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에서 명성을 떨치는 한국 학자들의 얘기가 가끔씩 들려오는데, 인류학자 권헌익 교수가 케임브리지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이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언젠가 우석훈 소장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뛰어난 학자로 이미 손꼽은 바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시강강사 생활만 하다가 영국으로 건너가버렸다고. 한국 대학사회에 얼마나 대단한 교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는지 말해주는 반증이다.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아직 한권도 번역되지 않은 권 교수의 책들이 소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그래서 아직 '세계의 책'이다).
한겨레(11. 05. 18) “내 학문 화두는 전쟁이 파괴한 삶의 회복”
영국 최고의 칼리지로 알려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한국인 인류학자인 권헌익(49·사진) 런던정경대(LSE) 교수가 임용됐다. 케임브리지의 31개 칼리지 중에서도 단연 최고로 꼽히는 트리니티 칼리지에 한국인 교수가 임용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권 교수는 10월 새 학기부터 트리니티 칼리지의 선임 연구 정교수로 일한다. 선임 연구 정교수는 정교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연구나 강의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할 수 있는, 정교수 가운데서도 특별한 자리다. 영국에서 선임 연구 정교수는 보통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정교수들에게 주는 자리로 알려져 있다.
권 교수는 17일 “모교에 돌아오게 돼 기쁘다”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요청한 대로 앞으로 좋은 책을 써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때 일어난 마을, 가족 등 공동체에 대한 학살행위를 연구한 저서 <학살 이후>, <베트남의 전쟁 유령들>로 인류학계의 권위있는 ‘기어츠상’(2007년)과 아시아학계의 ‘조지 카힌상’(2009년)을 받아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6·25가 내전과 국제전의 두 가지 양상뿐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전쟁이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이제는 조국해방전쟁이냐, 침략전쟁이냐 하는 이념 구도에 집착하지 말고 남쪽과 북쪽의 민간인들, 참전했던 미국인과 중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냉전의 시작을 알린 열전이었던 이 전쟁이 한반도뿐 아니라 20세기 후반 세계 역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그의 관심사다. 그는 “한국전쟁을 겪은 미국이 자본주의 진영을 강화할 목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분리차별) 정책까지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우석훈 2.1연구소장은 지난해 11월18일 <한겨레> 칼럼에서 “장하준 다음의 질문은 권헌익의 질문이 됐으면 좋겠다”고 썼다. 이 이야기에 대해 그는 “우 선생을 알지만 그런 좋은 이야기를 해준 줄 몰랐다”면서도 “공동체의 삶이 회복될 수 있는지 여부가 내 공부의 주제이자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또 다른 냉전>을 써낸 데 이어, 연말엔 <북한-냉전의 극장 국가>를 펴낼 예정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권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영국 맨체스터대, 에든버러대 교수를 거쳐 2009년부터 런던정경대에서 교수로 일해왔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1546년 영국의 양대 명문 칼리지인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와 함께 헨리 8세에 의해 설립됐다. 노벨상 수상자 32명을 비롯해. 아이작 뉴턴, 프랜시스 베이컨, 바이런,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자와할랄 네루 등을 배출했다.(김규원 기자)
한겨레(10. 11. 18) 장하준 사건의 교훈
내가 한국의 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을 다 만나본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만난 한국 학자 중에서 “정말 이렇게 공부 잘하는 사람이 다 있나” 싶게 입 딱 벌어졌던 사람이 세 명 있다. 세상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중에 제일은 권헌익 교수였고, 그다음이 장하준 교수와 이제 슬슬 은퇴를 준비하시는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지순 교수였다.
물론 이지순 교수는 한국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그렇듯이 아직은 그를 대표할 책이 없어서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지순 교수였던 셈이다. 어떻게 보면 <88만원 세대>를 시작으로 지금 진행중인 12권의 대장정 시리즈를 쓸 용기를 냈던 것이 이지순 교수식 발상의 전환 덕분이다. 마음속으로는 그를 진짜 은사라고 생각하고, 내가 발간한 책들을 전부 보내드리는 분이기도 하다. 그가 나에게 질문했다. “만약에 박정희가 산업화할 때, 유신 방식 대신 요즘 식으로 말하는 생태적 경제를 전개했다면 우리가 지금보다 못살았을까?” 언젠가 나는 그의 질문에 답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그럴 수준과 형편이 못 된다.
장하준이 수년 전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과연 모든 경제적 제도를 다 없애고 시장 하나만을 단일 기구로 숭배한다면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질문은 독일 역사학파인 리스트의 오래된 ‘사다리 걷어차기’의 질문이기도 하고, 스웨덴식 복지경제의 틀을 만들어낸 군나르 뮈르달의 질문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나 정치인들 혹은 재계의 경제인들은 “그딴 질문 필요 없다”고 지난 10년 동안 장하준을 영국 사람 취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함께 아주 혼동스러우면서도 너저분한 시대를 보낸 지금, 장하준이 던진 질문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마이클 샌델이 던진 질문에 한국 국민들은 격렬하게 반응하였다. 2000년 김용옥이 <노자와 21세기>라는 인문서적으로 세웠던 모든 기록을 마이클 샌델이 올해 전부 갈아치웠는데, 그 기록을 이제 장하준이 모두 갈아치울 형국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 먹고사느라고 너무 바빴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 혹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질문을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소소한 몇 가지 정책 논쟁을 ‘의제 설정’이니 어쩌구 하면서 기술적 논의만 조금 했지, 정의, 도덕, 제도, 시장과 같은 근본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빼먹고 간 것 같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논의들이 대학과 계간지 같은 것을 통해서 일상화되고, 국민들도 ‘시민토론’ 등의 형태로 계속 토론을 하고, 이런 것들이 정치권을 통해서 대표되는 그런 상황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그렇게 안 했고, “돈이면 최고다”라는 경제근본주의의 시절을 보냈다. 학자라는 게, 원래 남는 시간이 많아서 남들 다 아는 것 같은 근본적인 얘기를 다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은 좋은 학자이다.
지난 수년 동안 내가 본 가장 안타까운 사건은 권헌익 같은 좋은 학자가 한동안 시간강사를 하다가 런던의 정경대학(LSE) 교수로 가버린 일이다. 만약 그가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많은 대학원생들이나 박사과정생에게 정말 좋은 스승이 되었을 것 같다. 그가 한 얘기는 더 간단하다. “고전으로 돌아가자.” 그 얘기를 한국은 못 알아들었고, 영국은 알아들었다.
장하준 다음의 질문은 권헌익의 질문이 되면 좋겠다. 정치권이 알아먹든 못 알아먹든, 장하준과 함께 한국 국민들은 이미 선진국 국민이 된 것, 그게 장하준 사건의 교훈 아닌가? 이런 국민과 독자들이 너무 자랑스럽다.(우석훈 2.1연구소 소장)
11. 05. 18.
P.S.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학자는 어네스트 겔너(1925-1995)이다. 최근에 그의 전기를 구입한 때문인데, 이력을 다시 살펴보니 런던 정경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선 사회인류학 교수를 역임했다. 말년엔 체코의 민족주의연구소 소장을 지낸 걸출한 학자다.
겔너의 책으론 <민족과 민족주의>(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2009)가 번역돼 있다. 민족주의론의 고전에 속한다고. 존 홀의 전기 <어네스트 겔너>(2010)는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