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사두고 아직 손에 들지 못한 책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이파르, 2011)이다. '위기의 지구화 시대 청(소)년이 사는 법'이 부제. 자칭 '잉여세대'의 하위문화를 다룬 논문들도 포함돼 있는데, 그중 '병맛 웹툰'을 분석한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는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끈다(하지만 나는 '병맛 웹툰'이란 말도 처음 들어봤다. 요즘 청(소)년 세대에 무관심한가 보다). 요지를 전해주는 기사가 뜨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08. 05) '병맛’ 웹툰…‘잉여’ 세대의 발칙한 반전

경제적으로 ‘낀 세대’인 요즘 젊은 세대를 말하는 ‘88만원 세대’를 비롯해 갖가지 세대론이 나온다. 그러나 한 세대의 정체성과 특징을 규정하는 세대론의 고질적인 약점은 ‘대표성’이다. 과연 청년 세대의 정체성을 하나의 표현으로 묶을 수 있는 걸까? 또 그렇게 규정하는 가장 적절한 접근법은 무엇인가? 



문화연구자인 김수환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는 최근 인터넷 만화인 ‘웹툰’으로 요즘 젊은 세대를 읽어내려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김 교수는 최근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이파르)이란 책에서 ‘너희가 병맛을 아느냐?-웰컴 투 더 <이말년 월드>’란 논문을 싣고 ‘병맛 웹툰’을 우리 청년 세대를 들여다보는 틀로 활용했다. 웹툰을 20대 문화의 경향성을 보여주는 문화현상을 넘어 20대가 고유하게 장악하고 있는 ‘매체’로 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간 작업이다.

김 교수는 “21세기 한국의 청년층에게 웹은 단순한 ‘소통’의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과 주체성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며 때론 상실되거나 소멸되기도 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청년층의 정신적, 문화적 멘탈리티에 심원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존적 토대라는 것이다. 특히 웹툰은 20대들과 함께 태어나고 성장하고 유통되는 장르라는 점에서, 매체로서의 속성을 지닌다고 봤다. 1990년대 청년 세대가 영화를 자기 세대 고유의 특징을 담은 매체로서 활용했던 것처럼, 오늘날 20대의 지배적인 매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웹툰이란 해석이다.

김 교수는 웹툰 중에서도 젊은층들의 인기가 높은 이말년 작가의 <이말년 월드>가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병맛’이란 성격에 주목했다. 인터넷 신조어인 병맛은 ‘병신 같은 맛’의 준말로 흔히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 따라 대충 그린 그림체, 말도 안 되는 전개 등이 병맛 웹툰의 특징이며,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말년 월드>는 병맛 웹툰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승객 한 명이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요금통에 담배를 넣는 바람에 버스에 불이 붙자 갑자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고 하고, 운전기사는 “그래야 내 손님이지” 맞장구를 치면서 버스를 몰고 ‘명박산성’으로 돌진하는 식이다.

이 ‘병맛’ 코드에 대해 많은 이들은 청년층의 ‘잉여’ 의식을 주목했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패배자, 곧 잉여적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비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병맛=잉여=자기비하’라는 단순한 논리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유희적 공통코드’를 짚어낸다. <이말년 월드> 속에는 일정 시간 이상을 웹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수없이 많은 ‘인터넷 서브컬처 코드’들에 대한 패러디들이 난무하고, 독자들은 이를 발견하고 해독한다. 곧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너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잉여짓’을 작가인 너 또한 하고 있다는 모종의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징을 토대로 김 교수는 “잉여들의 ‘문화적 플랫폼’이 가시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공감대가 새로운 주체성을 일궈낼 일종의 ‘연대의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묻는다. 또한 병맛 웹툰이 보여주는 냉소적인 현실인식과 유희적 코드의 결합에서,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세속화’ 전략을 읽어낸다. 아감벤은 세속화라는 말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가 아닌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수동적 저항 태도로 지배권력의 문법을 무화(無化)시키는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이말년 월드>가 이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병맛 웹툰 말고도 다양한 장르의 웹툰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단일하게 규정하는 것은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김 교수는 “아직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20대의 ‘최전선’으로서 웹툰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며 “기존 세대의 영향을 받지 않는 20대 스스로의 목소리도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최원형기자) 

11. 08. 05.   

P.S. 논문의 필자인 김수환 교수는 러시아문학자로 유리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을 전공했다. 로트만적 관점에서 읽은 '병맛 웹툰'쯤 될까? 그의 대중문화 분석은 주로 러시아 상류사회의 문화를 분석한 로트만의 작업과 대비돼 더욱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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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1-08-05 12:32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서울대 행정관 점거 농성 때도 정문에 '엉덩국 만화'의 유행어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가 있어서 웃겼어요.ㅋㅋㅋ 그런데 80년 대 운동권들은 '숭고'에 사로잡힌 반면 요즘은 스스로를 저질, 잉여로 자처하는 세대라서 그러한 의식의 차이가 나중엔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궁금하더군요.

로쟈 2011-08-05 22:59   좋아요 0 | URL
'나중'이라면 한 20년 후가 되나요?^^

미지 2011-08-05 23:24   좋아요 0 | URL
와~ 얼마 전 김수환 교수 논문 하나 읽고 감동해서 이분에 대해 계속 궁금했는데 반가운 포스팅입니다. 보통 학술지 논문은 출판용 도서에서의 문체와 괴리가 있는데 이분 논문은 짜임과 문체가 생생하고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정말 놀라웠거든요. 충격 받고 반성 좀 하다 보니 논문 쓰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만... 사이버공간은 청년뿐 아니라 일부 장년`노년층에게도 실존적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많이 더운데 건강하세요~!

로쟈 2011-08-05 23:37   좋아요 0 | URL
논문 독후감은 언제 연락이 닿으면 전하겠습니다.^^

2011-08-08 0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8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08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1-08-08 19:37   좋아요 0 | URL
네, 양해해주셔서 감사. 잘진행되시길 바래요.^^

미지 2011-08-10 00:02   좋아요 0 | URL
완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