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력>(프로메테우스, 2010)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반핵운동가로 유명한데,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 안전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한 책 <원전을 멈춰라>(이음, 2011)가 재출간됐다(일본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위험한 이야기>(푸른미디어, 1989)란 제목으로 나왔다고 하니 22년만이다. 문제는 그의 암울한 예언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점. 당장은 일본의 '현실'이지만, 원전 밀집도가 놓은 우리에겐 남의 일만이 아니다. 일독해봄직하다.
경향신문(11. 04. 01) 日원전 사고 25년 전 예견한 ‘족집게’
“후쿠시마 현에는 자그마치 10기가 있죠. 여기서 쓰나미가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모두 멜트다운될지도 모릅니다.”
일본의 반전반핵·평화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히로세 다카시는 25년 전 지금의 일본 원전 사고를 암울하게 예견한다. 그는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원인과 영향을 분석하면서 ‘원전안전 신화’의 허구를 구체적 사실로 샅샅이 폭로한다.
책은 원전 사고가 국지적 비극이 아니라 전 지구적 참극으로 확장될 수 있는 시한폭탄이란 걸 강조한다. 히로세는 먼저 ‘죽음의 재’라 불리는 방사성물질의 가공할 파괴력을 문헌으로 자세히 분석한다. 방사능에 직접 노출된 이들이 1년새 수없이 죽어간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체르노빌 남서쪽 450㎞ 떨어진 체르노프치라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빠졌다. 1000㎞ 떨어진 스웨덴에도 14종의 핵물질이 검출됐다. 88년 초 소련은 임신 3개월까지 허용됐던 임신중절을 임신 7개월(28주)로 연장했다. 히로세는 분산된 팩트 하나하나를 모자이크처럼 맞춰가며 사고 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간다.
히로세는 “무지막지한 인간들이, 제국주의 시대의 군벌과 직결되는 인간들이 우리를 지옥으로 초대하기 위해서 기만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되고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 것”이라며 원전 산업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체르노빌 사고 2년 전 프랑스의 배가 우라늄을 싣고 소련의 리가로 향하다 사고가 났다. ‘적대국’인줄만 알았던 국가간의 우라늄 거래가 기만의 단적인 예다.
히로세는 유엔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유럽 원자력 산업의 중심 인물과의 관계, 모건과 록펠러, 로스차일드 가문 등 영미의 거대 자본가들이 미국은 물론 소련의 정치마저 쥐락펴락하며 원전산업을 확대·재생산한 음모의 주체라고 말한다.
일본의 ‘무지막지한 인간들’도 ‘돈독’이 올랐다. 일본 당국은 70년대 ‘죽음의 재’ 피해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대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 지불 능력을 알아보려는 게 목적이었다. 장례비는 사체 1구당 5만엔. 일본은 체르노빌 사고에도 ‘원전 5배 확대’를 주장했다. 도쿄전력 등은 자사 이익을 평화적 핵사용, 깨끗한 에너지 같은 말로 포장하면서 ‘사회화’했다. 언론도 공범이다. NHK의 외부 위원은 도쿄전력과 원자력위원회 소속 인물들이었다. 위원회에 참여한 아사히 신문 주간은 ‘원전 반대 기사를 쓰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원전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도 체르노빌 사고 이후를 재현한다. “일본보다 안전하다.” “소련보다 안전하다”고 강변한 일본의 모습과 닮았다. 정부와 친여 언론은 방사능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안전량의 플루토늄을 드셔보시든가’라는 게 히로세의 응답이다.
히로세는 후쿠시마를 예견하며 이런 말도 했다. “지금까지 대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우연 중의 우연이죠. 어쩌면 프랑스가 먼저가 될지도 아니면 한국에 있는 9기 중 어떤 것이 터질 것인지….” ‘히로세의 저주’로 여길 일은 아니다. 히로세는 “체르노빌 사고는 일본인이 자신을 향해서 보내는 최후통첩”이라고 했는데, 후쿠시마 사고는 한국인에게 온 최후통첩일 수 있다.
1세대 환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김원식씨가 90년 번역한 <위험한 이야기>를 다시 냈다. 환경운동가들 사이에서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의 시의적절한 재출간은 반갑다.(김종목기자)
11. 04.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