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한글역주 시리즈의 하나로 <중용한글역주>(통나무, 2011)이 출간됐다. <논어한글역주>(통나무, 2008)로 방향을 잡은 이후엔 파죽지세다. 올해 안으로 <맹자한글역주>까지 출간된다고 한다. 예전에 <도올선생 중용강의>(통나무, 1995)를 읽은 적이 있는데, 당시 도올의 책이 흔히 그랬듯이 나오다 만 책이었다. 사정이 좀 달라졌다는 걸 알겠다. 인터뷰기사에서도 저자의 진지한 태도가 읽힌다. '새로운 문명' 얘기에는 아직도 공감하기 어렵지만...    

  

한겨레(11. 07. 20)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라 모든 극단 포용하는것”

‘도올’ 김용옥 원광대 석좌교수가 최근 동양의 고전인 <중용>을 우리말로 풀고 주석을 붙인 <중용한글역주>를 펴냈다. 김 교수는 2008년부터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한글 세대를 위해 동양의 고전 역주 작업을 계속해왔다. <논어>, <효경>, <대학>에 이어 이번에 <중용>을 펴냈으며, 올해 출간할 계획인 <맹자>까지 펴내면 ‘사서’를 모두 우리말로 옮기게 된다. 특히 이번 <중용한글역주> 작업에 대해 김 교수는 “나의 사상 역정의 모든 생각과 체험을 집결한 분수령”이라며 “나의 사상은 <중용한글역주> 전과 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중용> 한글역주 작업을 이처럼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8일 서울 동숭동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중용>에는 인간과 인간이 속한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다”며 “과연 인간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긍정적인 건설의 철학으로서, 서양문명의 한계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용>의 문헌학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찍이 사마천이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었다”고 했지만, 청나라 때 옛 문헌을 의심하는 ‘의고풍’ 학문이 번성하면서 이를 믿지 않는 시각이 한때 대세를 이뤘다. 특히 <중용>은 유·불·도의 사상적 면모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논술을 펼쳐가는 방식으로 이뤄졌기에, ‘한나라 초기에 당시 제자백가의 논의를 취합하여 만들어진 저술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993년 중국 허베이성 궈잔촌에서 대량으로 죽간이 발견된 뒤, 자사의 존재와 그가 <중용>을 저술한 사실 등이 문헌학적으로 증명됐다. 김 교수는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정신문명의 정수가 생성된 시기를 적어도 기원전 5세기 정도로 올려 잡아야 하며, <중용>이 제자백가의 논의를 취합한 것이 아니라 제자백가보다 앞서 그 정신적 원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 그는 “결국 <중용>은 자사가 공자의 사상을 망라하여 ‘유교’라는 사상의 체계적인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펼친 작업”이라며 “그런 관점을 전제로 깔고 <중용>을 풀이했다는 것이 내 작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은이인 자사의 논의를 충실히 따라가면, <중용>의 핵심은 ‘성’(誠)으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성은 스스로 이루어가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 길지워 나가는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 ‘지극한 성은 쉼이 없다’(至誠無息) 등의 문장에서 나타나듯, 성은 ‘천지(天地)의 성실한 모습’, 곧 끊임없이 창조적인 현실태로서 우주 자연의 운영 원리를 뜻한다고 한다.

또 흔히 ‘중용’을 ‘이것과 저것의 가운데’ 정도의 뜻으로 쓰는데, 김 교수는 “의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했다. “‘중용’은 가운데가 아니라 모든 극단적 상황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용기는 만용과 비겁의 중간이 아니라, 만용과 비겁을 포용하는 데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그 무엇이라 한다.

<중용>의 이런 사상적 면모에 대해 김 교수는 “서양 사상은 완전과 불완전, 보편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을 나누어놓고 생각하지만, <중용>은 모든 극단을 포용하며 ‘불완전하지만 완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서양 사상은 신이나 최고의 선(善) 등 인간 외부에 초월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에 기대는 목적론적 성격이 강하지만, <중용>에 담긴 사상은 끊임없는 우주의 운영 원리를 담고 있는 인간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중용>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주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인간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느냐를 고민하는 창조와 건설의 철학”이라고 역설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스스로를 삼가는 ‘신독’(愼獨)의 개념이 이를 압축해서 드러낸다고 했다.

최근 유교를 정신문명의 기반으로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국 공산당 역시 유교 정신의 정수로서 <중용>에 주목하고 있다. 김 교수는 “근본적으로 신화적이고 초월적인 서양 사상은 더이상 인류를 이끌고 나가기에 부족하다”며 “중국 문명이 <중용>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가 나서서 선구적 모델을 만드는 지렛대 구실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면 ‘꼰대들이 읽는 고리타분한 규범윤리’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중용>에 담긴 가치들을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최원형 기자) 

11. 07. 20.   

P.S. <중용한글역주>와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은 김진석의 <우충좌돌>(개마고원, 2011)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일련의 사회비평집 가운데 하나다. 부제가 '중도의 재발견'이니 '중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책으로 읽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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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hema 2011-07-20 19:10   좋아요 0 | URL
김용옥의 특기가 "나오다 만 책"이지요. 도올문집 시리즈도 1차분 100권 낸다고 떠들고서는 2005년에 도올문집9 나온 이후 안 나오고 있지요. 김용옥이 100권을 쓸 수 있을까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로쟈 2011-07-20 21:57   좋아요 0 | URL
전력은 그런데, 최근의 행보는 좀 다르네요...

미국사람 2011-07-21 06:49   좋아요 0 | URL
도올의 중용강의는 상편은 책으로 나왔고 하편은 출판이 안되었는데 하편은 인테넷에 텍스트 화일로 돌아 다닙니다. 파일을 읽어보면 거의 완전한 형태인데 왜 출판이 안되었는지 모르겠읍니다. 아마 도올서당에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정리한 것인지...

도올의 책은 거의 전부 읽어보았는데 재주가 너무 많아서 자신의 학문적 성취가 방해가 된 것 아닌가 싶읍니다. 방송나오구 기자하고 하면서 시간이 없겠조. 다만 이번에 나오고 있는 13경 주석은 도올이 거의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벌이는 일인 것 같아서 약간 기대가 됩니다. 글쎄 워냑 튀는 사람이라 끝까지 갈지는 모르겠읍니다만.

학자로 성공하려면 사람이 단순 무식해야하고 하고 공부 이외에 재주가 없어야합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학자로서 성공하기 어렵죠. 주변에 보니까 학부시절 공부잘하던 친구들보다 무식하고 성실한 쪽이 오십 넘어서 돋보이더군요.


로쟈 2011-07-21 08:07   좋아요 0 | URL
도울이 21세가 3대 과제 중 하나로 '학문과 삶의 소통'을 들기도 했는데, 그런 면으로는 가장 성공한 학자이긴 합니다. 동양철학 전공자로 그만큼의 대중적 영향을 가진 학자도 없을 듯하니까요. 학자의 사회적 용도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