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앞두고 '다량 입하'하듯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눈에 띄는 책들을 꽤 챙겨놓고는 있지만 그래도 역부족이다(읽기는커녕 그냥 입수하는 것도 만만찮다, 비용면에서).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새 2월이 코앞이다. 2월이 오기 전에 넘겨야 할 원고들이 또 줄지어 있건만, 여하튼 그래도 '2월맞이'는 해놓는다. 연휴에 뒤이어 '휴가' 일정이 있어서 정작 책을 손에 들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외양'은 갖춰놓아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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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
정과리 교수가 고른 책은 최일남 선생의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문학의나무, 2010)다. 소설집이 아니라 에세이집. "한국에 수많은 글쟁이가 있지만, 한국어의 풍부한 어휘 자원을 자유롭게 골라가며 생각과 마음의 결과 꼴을 섬세하게 빚고 잣고 다듬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최일남 선생은 그 드문 이들 중의 한 분이다."라는 게 추천의 큰 이유다. 찾아 보니 이 문단 원로의 작품집이 근래에는 별로 나온 것이 없다. 산문집으론 <어느 날 문득 손을 바라본다>(현대문학, 2006)가 마지막 책이었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박완서 선생이 1931년생이고, 최일남 선생이 1932년생이다. 일테면 같은 세대다. '박완서 산문 읽기'를 최근 마이리스트에 올려놓기도 했는데, 남성 산문으로 '최일남 에세이'를 잇대놓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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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분야의 책은 손영호의 <다시 읽는 미국사>(교보문고, 2011)다. 미국사 개요 정도의 책으로 보이는데,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통합의 역사 USA, 신화의 역사 아메리칸 드림, 정복의 역사 총, 차별의 역사 아미스타드’라는 목차에서 보듯이, ‘통합’과 ‘신화’ 그리고 ‘정복’과 ‘차별’이라는 키워드로 미국사의 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물론 이 주제가 미국사 전반을 포괄하지는 못할 것이며, 다시 나누어진 각각의 소주제들은 서술이 다소 짧아서 심도 있는 분석에는 미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일반인을 위한 미국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해 줄 수 있겠다." 물론 조금 '긴' 걸 원한다면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2010)이 제격이다. 17권 분량이 오롯하니까. 더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의 자료집 <'미국 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후, 2011)을 더 얹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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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도 미국사지만 개인적으론 '읽기의 역사'도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여서, 스티븐 로저 피셔의 <읽기의 역사>(지영사, 2010)가 반갑다. 이 참에 로제 샤르티에 등의 엮은 <읽는다는 것의 역사>(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도 구해놓으려 했지만 이미 품절 상태여서 유감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까지 내 딴에는 '3종 세트'로 모아두려고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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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제이미 화이트의 <나쁜 생각>(오늘의책, 2010). 부제가 '논리적이며 비판적인 사고를 위한 안내서'이다. '비판적 사고'를 키워드 한 책을 더 찾아보니 <피셔의 비판적 사고>(서광사, 2010)도 눈에 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교재라고 한다(아마도 교양 논리학 수업에서). 한때 논술시험이 강조되면서 그런 교재들이 다수 출간됐었는데, 짐작에 '원조' 격으로는 김광수의 <논리와 비판적 사고>(철학과현실사, 2007)가 있었다. 논리학 입문서. 이미 예전 판은 절판됐고 현재 나와 있는 건 '쇄신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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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강미현의 <비스마르크 평전>(에코리브르, 2010)이다.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의 주역이고 독일제국을 일약 유럽의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피에 의존하고 민주주의에 역행한 독재자로서의 모습으로 인해 독일역사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인 인물이다. 초등학교 시절 세계위인전집에서 읽은 '비스마르크'의 인상이 다시금 떠오르는데, 언제 한번 일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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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가 비록 정치가이긴 하지만 평전으로 정치/사회 분야를 대체하는 게 멋쩍다면 박상훈의 <정치의 발견>(폴리테이아, 2011)를 더 얹어도 좋겠다. 부제는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올해는 큰 선거가 없는 해이니만큼 '공부'에 더 많은 투자를 해도 손해는 나지 않을 듯싶다. 박명림, 김상봉 교수가 공화국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답한 <다음 국가를 말하다>(웅진지식하우스, 2011)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 국가'의 상이 내년 대선의 화두가 될 거라는 '복지국가'이기도 하다면,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후마니타스, 2011)도 미리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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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조지 매그너스의 <고령화시대의 경제학>(부키, 2010). 제목 그대로, 저자는 "저출산 · 고령화로 전 지구적으로 부동산 등 자산가격과 물가, 저축, 정부재정적자 등 거시지표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선진국들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일 것인가? 고령화 문제를 시장에 맡겨서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정부가 개입해야 할까? 저출산의 원인을 종교적 신념의 약화와 세속적 자본주의에서 찾을 수 있을까?" 등의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낯익은 문제들인데, 그 해법은 마련돼 있는지 궁금하다('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진단도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나왔다).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문학동네, 2010)도 덩달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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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과학
