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로에 있는 서점에 들렀지만 헛걸음하게 만든 책은 버나드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문예출판사, 2010)이.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와 함께 물류창고에는 들어와 있었지만 아직 매장에는 깔리지 않은 것. 매출에 좀 무심한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에서 구매하려다 좀더 빨리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종종 오프라인 서점을 찾지만 대개는 이런 식이다. 물론 눈에 띄는 몇 권의 다른 책을 구입했으니 아주 헛걸음은 아니었지만. 일단 리뷰기사만 먼저 챙겨놓도록 한다.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은 책의 부제다.

경향신문(10. 10. 30) “도덕 찾다간 경제 망해” 천민자본주의 씨앗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시샘과 헛바람은 산업의 역군이니 그들이 즐기는 멍청한 짓거리인 먹고 쓰고 입는 것에 부리는 변덕은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악덕이지만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바로 그 바퀴였다. … 이제 악덕은 교묘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사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 쓴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 또는, 정직해진 악당들’의 일부다. 맨더빌은 이 풍자시가 포함된 책 <꿀벌의 우화>를 1723년 출판했는데 ‘종교와 미덕을 깎아내리고 악덕을 부추긴다’며 큰 비난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맨더빌의 주장은 ‘악덕이 경제를 풍요하게 만든다’는 주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도덕 찾다가는 경제가 다 망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단순한 것도 고상하게 말하는 게 특기인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부른다. 맨더빌이 이 가설의 최초 주창자라고 할 순 없겠으나 체계화된 글로 남긴 것은 사실이다. 맨더빌이 이 책을 쓴 지 300년쯤 지났지만 우리 일상에서 비슷한 주장을 쉽게 들을 수 있다. ‘눈먼 돈, 검은 돈이 좀 돌아야 밥장사, 술장사도 먹고 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너무 천박한가? 그렇다면 ‘경쟁력이 충분한 수도권의 규제를 풀어서 전체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토록 해야 한다’는 논리는?
맨더빌이 살던 시절의 영국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려면 100년쯤 기다려야 했지만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하면서 큰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절제와 겸양, 정직과 근면 등 도덕을 강조하는 근엄한 목소리가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맨더빌은 이런 것들을 위선이자 경제에도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고 정면에서 비판한 것이었다. 우리는 아담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을 해방시킨 인물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스미스의 유명한 명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꿀벌의 우화>를 번역한 최윤재 고려대 교수에 따르면 스미스에게 돌아가는 찬사 혹은 비난은 대부분 맨더빌에게 돌아가야 한다. 최 교수는 “맨더빌은 돈 벌 욕심을 아예 버리라는 낡은 도덕을 비판한 사람이다. 그런 맨더빌을 따라 돈 벌 욕심을 받아들이되 돈 벌자고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는 짓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스미스의 도덕감정이고, 그런 짓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 칸트의 도덕원칙이다”라고 말했다.
‘Mandeville’이라는 이름 때문에 도덕론자들로부터 ‘인간 악마’(Man-Devil)라고 불렸다는 맨더빌. 신자유주의 경제사상을 정립시킨 하이예크는 맨더빌에 대해 “아무도 읽어서도 안되고 물들어서도 안되는 인물로 찍혔지만, 결국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읽고 그에 물들어갔다”고 말했다. 번역자 말마따나 현대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근원을 살피려는 사람은 맨더빌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꿀벌의 우화>는 고전이지만 처음 번역됐다.(김재중 기자)
10.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