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매번 차례가 닥칠 때마다 무얼 쓸 것인가 고민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정말 고민스러웠고 궁여지책으로 최근에 강의준비차 다시 읽은 플라토노프의 단편 <포투단 강>에 대해서 썼다. 그나마 '가을은 독서의 계절' 같은 주제를 피한 걸 위안으로 삼는다. 플라토노프에 대해선 오늘도 강의가 있었는데, 연이어 칼럼까지 할애했으므로 나름대로는 작가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 것이라 생각한다. <포투단강>은 단편집 <귀향 외>(책세상)에 실려있다. 

  

경향신문(10. 10. 26) [문화와 세상]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러시아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 20세기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포투단 강>이란 단편이다. 193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배경은 내전 직후인 1920년대 초반이다. 1917년에 10월혁명이 일어났지만, 레닌의 혁명정부는 곧 반혁명 세력과의 내전을 4년간이나 치르게 된다. 이야기는 내전에 참전했던 적군(赤軍) 병사 니키타 피르소프가 귀향하는 걸로 시작한다. 집에는 아내와 두 아들을 먼저 잃고 홀로 막내아들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버지가 있다. 3년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제 부르주아들을 다 쳐부순 거냐고 묻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야 했다. 니키타는 어릴 적 아버지가 재혼할 뻔한 여교사의 딸 류바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에겐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던 류바는 그 사이에 가엾은 처지가 됐다. 그녀는 어머니를 잃고 남동생은 전선으로 보내고 혼자서 어렵게 의료과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니키타는 아버지가 다니는 목공소에서 목수 일을 시작하고 류바가 먹을 저녁을 나르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등유는커녕 장작도 부족한 형편이라 류바는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의학 책을 읽어야 했고, 니키타가 그 옆에서 어두워질 때까지 말없이 기다리며 앉아 있는 것이 두 사람의 ‘데이트’였다.

니키타는 거의 매일 그녀를 찾아갔지만,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날에는 류바에 대한 그리움을 참기 위해 도시를 몇 바퀴씩 걸어다녔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 이상의 더 큰 행복이 존재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난하고 배운 것도 없는 제대군인이 과연 그녀에게 필요한 존재인가 회의하다가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는 류바를 더 이상 찾아가지 않기로 결심하지만, 티푸스에 걸려 앓아누운 그를 극진히 보살펴준 사람은 류바였다. 류바가 졸업을 하자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한다.

플라토노프는 청년시절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건설되리라고 믿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부르주아 단계를 넘어선 프롤레타리아 단계에선 의식이 성을 누르고 자연과의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성과 사랑에 대한 그런 유토피아적 관념이 니키타에게도 투영돼 있는데, 그는 류바와 결혼하지만 성생활은 회피한다. 게다가 이 특별하고도 사랑스러운 존재를 다치게 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는 아내를 너무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잘 참아주던 류바가 어느날 밤 고통을 억누르며 몰래 흐느끼는 모습을 보고서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가출한다. 괴로움을 떨치기 위해 말하는 것도 잊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시장거리에서 일을 하며 지낸다. 우연히 만난 아버지에게서 류바가 포투단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그는 집으로 돌아온다. “나와 사는 게 힘들지 않겠어요?”라고 류바는 묻고, “난 이제 당신과 함께 행복해지는 데 익숙해졌어”라고 니키타는 답한다. 류바의 야윈 몸이 늦은 밤 싸늘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었다는 것이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교훈은 무엇인가? 니키타의 아버지처럼 아내가 없다면 집안에는 하다못해 고슴도치나 집토끼라도 있어야 인간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인가. 니키타도 결국 인간적 자연 혹은 본성과 화해하게 되지만, 중요한 건 그의 ‘우회’다. 플라토노프가 꿈꾼 ‘플라토닉한’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비록 유토피아적이긴 하지만, 부르주아적 성 관념과 접대문화가 ‘대세’인 시대에는 오히려 ‘아름답게’ 여겨진다. 사랑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부른 이유다. 

10. 10. 25.  

P.S. <포투단 강>은 알렉산드르 소쿠로프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소쿠로프의 초기작 <인간의 외로운 목소리>(1978)인데, 개봉은 1987년에야 이루어졌다. 원작을 그대로 옮긴 건 아니지만, '정서'는 느끼게 해준다. 소쿠로프는 니키타와 류바가 거리에서 만나는 장면을 숲에서 만나는 걸로 재설정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떤 것인지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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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 문학작품의 또 다른 맛
    from 창조를 위한 검은 잉크의 망치 2010-10-26 13:07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20세기 후반에서야 발견되어 20세기의 도스토예프스키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글은 도스토예프스키나 고골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 느낌이 정확하게 명명이 안되지만 그 원인의 상당부분이 그의 이력과 관련있는 것 같아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소개글을 옮겨 놓는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는 러시아의 남부 도시 보로네쥐에서 철도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2010-10-25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6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케빈 2010-10-26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니.. 저에겐 달밤에 하품이 나올만한 주제입니다.^^

로쟈 2010-10-26 21:40   좋아요 0 | URL
집토끼라도 키워보시길...

반딧불이 2010-10-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정적으로 오래전인 기억을 떠올려 주셔서 나중에라도 다시찾아보려고 먼댓글로 연결했습니다.

로쟈 2010-10-26 21:39   좋아요 0 | URL
이미 읽어보신 책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에서 만나는 남녀...분위기가 참...뭐랄까요,쓸쓸하네요.배경음악도...

로쟈 2010-10-26 21:38   좋아요 0 | URL
소쿠로프의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잔잔한호수 2010-10-2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경향신문에서 칼럼 읽고 댓글 남겨봅니다. 블로그에서, 지면에서, 선생님 글을 통해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 '플라토닉'한 '프롤레타리아' 문화라는 말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요? 제 의문은, '프롤레타리아'란 개념 자체가 이미 (反육체적인) '플라토닉함'과 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인데요….
타락한 부르주아적 접대문화는, 플라토닉하고 유토피아적인 성 관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프롤레타리아적인 성(性)의 건강성과 육체적 솔직함이 비틀리고 억눌려서 나타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의문을 간략하게나마라도 풀어줄 수 있으신지요.^_^ 부탁드려봅니다! )

로쟈 2010-10-28 07:2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지만,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자들은 금욕적 성애관을 갖고 있었어요. 플라토노프는 젊은시절에 성 자체를 부르주아적이라고 생각했구요. 그 당시엔 아예 죽음도 부르주아적이라고 생각해서, 오직 부르주아들만 죽는다라고도 했지요. 성적 욕망도 극복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했으니 '유토피아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