 면에서의 신분, 지위, 역할의 대변환이었다. 이 책은 후자에 초점을 맞춰 지식사회사 측면에서 이러한 대전환기 사회정치와 문화사상의 상호작용 속에서의 지식인의 역사를 연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쉬지린 교수는 20세기 중국 지식인을 어떻게 엮어나갔는가. 중국의 근대 사상계에서 서구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미친 점은 바로 지식구조일 것이다. 관료와 지식인이라는 이중적 역할에서부터 중심과 주변을 넘나드는 경계인으로서의 중국 지식인은 어떠한 근대 중국의 지적 구조를 형성해나갔는가. 또한 20세기 중국의 지식지형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지식인은 국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나갔는가. 이것이 이 책의 초점이다. 쉬지린 교수는 이를 ‘단절된 사회 속의 지식인’이라고 규정한다.

쉬지린 교수는 현대 지식인이 처한 사회는 지식인의 중심인 사민사회가 아니라 ‘중심이 없는 단절된 사회’라고 한다. 국가와 사회의 단절인 것이다. 과거의 사대부는 원래 국가와 사회를 일체화하는 중추적 기능을 수행했으나 1905년 과거제도의 폐지에 따라 사대부 계급은 와해되고 국가와 사회 사이에도 더 이상 제도적인 소통을 수립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단절은 각 계층 간의 단절이다. 각 계층사이에는 공공의 가치관과 제도적 토대가 결여돼 사회에는 더 이상 중심이 없게 됐고 상호 제도화 된 유기적 관계도 결핍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절된 사회의 난국 속에서 지식인은 국가,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 그는 전통사회에서의 사대부계층과 국가, 사회의 유기적 관계는 오늘날도 모두 붕괴했다고 말한다. 과거제도의 폐지는 현대 지식인으로 하여금 국가와의 내재적인 체제관계를 잃게 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강렬한 소외감을 낳았으며, 또한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민간사회에서 벗어나 도시로 흘러들어가 국가로부터 소외됐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유리된 표류하는 지식인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북경, 상해 등의 대도시로 간 지식인들은 현대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지식공간 즉, 학술 집단과 문화매체를 마련했다. 학술 집단은 지식생산영역의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문화매체는 지식유통영역의 신문, 잡지, 출판업으로 구성됐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이 지식공간들은 고대 중국에서는 없었으며, 제도화된 네트워크 규모로 출현했던 적도 없었다. 이는 현대 지식인들이 의지하는 유일한 사회공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핵심이 되는 상업사회와 권력이 핵심이 되는 국가체계가 존재함에 따라 자신들의 작은 사회인 학술 집단과 문화매체를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국가, 사회와의 유기적 연계를 상실했다. 현대 지식인은 더 이상 사회의 중심이 아니며, 도리어 ‘단절된 사회’에서 더욱 더 주변화된 존재다.

이는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사회는 새롭게 국가로부터 해방됐으며 지식인 또한 주변에서 중심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商工社會의 궐기로 인해 지식인은 또 다시 주변화됐으며, 이번에는 국가에 의해 전복당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게 전복당한 것이었다. 시장사회로 인해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그들의 갈망은 멀어져 간 것이다.

2010년 국제학술회의 차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를 방문한 쉬지린 교수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와 유사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전통사대부에서 현대지식인으로 나아가면서 끌어 안아야했던 것은 다름 아닌 현대사회의 公民意識이다. 공민의식은 사민사회에서는 탄생할 수 없으며 단절된 사회에서도 쌓아나가기 어렵다. 그것이 요구하는 것은 건전한 공민문화와 민주정치이며, 이러한 것들은 바로 지식인 사회의 변화를 제도화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  

내용 측면에서 이후 보완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테면, 개혁개방이후 중국 사회의 전환에 따른 지적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점에서 지식인 문제가 본격적이고 활발하게 논의돼 하나의 지식담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중국 지식계, 사상계의 분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형성됐던 계몽 진영이 90년대에 이르러 사상 면에서 거대한 분화를 보인다. 1990년대 인문정신이 계몽진영을 인문파와 시장파로 분리시켰고, 90년대 상반기 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은 개혁진영을 자유파와 산좌파라는 두 극단으로 분열시켰다. 이에 따라 1990년대는 지식담론에 대한 논의는 활발했지만, 중국사상계 내부에는 통일된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고 대립과 분열이 출현했다. 이는 결국 지식의 사상분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분화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지식구조와 유형의 분화이자, 지식(인)의 분열, 사상가치의 분열이기도 하다(쉬지린『중국지식네트워크』). 이러한 1990년대 이후 지식계의 대분화를 통한 중국 지식담론의 계보와 지형을 분석한 논의가 보충될 필요가 있다.(박영순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11.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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