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이지만 '가을의 문턱'이란 느낌은 아직 들지 않는다. 그래도 며칠 있으면 9월이고 가을이다. 그 전에 해야 할일들 때문에 무턱대고 시간이 흘러가는 게 전혀 반갑지 않지만 시간은 냉정한 편이니 기어이 가을이 오고야 말 것이다. 어느 시인의 말대로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9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언젠가도 적었지만, 이런 페이퍼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건 10년 뒤에 돌이켜보기 위해서다. 당장의 효용은 나중 문제다.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고른 책은 박완서 선생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 2010)다. 어느새 팔순이다. "자서전격으로 읽어도 좋을 대목들이 수두룩하고 죽비로 등을 얻어맞는 듯한 따끔한 비판이 수두룩하고 노년의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생명들을 향한 예찬이 또한 음표처럼 수두룩하게 불려 나온다."라고 평했다. 찾아보니 산문집으론 <어른노릇 사람노릇>(작가정신, 2009)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세계사, 2002)가 더 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한양출판, 1994)로 읽은 기억이 난다. 어느새 16년 전이군...
어제 갑작스레 타계한 이윤기 선생의 산문집도 추모의 뜻을 담아 (뒤늦게) 골라본다. 내가 아는 타이틀은 <무지개와 프리즘>(생각의나무, 1998)이 마지막이었다.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동아일보사, 2009/2000), <내려올 때 보았네>(비채, 2007), 그리고 <무지개와 프리즘>(미래인, 2007; 생각의나무, 2002/1998)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고른 역사서는 저명한 중국사가 조너선 스펜스의 <룽산으로의 귀환>(이산, 2010)이다. 간단히 말하면 "장다이(張岱)라는 한족(漢族) 출신의 지식인을 통해 명·청 교체기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다. 관심도서로 점찍어 놓고 아직 구하지 못한 터인데 다시금 흥미를 갖게 된다. 사실 조너선 스펜스의 어느 책이건 읽을 만하다. 좀 값싼 표현이지만 역사서의 '블루칩'이라고 할까. 이미 열댓권이 출간돼 있는 가운데 최근에 나온 걸로는 <근대 중국의 서양인 고문들>(이산, 2009), <중국인 후의 기이한 유럽 편력>(서해문집, 2007)을 체크해놓는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서는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돌베개, 2010)이다. 이 책의 오역에 대해선 이미 지적한 바 있고, 아직 수정판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추천도서로 올라온 건 의외인데, 추천자가 번역서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으리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래와 같은 추천사에서 나로선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원저라면 이런 추천사에 값할 수 있다. 속히 개정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한다.
여기 인터뷰한 철학자들이 철학에 대하여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철학과 삶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한 다양성에고 불구하고 한 가지 공통점은 철학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고전의 지혜를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로 사용하는 창조적 작업이 우리가 해야 할이라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철학적 사고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창조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독자로 하여금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철학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미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하버드>보다 눈길을 끄는 책은 사실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길, 2010)이다. 오래전 <철학을 위한 선언>(백의, 1995)로 번역됐던 책인데, 이번에 바디우의 제자이자 전문가라고 할 서용순 박사에 의해 재번역됐다. 믿을 만한 정본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한다. 바디우 철학 전반에 대한 역자의 해제도 포함하고 있어서 입문서로도 요긴할 듯싶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책은 강수돌의 <이장이 된 교수, 전원일기를 쓰다>(지성사, 2010)다. '이장이 된 교수'는 물론 저자인 강수돌 고려대 교수를 가리킨다. 이젠 제법 널리 알려진 일인데, 노동문제를 전공한 경영학 교수의 '삶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에 귀기울여 봐도 좋겠다.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경영학 교수이자 시골의 농부인 저자가 들려주는 살림살이 농사와 참된 삶의 경영에 관한 얘기다. 저자는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주장한다. 방법론으로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주문한다. 참된 삶의 경영, 곧 행복은 ‘인간성, 효율성, 생태성’이라는 세 가지 가치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행복은 자본주의가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돈 많이 버는 삶’ 또는 ‘과시적인 소비에 몰두하는 삶’도 아니며, ‘자아실현’이나 ‘자아완성’ 등 서구 계몽주의가 이상화한 개인주의적 행복도 아니다. 이 세상을 초탈하여 ‘저세상에서의 구원’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행복도 아니며, 인위적인 문명을 거부하고 현세초월적인 사유에 노니는 고고한 행복도 아니다. ‘온 사회가 불행한데 나 혼자 행복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죄악일 수도 있다’는 그러한 공동체 지향적 삶이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고른 책은 피터 번스타인의 <금, 인간의 영혼을 소유하다>(작가정신, 2010)다. 책은 예전에 나온 <황금의 지배>(작가정신, 2001)를 다시 펴낸 것이라 하고, 저자는 나로선 과문하지만 경제/금융분야의 전문 저술가라 한다. 이준구 교수가 팬을 자처할 정도로 탁월한 이야기꾼이라고도 하고. 소개는 이렇다.
