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모스크바에서 원고를 쓰게 돼 고른 게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였다.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그린비, 2005)라고 나온 책이다. 더불어 제이 파리니의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솔춘판사, 2010)도 같이 읽은 책이다(여러 인물의 회고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한 장이 아샤 라치스의 독백이다). 한겨레의 표기 원칙에 따라 '벤야민'이 '베냐민'으로 표기됐고, '그녀'는 '그 여자'가 됐다('여인'이란 표기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로쟈'를 '로자'로 표기한 건 착오이다. 책에 나오는 '아샤 라시스'를 '아샤 라치스'로 고친 건 'Asja Lacis'의 발음이 그렇기 때문이다. 길출판사에서 나오는 발터 벤야민 선집부터는 그렇게 표기돼 있다. 원고는 출국을 하루 앞둔 목요일 아침에 쓴 걸로 기억된다. 다시 찾은 모스크바에 대한 나대로의 작별 인사였다.  

  

한겨레(11. 02. 19) [로자의 번역서 읽기] 혁명가를 사랑한 베냐민의 독백

모스크바에 오면 모스크바인처럼 행동해야 좋을 테지만, 대신에 모스크바와 관련한 책을 읽는다.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모스크바 일기>다. 자본주의 러시아의 수도에서 읽는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 이야기이기도 하다. 베냐민에 관한 회고록을 쓴 친구 게르숌 숄렘이 “가장 사적이며, 철저하고도 냉정하리만치 진솔한 기록”이라고 평한 이 일기는 ‘좌절된 구애의 이야기’로도 일컬어진다. 상대는 라트비아 출신의 ‘볼셰비키 혁명가’ 아샤 라치스였다. 다른 목적도 있었지만 순전히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베냐민은 1926년 겨울 모스크바를 찾았다. “지금까지 알게 된 여자들 중 가장 뛰어난 여인 중 하나”라고 할 정도로 베냐민은 라치스를 높이 평가했고, 1924년 여름 이탈리아에서의 첫 만남 이후 그 여자에 대한 열정은 그의 삶을 뒤흔들어놓았다. <일방통행로>의 헌사에서 “이 거리는 아샤 라치스 거리라 불린다. 엔지니어인 그녀가 저자 속에 그 길을 놓았다”고 적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걸출한 지성의 구애는 여인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다. 일기에서 베냐민은 ‘거의 점령할 수 없는 요새’ 앞에 봉착했다는 심경을 피력한다. “나는 내가 이 요새, 곧 모스크바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첫 번째 성과라고 자족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 무언가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거의 극복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는 게 그의 토로이다. 무엇이 장애물이었을까. 외적으론 물론 베냐민이 아들까지 둔 유부남이었고 혼자 딸 하나를 키우던 라치스도 연극연출가 베른하르트 라이히와 동거 중이었다는 사실이 상황을 나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성싶다. 



진실, 특히 남녀 간의 진실이란 다면적이기에 베냐민의 기록만으로는 ‘입체적인’ 그림을 얻기 어렵다. 베냐민의 일기와 함께 라치스의 회고록 <직업 혁명가>(1971)을 참고한 제이 파리니의 전기소설 <벤야민의 마지막 횡단>에서 아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아샤는 ‘별난 남자’로서 베냐민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우정보다 크지 않았다. “그에겐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냄새가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싫었던 건 그가 말을 더듬는 것과 에둘러서 말하는 것이었고, 그의 그런 면이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는 게 아샤의 고백이다. 게다가 아샤는 베냐민의 경제적 무능을 질타하고 지속적으로 공산당 가입을 권유했지만 베냐민의 회의적인 천성은 결단을 미루게 했다. 프롤레타리아가 지배하는 국가에서 코뮤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개인의 독립성을 완전히 포기하는 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우려였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도 주변적인 위치, 좌파 아웃사이더의 위치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했다.

반면에 아샤 라치스는 한 번도 주변인이 되는 것에 흥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집을 마련해줄 수 있는 힘, 종국에는 계급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이 공산주의자에게는 필요하다고 라치스는 생각했다. 주변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런 힘을 얻을 수 없는 노릇이다. 모스크바로 이주한 것도 이 도시가 민중 혁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아샤를 사랑함에도 베냐민은 당의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자신이 러시아의 삶을 견딜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가 혼자서 모스크바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아샤와 작별하면서 흘린 눈물은 순전히 그의 몫이었다. “무릎 위에 큰 가방을 올려놓은 채 울면서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지나 역으로 향했다.” 그를 떠나보내면서 아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그가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지긋지긋한 남자.” 

11.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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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2-20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나중에 혹시 모스크바를 여행할 천운을 얻게 된다면 로쟈님과 벤야민을 우선 떠올릴 것 같은데요 ㅎㅎ
며칠은 시차 때문에 고생하시겠네요^^

로쟈 2011-02-20 10:47   좋아요 0 | URL
6시간 시차가 별거 아닐 텐데, 졸리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