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릴케에 관해서도 언급할 일이 있었다. 그건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파스테르나크가 어린시절에 릴케를 직접 본 적이 있어서다. 1910년 릴케는 연인 루 살로메와 함께 두번째 러시아 여행에서 톨스토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파스테르나크는 그때 두 사람이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그의 나이 열살 때이다.   

<말테의 수기>(펭귄클래식, 2010) 새 번역본이 나온 걸 보니 다시금 두 사람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내가 스물여섯 살 때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의 하나다.스물여덟 살이던 말테 부릭게는 이렇게 적었었다.  

그의 공간: "나는 여기 나의 조그만한 방에 앉아 있다. 부릭게, 이 스물여덟이 돼버린 나라는 인간은 아무에게도 알려진 바 없다. 나는 이런데 앉아 있기는 하지만 전혀 존재가 없다. 그렇지만 그 존재 없는 인간은 무엇이든 생각해보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5층의 이 낡은 방에서, 그리고 파리의 회색 빛 오후의 하늘 밑에서..."   

그의 시: "아아, 시를 썼다고는 하지만, 젊어서 쓰는 시라는 것이 별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있게 기다려야만 될 것이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실: "집에 앉아 오후의 따뜻한 빛줄기를 바라보고 옛날에 살았던 처녀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서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인간의 운명이냐. 나도 이 세상 어느 곳에 집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나의 생활은 정반대였다. 나 자신은, 딱한 일이지만, 은신할 수 있는 지붕조차 없으며 비는 사정없이 내 눈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의 생활: "나는 홀로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이 세상을 헤매고 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생활이란 말인가? 집도 없고 상속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다... 나는 늙는다고 하는 것을 즐거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삶: "나라는 인간은 아직 나이 어리고 보잘것없는 외국인에 지나지 않지마는, 그러나 이 부릭게로서는 5층 꼭대기 하숙방에 앉아야만 되고 써야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써야만 되겠다. 쓴다고 하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종결이 될 것이다... 나는 아주 많이 쓰고 싶다."  

나도 스물여덟 살이던 해 일기에다 "언젠가는 나도 아주 많이 쓰고 싶다"고 적었었다. 지금이 그 '언젠가'인가? 뭔가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말테의 수기>를 한번 더 읽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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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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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문현미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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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박환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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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용민 옮김 / 책세상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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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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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7: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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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5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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