금은 철이나 구리와 다름없는 한낱 금속일 뿐이다. 그런데도 금은 우리의 영혼을 온통 뒤흔들어버릴 만큼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동서고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울부짖었는지 상상해 보라! 그 하찮은 금속을 얻기 위해 귀하디귀한 목숨까지 휴지조각처럼 버린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금의 엄청난 마력이 빚어낸 수많은 사건들을 얘기해 주고 있다. 피터 번스타인이 들려주는 금에 얽힌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황금의 지배'라고 하니까 폴커 라인하르트의 <탐욕의 지배>(말글빛냄, 2010)도 떠올리게 된다. '돈과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의 인색함'이 책의 주제다.
6. 과학
최영주 교수가 추천한 책은 요로 다케시의 <유쾌한 공생을 꿈꾸다>(전나무숲, 2010). 곤충 채집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곤충 채집을 열정적으로 좋아하여 그 연구를 희망하였지만 최종 진로는 결국 의과대학을 선택하고 해부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은퇴 후 평생 원했던 곤충 채집에 다시 발 벗고 나섰던 일본 지성인의 <유쾌한 공생을 꿈꾸다>는 곤충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책은 활동하는 지식인의 철학 에세이기도 하고 또 자연과학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아니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해부하는 행동하는 비판가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다소 뒤늦게 출간된 데이비드 봄의 <전체와 접힌 질서>(시스테마, 2010)에 눈길이 간다(<현대물리학의 철학적 테두리>(민음사, 1991)로 번역됐던 책이다). 예전에 '신과학'이라고 한창 소개되던 시절에 자주 언급된 물리학계의 이단아. 양자물리학에 대한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한 책이니 나로선 판단하기 어렵지만, 여하튼 '데이비드 봄'이란 이름은 반갑다. 저자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오펜하이머의 제자, 아인슈타인의 동료라는 사실처럼 봄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이론물리학자였다. 하지만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하던 시절, 공산단에 가입하고 정치활동을 했던 전력이 매카시즘의 도마 위에 올랐고 졸지에 공산주의자로 내몰리며 평생을 망명과 이민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데이비드 봄은 학계의 변방에서 연구를 이어나가며 양자론의 대안 해석을 발표한다. 양자론의 아킬레스 건인 '숨은 변수'를 해결한 '숨은 변수 이론'으로 양자론을 설명하는 코펜하겐 해석의 대안 해석을 제시한 것이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책은 이용숙의 <춤의 유혹>(열대림, 2010). <춤에 빠져들다>(열대림, 2004)의 개정판이다. 추천의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최근 들어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춤의 유혹을 느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큰 관심 속에 책이 다시 읽힐 것이라는 데 있다. 둘째는 저자 역시 춤과는 멀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문학과 음악학 공부를 한 분으로 어느 날 소설을 읽다가 그 안에 등장하는 춤 이야기가 재미있어 문화센터를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책까지 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춤의 유혹을 느끼고 있는 독자의 마음을 잘 안다.(...) 그리고 아마 이 책에서 제일 먼저 읽는 게 좋을 듯한 인터뷰 코너가 책의 세 번째 장점이다. 춤과 더불어 사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 았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생활에 바쁜 사람들이 제각각 무슨 이유에서 어떤 통로로 춤을 접하게 되었고, 춤을 통해 어떻게 생활의 활력을 찾았는지, 이 코너에서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춤의 유혹'이란 말이 떠올려주는 건 영화 <탱고 레슨>(1997)이다. 말 그대로 춤(특히 탱고)의 유혹에 바쳐진 영화였다.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책은 <후세 다츠지>(지식여행, 2010)이다. "일본인으로 일제하 조선인을 위해 봉사했던 한 인물을 재조명한 책"이라고 간명하게 소개된다. 그래도 몇 줄 더한 소개를 읽어보면 이렇다.