장경에 동아사이언스 실장이 추천한 책은 조나단 실버타운의 <씨앗의 자연사>(양문, 2010)이다. '씨앗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 "씨앗의 생존방식을 비롯해 무엇이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지, 어떤 씨앗에는 기름이 많고 어떤 씨앗에는 녹말이 많은 이유, 먼지처럼 가벼운 난초의 씨앗에서 20kg에 이르는 쌍둥이코코넛 씨앗, 식물들이 힘겹게 유성생식으로 씨앗을 만드는 이유 등 씨앗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변화하는 환경에 자신을 적응해가는 진화의 힘으로 설명한다." 책 또한 그런 씨앗들만큼이나 탐스럽다. 그 씨앗들의 많은 수는 자라서 나무가 될 터인데,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김영사, 2011)은 그 또다른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 나무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개는 이렇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민족의 삶이 담긴 역사서와 고전소설, 옛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등 고전문헌의 명확한 해석을 통해 나무의 삶을 재조명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새롭게 탐구한 책이다. 나무들의 다채로운 삶과 생태를 생생히 담은 700여 장의 사진과 50여 장의 옛 그림을 통해 우리 나무의 세계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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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씨앗'이나 '나무'에 관한 책은 3월에 더 읽을 만한 책이고, 재앙 수준의 구제역 파동을 상기하자면 <바이러스 습격사건>(알마, 2011) 같은 책이 관심도서가 될 만하다. <대혼란>(알마, 2010)과 <조류독감>(돌베개, 2008)까지 한번 더 떠올려보게 된다. 한데, 대체 구제역은 언제 종결되는 것일까? 근본적인 대책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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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쉬레이의 <집, 예술이 머물다>(시그마북스, 2011). 짐작이 갈 듯 말 듯한 제목인데, 소개에 따르면, "중국의 예술가이자 인문학자인 쉬레이가 편집한 이 책에서는 집이라는 공간에 깃든 일상의 아름다움과 특별함을 발견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책장을 넘기면서 중국 황제의 침실에서부터 문인들의 우아한 정취, 유럽 명문가의 장원, 이슬람식 샹그릴라 풍으로 지은 집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뒤편에는 중국의 현대미술작품 속에서 어떻게 집의 개념을 제시하는지 보여준다." 그런 종류라면, 여전히 왕성하게 책을 내고 있는 임석재 교수의 <서울, 건축의 도시를 걷다>(인물과사상사, 2010)도 챙겨놓을 만하다. 잘 아는 듯하면서도 낯선 서울의 모습과 조우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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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책은 폴 존슨의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이마고, 2010).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의 유명 인사 인물평이다.
"저자는 기자 출신으로 100여 명의 유명 인사를 실제로 만난 이야기를 아주 짧지만 인상적으로 전해 준다. 피카소는 자신이 만난 사람 중 가장 사악한 사람이었다거나 로널드 레이건은 유머에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거나 사르트르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어서 죽을 때는 무일푼이었다는 것 등이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유명 인사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모두 가벼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왜 토인비가 얼마나 형편없는 역사가인지 혹은 리처드 닉슨이 얼마나 통찰력이 대단했던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미 <지식인의 두 얼굴>에서 그의 '독설'을 만끽한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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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실용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쌤앤파커스, 2010). 요즘 청춘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책인데, 추천의 변은 이렇다.
저자의 신실함은 방법론을 전하는 데서 빛난다. 이를 테면 꿈을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하고, 정체성은 성찰을 통해 발견할 수 있으며, 그 성찰에 이르는 길로서는 독서, 대화, 여행을 꼽는 식이다. 길을 먼저 걸어간 선험자의 내비게이션은 구체적인 지시어로 이어진다. 시간을 잘 관리하라, 신문을 제대로 읽어라, 글쓰기 능력은 힘이 세다….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선다. 저자는 한국인의 평균연령을 80세로 잡는다면 24세는 아침 7시 12분이라고 셈했다. 대학을 졸업하거나 재학 중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이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책은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푸른숲, 2010). 그리고 20대 청춘의 압도적 현실을 가리키는 키워드로서 대학 등록금 문제를 파헤친 <미친 등록금의 나라>(개마고원, 2011)이다. '독서' '대화' '여행' 말고도 해야 할 일을 찾아볼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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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아시아
최근 개인적인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인데, 그건 워낙에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면도 있다. 중국 문학 번역서도 넘치고 중국 경제를 다룬 책들도 거의 매주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중국을 이해하는 한 가지 시각은 '동아시아'라는 문맥 속에서 바라보는 것인데,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 출간돼 읽어볼 참이다.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창비, 2011)가 그것이다. 아울로 개정판으로 나온 <동아시아인의 '동양' 인식>(창비, 2010)도 지난 연말에 챙겨둔 책이다. 한국사가 다시금 고등학교 필수 교과목으로 채택된다는 얘기가 나오던데, 세계화시대에 보조를 맞추자면 '동아시아사'나 '세계사'가 필수 과목이 돼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11.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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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 이번에 다시 나온 E. H. 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열린책들, 2011)을 고른다. 평전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데 좋은 가이드가 되는 책이고, 개인적으론 오래 전 학부시절에 홍성사판으로 읽은 기억도 새로워서 골라놓는다. '이달의 고전 작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고른 셈 치면 되겠다. 마르끄 슬로님의 <도스또예프스끼와 여성>(열린책들, 2011)도 같이 나왔는데, 이 책에 대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 여인'(http://blog.aladin.co.kr/mramor/1120144)이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일본 비평가의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열린책들, 2011)까지 다 챙겨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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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카의 평전을 손에 들었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작들도 같이 책상에 올려놓으면 좋겠다.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과 두번째 소설 <분신>, 그리고 시베리아 유형 이후의 복귀작 <죽음의 집의 기록> 등이 추천하고픈 작품들이다. 음, 나도 다시 읽고픈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