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북리뷰 가운데 뒤늦게 읽은 건 제이슨 델 간디오의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동녘, 2011)이다. 제목만으론 정체가 다 드러나지 않는데, 부제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이다. 수사학을 표방한 책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지 않은가 싶은데 실제로 원제 자체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수사학'이다. 하종강, 목수정, 안진걸, 노회찬 네 분이 추천 대열에 가담한 것만으로도 책의 성격을 짐작하게 해준다.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다. “언어를 바꾸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믿음, 가치, 태도, 행동이 바뀐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바뀌면 사회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언어를 수사학으로 새롭게 무장할 필요가 있다(음, 나도 문체를 좀 바꿔야 할지는 책을 읽어보고 판단해봐야겠다)...  

 

한겨레(11. 03. 05) 언어와 몸, 세상을 바꾸는 무기다 

부조리한 현실, 불공정한 사회…. 세상을 바꾸고 싶다. 마음은 불끈 더워지는데 실제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지를 모아 혁명을 꿈꿔야 할까? 주먹 꼭 쥐고 거리로 뛰쳐나가야 할까? 과연 이 시대 혁명이란 가능한가? 곧 주저앉고 만다. 바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질적 방안이란 없다! 패배주의의 악순환에 빠져들 뿐이다. 사회뿐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기저기 속한 크고 작은 그룹 안에서, 변혁의 소망은 쉽게 무너져내린다. 



그러나 바로 여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있다. 정말로? 미국 템플대에서 공공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며 실천가로도 활약중인 제이슨 델 간디오는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에서 장담한다. 변혁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의 과격한(?) 주장은 2008년 책에 담겨 세상에 나왔지만, 놀랍게도 지금 여기 지구 한쪽에선 혁명의 불길이 드높이 치솟고 있지 않은가.

그는 혁명의 가능성을 ‘수사학’에서 찾는다. 21세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급진주의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총도 칼도 돌도 화염병도 아닌 ‘수사’라고 힘줘 주장한다.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곧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다는 뜻이며, 이를 위해서는 설득의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전달하려는 고귀한 ‘내용’에 치중하느라 전달의 ‘방법’을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프리카·중동에서 부는 혁명의 태풍 뒤에는 소셜 미디어가 자리잡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전세계에 튀지니에서 일어나는 운동의 불길을 알렸고 세계 시민들의 소통과 연대가 혁명의 불을 당겼다. 선동가의 힘찬 연설과 거대 담론으로 혁명이 이뤄지던 시대는 지나고, 블로그의 포스팅 하나, 트위터의 트위트 한 줄이 논의를 촉발시키고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활동가들은 담론과 연설에 매달릴 게 아니라, 소통의 효과적 방식 곧 수사를 연구하고 전략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수사학은 “설득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나아가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지은이가 강조하는 까닭이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의 유별나면서도 매력적인 지점은, 단순히 수사의 중요성을 외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디오는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더불어 구체적인 수사 전략까지 제시한다. 한마디로 활동가들을 위한 수사 지침서이자 실용서인 셈이다. 책의 부제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이며 원제가 ‘급진주의자들을 위한 수사학’인 것도 그래서다. 



지은이가 수사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데다 2000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항의운동 장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엿본 뒤 본격적인 활동가의 길을 걸으며 현장에서 수사학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68혁명 이후 등장한 신급진주의(소통·수사를 수단으로 변혁을 꾀한다는 생각) 이론을 확장해 실천하는 한편, 집회나 모임에서 소통의 방식을 분석한 결과물로 이 책을 써냈다.

그가 강조하는 혁명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사는 글쓰기와 말하기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두 가지 수단. 활동가의 글쓰기와 말하기의 전략은 치밀해야 한다. 메시지는 무엇인지, 목표가 무엇인지, 독자나 청중은 어떤 이들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가령 글쓰기와 말하기는 완전히 다르게 준비해야 하는데, 글은 첫문장에 신경을 써야 하고 말은 숫자나 전문용어를 배제한 채 몸짓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

각론으로 들어가면 언어 선택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다. 이를 테면 ‘짭새’와 ‘견찰’, ‘미등록 노동자’와 ‘불법 이주민’ 중 어떤 단어 선택이 더욱 효과적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권력을 위해 조작된 언어의 본래 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역시 활동가의 몫이다. “언어를 바꾸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믿음, 가치, 태도, 행동이 바뀐다. 이렇게 모든 것이 바뀌면 사회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말의 언어를 넘어 몸의 언어도 지은이는 강조한다. 수사와 마찬가지로 몸의 맵시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여기서 수많은 활동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 같다. 혁명가는 외모를 가꾸고 몸에 치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선입견이 강하다. 그러나 말하기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선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의 분위기와 연설가의 외적 효과에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는다. 말하는 사람의 겉모습이 낳는 수사적 효과가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속 가능, 윤리적 소비 등을 연상시켜야 할 채식주의자가 뚱뚱하고 기름진 얼굴로 나타난다면 그의 올곧은 주장의 효과도 반감될 공산이 크다. 하다 못해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플래시몹 같은 거리 퍼포먼스를 연출하는 것도 효과적인 수사라고 간디오는 강조한다.(김진철 기자) 

11. 03. 09.   

P.S. 수사학이 본래 연설을 위한 기술이었으므로 '명연설'들을 참조해보는 것도 유익하겠다. '세계를 뒤흔든' 연설들이라면 더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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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3-10 15:10   좋아요 0 | URL
주역에 나오는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 는 표현을 긍정으로 바꿔 읽으면 뜻을(생각을) 먼저 세우고자 하면 말을(메를로 퐁티의 개념을 빌리면 세계와 지각을 매개하는 몸의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군요) 바꾸고, 글을 바꿔야 한다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실천적 영역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영역에서도 의미있는 방법론이라 생각됩니다. 말이 뜻을 전도하는 원래적 의미를 차치하더라도요....^^;

로쟈 2011-03-11 09:26   좋아요 0 | URL
전통적으로 수사학과 논리학은 적대적이었는데, 논리학(주장)이 승리를 위해서라도 수사학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걸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해요. 승리할 수 없다면 '공론'이 될 테니까 맞는 말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