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에 <더블>(창비, 2010)에 실린 박민규의 단편 <루디>를 읽고서 바로 쓰게 된 칼럼이다. 몇 편 읽지 않은 그의 단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경향신문(11. 01. 18) [문화와 세상]부조리한 ‘홍대 미화원 사태’ 경악

작년 여름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쪽방촌에서 1박2일 체험을 한 후에 6300원(1인 가구 최저생계비)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소감을 홈피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차 의원은 사과의 글을 다시 올리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성은 ‘여론’의 몫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시 빈민들의 삶을 부당하게 모욕했다고 분개하기보다는 검약한 차 의원의 생활태도와 진심을 살펴봤어야 했다. 최소한 차 의원의 경우라도 의정활동비를 ‘황제 수준’으로 다시 계상하는 것이 정당한 ‘사후조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것이 이명박 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공정사회’의 기조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지난해 여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 것은 지난 3일부터 부당해고에 맞서 고용승계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점거농성 중인 홍익대 미화원의 하루 식대가 300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고 한다.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주로 교내에서 폐지를 주워 판 돈으로 점심을 해결해 왔는데, 학교 측이 폐지 판매대금을 챙겨가면서 대신에 한 달 식대비로 9000원씩을 줬다는 것이다. 단순계산으로 이들의 하루 점심값은 300원이다. 그에 비하면 경탄스럽게도 6300원은 가히 ‘황제의 식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현실의 문제가 ‘경탄’만으로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부조리한’ 방식을 동원해야 할까? 대학당국은 용역계약을 해지한 청소·경비 노동자 170명을 대신할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청소인력에게는 일당 7만원, 경비인력에겐 10만원을 준다고 한다. 일당 2만5000원에 부리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3~4배나 많은 비용을 들여 대체인력을 쓰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신의 도움이 필요할 듯싶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경탄과 부조리가 해결책이 아니라면 ‘경악’은 어떨까. 용역 청소부가 주인공인 박민규의 단편 <루디>를 떠올려서다. 루디 워터스는 한 금융회사에 청소부로 12년간 근무하다가 스스로 그만둔 평범한 인물이다. 그 회사의 부사장인 ‘나’ 보그먼은 청소부를 괴롭힌 적도 없고 청소부와 마주칠 직위도 아니다. 하지만 알래스카 여행 중에 무료한 고속도로에서 루디를 만난다. 나머지는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다. 총을 들이대며 타이어 바퀴를 갈라고 하더니 길에서 똥을 싸라고도 요구한다. 루디는 주저하는 ‘나’의 한쪽 귀를 대번에 총으로 날려버린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나’는 애원해보지만 “너 이 새끼… 날 상대로 이자놀이 하려는 거지”라는 게 루디의 대답이다. 결국 루디와 동행하게 된 ‘나’는 비위를 잘못 맞추었다가 오른팔마저 잃는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서 여러 발의 라이플 총알을 루디의 몸에 박아 넣지만 루디는 죽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루디는 이제 무서운 인간, 인간을 넘어선 인간이 돼 있다.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나는 그저 너희를 평등하게 미워할 뿐이야. 너도 평등하게 우릴 괴롭혀 왔으니까”라는 게 루디의 대답이다.

두 사람의 결말이 궁금하신가? 루디를 죽이지 못하고 다시 동석하게 된 ‘나’는 탁 트인 절벽끝까지 차를 몰고 가게 된다. 루디는 “달려”라고 말하지만 ‘나’는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러자 ‘탕’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나’는 여전히 루디와 함께이며, “영원히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함께’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국판 악몽이 따로 필요한지 생각해볼 문제다

11.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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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6 2011-01-1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자 경향신문에서 봤습니다ㅎㅎ

'한달 식대 9000원'이라는 구에 눈길이 가네요. 제가 공익근무할 때, 식대로 하루에 5000원을 받았습니다. 제 근무지의 직원분들이 그 사실을 알고 놀려댔죠. '공익이 우리보다 식대가 많네~'하면서요. 그말을 듣고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상황을 약간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 잘 봤습니다 로쟈씨~




로쟈 2011-01-19 00:12   좋아요 0 | URL
'경악'을 통해서만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건지 회의적일 때도 있습니다...

philocinema 2011-01-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재미나게 읽은 뒤로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는 별 감흥 없이 지나쳤었는데, 이번 소설집은 왠지 끌리는 바가 있네요! 표지도 이채롭고...말입니다.

로쟈 2011-01-19 00:08   좋아요 0 | URL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품들도 포함돼 있지만, '괴력'을 선보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philocinema 2011-01-19 08:58   좋아요 0 | URL
파'괴력' 있는 작품들을 저도 좀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