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60만부가 넘게 팔려나가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스테판 에셀의 정치 팸플릿 <분노하라!>(2010)와 관련된 기사와 칼럼을 몇 개 모아놓는다. 그리고 '세계의 책'으로 분류한다. 본문 13쪽의 전체 30쪽짜리 책이라는데, 우리의 경우라면 300쪽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분노의 시대, 분노를 부추기는 시대에 부치는 '격문'이다.
한겨레(11. 01. 06) '분노하라!’ 프랑스 뒤흔든 ‘30쪽의 외침’
30쪽짜리 작은 책 하나가 프랑스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앵디녜 부!>(Indignez vous!). 우리말로 ‘분노하라’는 제목의 소책자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독일 나치에 맞섰던 스테판 에셀(93·왼쪽)이다.
지난해 10월 초판 8000부가 출간된 이 책은 석달 새 무려 60만권이 팔려나갔고, 크리스마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 힘입어 새로 20만권을 증쇄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전했다. 100살을 바라보는 레지스탕스 영웅은 이 책에서 프랑스인과 다른 모든 세계인들에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다. 광고문구와 주석을 뺀 본문은 13쪽에 불과해, 책이라기보다 격정적인 정치 팸플릿(레드북)에 가깝다.
다분히 선동적인 이 책이 판매부수 2위의 소설책보다 8배나 많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은 단지 3유로(약 4500원)라는 저렴한 책값과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 덕에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라는 칼칼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시장독재와 은행가들의 보너스와 재정위기가 전후 복지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감한 신경을 정면으로 타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노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는 이유다.
에셀은 신년 메시지에서 자신의 책이 성공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자신이) 1940년대에 나치즘에 맞섰던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도 정치·경제·금융 권력의 공모에 맞서, 2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적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에선 미묘한 정치적 파장까지 일고 있다. 지은이가 일깨운 프랑스적 가치인 ‘레지스탕스’(저항)가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의 보수파 정권에 저항해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책의 한 대목은 이렇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조일준 기자)
한겨레(11. 01. 10) [한겨레 프리즘] 분노의 시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신드롬이 되는 문화엔 그 사회의 당대 정신이 녹아 있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코드는 ‘불안’과 ‘분노’다. 미국이라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록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동명 앨범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2009년 초연 땐 작은 뮤지컬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깊은 불안을 드러낸 “아메리칸 레퀴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음악을 하다 마약에 빠진 젊은이와 9·11 이후 애국심에 떠났던 이라크 전장에서 한 다리를 잃은 또다른 젊은이,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 집에서 꼼짝 않는 또다른 친구.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이라면 마약과 섹스에서라도 구원을 찾겠지만, 21세기 이들 세대에겐 출구가 없다. 싸울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고 하강하기만 하는 이들 청춘은 한국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의 절망을 닮았다.
프랑스에선 이런 절망감에 놀랍게도 올해 93살의 레지스탕스 출신 노인이 분노의 불을 붙였다. 스테판 에셀의 13쪽짜리 본문의 소책자 <분노하라>(Indignez-vous)는 지난해 10월 영세출판사에서 8000부를 찍은 데서 시작해 현재 8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새로운 시대의 ‘선언문’이 되기엔 독창성도, 깊이있는 분석이나 날카로움도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이 책의 폭발적인 인기 배경엔 극적 에피소드들이 작용했을 수 있다. 유대인 출신 작가 아버지와 자유로운 정신의 화가인 어머니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줄 앤 짐> 원작의 모델이었다거나, 에셀 자신이 1944년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 직전 숨진 프랑스인과 신분증을 바꿔 가까스로 탈출했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란 점 등이 그렇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 전세계 좌파들이 무능하게 대응할 때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진 ‘찬사받는’ 좌파인물의 등장은 울림이 크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삶과 말이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 이제 프랑스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모토로 하던 그 나라가 아니다. 최근 53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프랑스는 응답자의 61% 이상이 2011년 경제를 어둡게 전망해 가장 ‘비관적인 국가’로 꼽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야만적인 이민자 정책, 복지 축소 등에 프랑스를 프랑스로 존재 가능케 했던 ‘평등’과 같은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각국 언론들은 이 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서구사회에 번져가는 대중적인 불안과 분노의 정서를 건드렸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안젤름 야페는 <죽을 때까지 빚진: 자본주의의 해체>에서 “2008년 붕괴는 단순히 재정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주와 불통은 임계치를 넘고 모든 복지 주장은 이성적인 논의도 해보기 전에 포퓰리즘 딱지부터 붙는다. 전세금을 1억원씩 올려달라는 요구에 고민하는 사람들 얘기가 주변에선 끊이지 않는데, ‘전세보증금 증액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04년 이후 번번이 국회에서 무산되고 있다.
