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교수신문에 실린 '번역단상'을 스크랩해놓는다. <번역투의 유혹>(이학사, 2010)의 저자 오경순 박사가 '번역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간추리고 있다. 흔하게 쓰는 말이긴 한데, '번역투'가 실제로 무엇이며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끔 한다.

  

교수신문(10. 09. 06) 韓·日語의 편견에 기댄 직역이 ‘일어투’ 과잉 낳았다

번역학은 1983년에야 비로소 하나의 독립된 신생학문으로 정립됐다. 21세기 들어 번역학 연구는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언어학, 사회학, 인류학, 민속학 등 학제간 연구의 관점에서 다양한 분야의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 지식사회에서 번역을 문화의 힘으로 보는 인식의 확산 때문이다.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해 어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글로 표현할 때 어색하고 의미가 쉽게 전달되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번역투란 우리말에 남아있는 부자연스러운 외국어의 흔적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글에서 원문이 아닌 번역문이란 흔적이 일정하게 반복해서 나타나는 경우, 그러한 특성을 바로 번역투라고 한다.

번역학, 1983년 신생학문으로 독립
예를 들어 ‘만나다’, ‘모이다’라고 해야 할 것을 ‘만남을 가지다’, ‘모임을 가지다’라고 번역하는 경우는 영어의 ‘have+명사’를 직역한 번역투이다. ‘즐거운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는 ‘Have a good time.’을 직역한 번역투이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가 자연스런 번역이다. 

또한 아래 예와 같이 번역한 우리말을 보면 원문인 일본어가 그대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직역투 표현 역시 대표적인 번역투라 할 수 있다.

「獨島/竹島硏究における 第三の視覺」
‘독도(다케시마)연구에 있어서 제 3의 시각’
?‘독도(다케시마)연구의 제 3의 시각’

일본식 후치사 ‘~における’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에 있어서’는 글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군더더기 표현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없어도 의미 전달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에 있어서’, ‘~함에 있어서’는 ‘~에’, ‘~데’, ‘~에서’, ‘~에게’, ‘~의’, ‘~이’, ‘~할 적에/때’, ‘~의 경우는’ 등의 표현이 자연스러운 우리말 번역이다. 일한 번역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읽는 많은 말과 글 속에서도 일본식 용어나 구문, 일본식 造語, 일본식 한자어를 그대로 직역해놓은 듯한 번역투 표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간절기 패션으로 잘 나가는 상품이에요.”(<한국일보> 2006. 10. 12)

간절기란 일본식 표현을 오역한 것이다. 일본어에는 환절기에 해당하는 한 단어로 된 용어가 없다. 대신 ‘절기의 사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어로 표기하면 ‘節氣の間’이다. ‘間(あいだ)’는 공간과 시간의 간격을 나타내는 용어다. 또는 ‘季節のわり目’라고도 한다.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무분별하게 오역한 결과이다.

구체적인 번역투 극복 방법 없어 
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 구조상 유사한 점이 많지만 차이점도 많다. 흔히 한·일 양 언어가 유사하단 선입관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양 언어의 문법 구조와 어법, 화용적 특징, 관용어법 등을 고려하지 않은 일대일 대응의 직역 방법이 자칫 번역 오류 및 품질이 좋지 않은 번역투로 이어지기 쉽다.

번역투는 번역자가 원문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우리말 구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번역어는 일차적으로는 원문의 언어 내적·외적 의미에 부합하는 정확한 어감 및 의미 전달을 목표로 해야 하며, 이차적으로는 우리말 체계에 적합해 부자연스럽거나 생경하거나 번역투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을 위해서는 우리말 표현 능력이 전제돼야 함은 물론, 번역자는 번역투의 문제를 사전에 충분히 인식하고 이를 가급적 줄여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고려할 때 번역과 번역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번역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번역학 논문이나 번역 연구서, 번역 지침서 등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나온 일어일문학계의 일한 번역 관련 논문들을 살펴보면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 분석해 오역 사례를 지적하고 오역을 유형별로 분류·정리해 번역의 중요성을 제시한 논문이 대부분이며, 번역투와 관련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번역투와 일본어투에 관한 기존의 일부 연구는 국어 전공자들이 국어 순화 및 국어 문체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문제점을 제시한 성과는 있으나 구체적인 번역투 극복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일본어 전공자의 번역투 및 가독성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본어 전공자의 번역투 문제 인식과 극복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는 다문화·다언어 사회인 지구촌 사회로 급속히 변모하며 국가 간의 관계 및 교류가 한층 긴밀하고 다양하며 광범위해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번역의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번역 교육의 필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시대에 부응하는 당연한 결과이다.(오경순 고려대 일본학연구센터) 

10. 09. 10.    

P.S. 저자의 전공분야에 따른 것이지만, 주로 일본어 번역투에 대한 사례를 많이 들고 있는데, 언어적 영향관계에서 불가피한 부분과 불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에 번역학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대중적이진 않지만 이 분야의 책들(주로 학술서)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엔 <번역학 발전사>(이화여대출판부, 2010)도 번역돼 나왔고, 중국 학자의 <신번역학 논고>(한국문화사, 2010)도 눈길을 끈다. 도서출판 동인에서는 '번역학총서'를 출간하고 있는데, 번역투 문제와 관련해서는 <번역과 정체성>(동인, 2010)도 참고해볼 만하다. 번역/통역과 문화적 헤게모니의 관계를 짚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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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2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oonta 2010-09-1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번역투를 문제삼는 배경에 자리잡는 일종의 민족주의가 좀 꺼림찍하게 느껴집니다. 이와관련해서는 일종의 '실용주의'가 더 좋지 않을까요? 원산지가 어디든지간에 한국어로 전용되었을때 한국어의 표현자체를 풍부하게 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라서요. "~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의"라고 표현할때의 느낌과 "~에 있어서"를 사용할때의 느낌은 서로 다를 수있습니다. 이런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오히려 "~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수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 아닌가요?

로쟈 2010-09-12 08:45   좋아요 0 | URL
기본적으론 그런데, 그 뉘앙스 차이에는 '오렌지'와 '어린지'의 차이도 포함되죠. 효과와 역효과를 식별할 필요가 있을 듯해요...

알비스 2010-09-1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투 뿐 만 아니라 일어 단어도 우리말에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출산’이라는 단어가 일본어라고 합니다. 우리말은 ‘생산’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언론이나 방송에서 심지어 우리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계속 쓰고 있으니 후자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립니다. (간혹, 사극에서 후자의 단어를 쓰긴 합니다만) 이 단어 이외에 다른 말도 우리말로 굳어져 오랜 시간 동안 사용이 돼서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언어라는 것이 시간이 가면서 바뀌기 하지만 그 바뀐, 또 바뀌고 있는 이유가 영 찜찜하죠.

로쟈 2010-09-12 08:48   좋아요 0 | URL
일본에서 건너오거나 경우한 말을 다 배제하는 건 불필요할 뿐더러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좀 의식하고 가려쓰고 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에요. 영어식 구문도 우리말에 이미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다못해 인칭대명사만 해도 그렇고, 구두법만 해도 그렇죠. 그렇더라도 '나쁜 번역투'를 가려내고 삼가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