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다시' 읽는 재미에 대해서 조금 적었다.  

 

한겨레(11. 03. 19) 제대로 된 모비딕 ‘다시’ 읽으며 

허먼 멜빌의 걸작 <모비딕>을 다시 읽고 있다.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다이제스트판이 아니라 완역판으로는 처음 읽는 것이지만 ‘고전’이기에 ‘다시’ 읽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탈로 칼비노의 말대로 고전이란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유명하기에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 고전이다. 창피하니까. 하지만 뒤늦은 독서에 이유가 없진 않다. 그간에 발췌·표절 번역본은 많았지만 확실한 추천 번역본은 없었다는 점. 그런 가운데 장인적 솜씨를 담은 새 번역본이 나온 것이 불과 지난해의 일이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란 1인칭 화자의 말이 서두이지만 멜빌은 그보다 앞자리에 고래의 ‘어원’과 고래에 관한 문헌 ‘발췌록’을 배치하고 있다. 고래, 혹은 ‘거대한 바다 괴물’에 대해 수많은 민족과 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노래했는가를 미리 보여주려는 의도이다. 단 이것을 ‘진정한 고래학’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그는 충고한다. 만약 그런 게 이미 존재한다면 멜빌은 따로 <모비딕>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진정한 고래학’으로서의 <모비딕> 말이다.

지갑도 바닥나고 뭍에서는 더이상 흥미를 끄는 것이 없기에 이슈메일은 포경선을 타려고 항구를 찾는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고래 자체에 대한 호기심도 컸고 고래잡이 항해가 어쩌면 신의 섭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룻밤 유숙하게 된 여인숙에서 뜻밖에도 식인종 작살잡이와 방을 같이 쓰게 된다. 항유로 처리한 원주민의 두개골을 팔러 돌아다니는 ‘야만인’ 작살잡이의 이름이 퀴퀘그. 이슈메일은 낯선 식인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벌이지만 곧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야”란 생각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아니 두려움이 가시자 예의바른데다가 감수성까지 예민한 자신의 동숙자를 예찬하기까지 한다. 



젊은 시절 직접 포경선을 타고 남태평양을 누비다 식인종들과 한 달 동안 같이 살기도 했던 멜빌은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차별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 멜빌과 마찬가지로 이슈메일도 문명의 위선과 간사한 허위 따위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선량한 야만인’에게 오히려 친근감을 느꼈다. 높은 설교단에 올라가서는 사다리를 끌어올려서 설교단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만드는 예배당 목사님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는 기독교적 우애란 허울뿐인 예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대신에 이교도 퀴퀘그와 담배를 같이 피우며 ‘진정한 친구’가 된다. 그러고는 퀴퀘그의 우상 숭배 저녁 기도에 동참한다.

엄격한 장로교회의 품에서 태어나 자란 어엿한 기독교도인지라 머뭇거리는 자신에게 이슈메일은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관대하고 고결한 하느님이 하찮은 나무토막에 질투를 느낄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스스로 반문한다. 물론 그건 같은 나무토막끼리라면 모를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숭배란 무엇인가? 이슈메일 생각에 그건 신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뜻이란 무엇인가? “이웃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을 이웃에게 해주는 것”, 그것이 신의 뜻이다. 그런 생각으로 이슈메일은 퀴퀘그의 예배에 동참하여 우상 앞에서 두세 번 절을 하고 우상의 코끝에 입을 맞춘다. 이후에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서 더욱 돈독해진 우정을 나누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슈메일과 퀴퀘그가 피쿼드호를 타고 출항하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이지만, <모비딕>은 그런 우정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고전으로서 값을 했다.  

11. 03. 19.   

P.S. <모비딕>은 교양강의차 읽고 있는 것인데, 다른 번역본들 외에 더 참고하고 있는 책은 멜빌을 전공한 신문수 교수의 <모비딕>(살림, 2005), 김옥례 교수의 <모비딕>(신아사, 2005), 그리고 호손과 미국소설학회 편, <모비딕 다시 읽기>(동인, 2005) 등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3-19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동서문화사판으로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2단 세로조판이었고 두께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것도 완역이 아니었군요. <백경>이란 제목이었죠 아마. 김석희 선생 번역이면 읽어볼 만하겠는데요. 별고 없으시죠? 요즘은 공연히 사람들에게 별일 없는지 묻게 되네요...

로쟈 2011-03-19 00:44   좋아요 0 | URL
완역본이 없었던 건 아니구요, 저도 동서문화사판은 새로 구해서 갖고 있습니다. 다만 강추번역본은 없었던 걸로 압니다. 저야 무고한데, 시절은 하수상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3-1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비딕>을 처음 읽었을 땐 눈에 안 들어왔지만 나중에 퀘이커 교도에 관심이 생기면서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그러면 선원들의 종교적 성향에 초점을 두고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로쟈 2011-03-19 18:23   좋아요 0 | URL
그것도 한가지 독법이겠네요...

yjsohn 2011-03-2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비딕하면 스타벅스 커피전문점이 항해사의 이름(스타벅)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떠오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0 16:28   좋아요 0 | URL
오...방금 제가 그 일화에 대한 페이퍼를 썼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