어떻게 선진국과 비교하냐고? 1970년대 이후 수십년간 이런 논리는 반복돼왔다. 하지만 복지는 부유할 때 나눠주는 ‘자선’이라는 사고가 박혀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복지는 자본의 팽창 욕망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시 에셀을 읽는다. “그들은 감히 우리에게 국가가 더 이상 시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히’라고 국가에 당당히 일갈하고 분노하라고.(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경향신문(11. 01. 15) [목수정의 파리통신] 분노하고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2011년이 열리고 나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분노하라(Indignez Vous!)>다. 가장 많이 지면에 등장한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다. 올해 그는 한국 나이로 95세에 이른다.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전후에는 외교관으로, 말짱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한 세기를 살아온 이 다복한 남자는 단 13페이지의 짧은 책을 써서 3개월 만에 60만부를 팔아 치운 경이로운 사회 현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이던 30여분 남짓, <분노하라>를 급히 사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목격하면서 범상치 않은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조용히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년 들어 프랑스의 모든 언론들이 <분노하라> 특집을 앞다투어 다루면서 바야흐로 2011년은 분노의 시대로 정의되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입속에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적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파괴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를 관철시킨 사르코지 정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난 시대에 자신들이 건설해 온 사회체제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바로 ‘분노’다.
그러나 차마 사람들이 그것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그 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어린 아이가 그의 벗은 몸을 거침없이 비웃던 것처럼, 한 세기를 살아낸,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이 당당한 노인이 거리낌없이 말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이 당신들의 분노를 끄집어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를 구해낼 때라고.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국민연금과 사회보장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사회체제는 전후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간 레지스탕스 정신의 산물이라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사회를 지켜야 하며 이민자를 축출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며, 언론은 한 줌 권력집단에 장악당해 있는 이런 사회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했던 그 사회가 아니라고. 과거 그가 나치에 저항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사회적 덕목들을 훼손시키는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더 많은 정의와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 에콜노말에 입학했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독일군에게 잡혀있다가 탈출한다. 전후에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외교관의 안락한 삶은 그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보수적인 삶으로 주저앉히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하고, 인권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며,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중재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그를 분노케 하고, 열정을 부추기는 사건에 동참하면서 역사의 한 흐름을 지켜왔다.
우리에게도 점령당했던 역사와 그 치욕에 항거하여 몸을 불사른 용맹스러운 레지스탕스(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과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고, 그들의 진취적인 정신은 해방공간을 차지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 이승만이 집권한 해방 후 이 땅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친일세력들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들이 벌여놓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는 청년들의 분노를 샀고,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거리로 나섰다.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마주한 청년들은, 눈 멀고 귀 먹은 이 식물 대통령에게 이 나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주주의 말살 행위를 고한다. 이 때 이승만은 “나라에 이런 부정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해방 이후 잘못 끼워진 단추의 비극은 지금까지 우리를 불행한 역사의 질곡에 붙들어 매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분노하고, 행동하는 청년들의 열정이었다. 그 분노와 행동은 눈먼 자에게도 한줄기 정의를 일깨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분노할 일은 넘치고, 행동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2011년의 초입이다.
11. 01. 16.
P.S.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 6장에서도 분노의 문제가 다뤄지는데, 슬로터다이크의 <본노와 시간>에 대한 논평을 겸하면서 지젝은 '분노 자본'의 축적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분노 자본이 한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 민족적 분노이건 문화적 분노이건 다른 분노를 더 끌어오거나 결합시켜야 하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분노의 국지적, 간헐적 표출보다는 '분노의 전지구적 은행'이라고 말한다. 분노의 시간은 분노의 축적과 폭발이란 두 계기를 포착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