1920년 5월 '전통적인 변호사'에서 '민중의 변호사'로 거듭나겠다는 '자기 혁명의 고백'을 선언한 후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양심적인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후세 다츠지. 그는 전 생애에 걸쳐 핍박받는 민족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헌신했다. 이 책은 '후세 다츠지전'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강연회의 강연록과 후세 다츠지의 행보와 사상에 대한 논고 두 편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내친 김에 일제 강점기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책들도 꼽아본다. 1910년의 기사들을 엮은 <1910년 오늘은>(서해문집, 2010)과 정혜경의 <조선 청년이여 황국의 신민이 되어라>(서해문집, 2010) 등이다. 후자는 식민지 시절 강제동원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추천한 책은 오경순의<번역투의 유혹>(이학사, 2010)이다. "우리 말과 글에 스며든 일본어의 실상을 파헤치고 있는 책". '번역투'보다 좀더 본질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번역과 한국의 근대'를 다룰 수밖에 없는데, 김욱동 교수의 <번역과 한국의 근대>(소명출판, 2010), <근대의 세 번역자>(소명출판, 2010)을 통해서 문제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다.
10. 우리 시대 환경책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최근에 나온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동녘, 2010)가 인상적이어서 생명운동가 겸 '외로운 잡독가' 최성각의 독서잡설과 산문집으로 한다. "책은 나의 담요이고, 모닥불이고, 때로는 몽둥이였다"고 고백하는 저자에 대해서 소설가 김성동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막막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하늘 밑의 벌레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치명적인 독주와도 같은 이 책을 읽는 이는 어지러워서 시원한 냉수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 넣어둔 얼음물 또한 오염된 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르르 몸을 떨게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몇 편은 안 읽는 것이 좋겠다. 너무나도 무섭고 끔찍하며 그리고 슬픈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생명운동가 최성각이 쓴 이 책은 어떤 공포소설보다도 무서운 책이다. ‘환경운동을 하는 글쟁이’라고 스스로 낮추고 있지만 최성각은 사상가이다. 이 기절초풍하고 혼비백산하는 정신의 대공황시대에 한 점 등불 든 생명사상가인 것이다.
특히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에는 부록으로 우리 시대 환경책 목록이 수록돼 있다. 저자가 고른 '환경고전 17권'과 '다음 100년을 살리는 141권의 환경책' 리스트다. 리스트만 일람해보는 것으로도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10. 08. 28.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고른다. 괴테의 작품 중에서도 이제까지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이지만 최근 들어 또 3종 이상이 출간됐다. 비교해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문학동네판과 펭귄클래식판은 관행적인 제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그대로 쓰고 있고, 을유문화사판은 전공자들의 문제제기를 반영하여 <젊은 베르터의 고통>으로 고쳤다. 이미 굳어진 제목이긴 한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젊은 베르터의 고통'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9월에 생각해볼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가을은 또 왠지 슬퍼지기 시작하는 계절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