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하는 '로쟈의 스페큘럼' 세 번째 이야기를 옮겨놓는다. 오늘 오전에 쓴 것인데,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 개념에 대해 소개하고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의 결말 부분을 음미해보았다. 전문은 http://cafe.naver.com/mhdn/16121 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이 연재를 책과 책 사이를 가로지르며 ‘사랑의 길’, ‘사랑의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정리하면서 이 ‘사이’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여성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했다.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문학동네, 2010)에서 대리언 리더가 드는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겠다. 흔한 사례다.
“한 남자가 카페에 앉아서 남녀 한 쌍이 걸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는 여자의 매력에 이끌려 그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여자는 좀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여자도 남자에게 끌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남자와 함께 가는 여자를 보는 데 시간을 더 많이 쓴다. 달리 말하면 그녀의 관심을 끄는 것은 남자 혹은 여자라기보다 그들 간의 관계이다. 저 여자는 남자를 어떻게 자기 짝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25쪽)
리더에 따르면 여자들의 관심은 한 남자나 한 여자가 아니라 ‘한 쌍의 남녀’이다. 여자가 남자의 아파트에 들어가서 처음 하는 일이 남자가 이전에 사귀던 여자의 흔적을 찾는 것이란 지적도 그는 잊지 않는다. 여자는 항상 최선을 다해 삼각관계를 만들며, 이러한 삼각관계가 다른 사람의 욕망을 탐구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어수룩한 남자들의 너무도 단선적인 욕망과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것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하나의 텍스트는 두 개의 축에 따라 형성된다. 하나는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수평축’이고 다른 하나는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를 연결하는 ‘수직축’이다(‘상호텍스트성’에 대한 개념 소개는 대니얼 챈들러의 기호학 입문서 <미디어기호학>(소명출판, 2006)을 참조. 이 번역서의 원문은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축에 의해 구축되기에 텍스트는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다.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하나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 고립돼 있지 않고 독자적이지도 않다.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의 관계맺기의 소산이기에 그러하다(“하늘 아래 새로운 텍스트란 없다”는 주장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다). 그래서 미셸 푸코 또한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은 다른 책, 다른 본문, 다른 문장들과의 관계의 체계 속에 놓여 있다. 책은 그물망의 교차점이다.”
이러한 관점을 더 밀고 나가면, 과연 ‘텍스트의 경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혹은 가능한 것인지 의문시된다. 텍스트론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 ‘텍스트의 경계’ 개념에 놓인다. 텍스트에 대한 구조분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텍스트가 확정돼야 한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의 경계가 명확하게 규정돼야 한다. 그것이 텍스트 자체의 성립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호텍스트성 개념은 이 텍스트의 ‘안’과 ‘밖’이 과연 구분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구분은 과연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 회의하게 만든다. 챈들러의 표현을 빌면, “텍스트의 경계는 서로 뒤섞여있다. 각각의 텍스트는 여러 장르와 매체를 가로지르는 광범위한 ‘텍스트공동체’ 속에 존재한다. 어떤 텍스트도 외딴 섬일 수 없다.” (...)
뉴질랜드 태생의 영국작가 캐서린 맨스필드(1888-1923)는 생전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를 흉내낸다고 자주 폄하됐다고 한다. 결핵으로 35년의 짧은 생애를 마친 사실 또한 어쩌면 같은 병으로 44세에 생을 마감한 체호프를 닮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작품집 <가든파티>(강, 2010)의 역자는 맨스필드와 체호프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일러준다.
“맨스필드는 체호프의 영향을 받아 플롯이나 캐릭터에 대한 탐구보다는 깨달음의 순간, 균형이 깨어지는 파열의 순간 등을 포착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당대에 맨스필드는 체호프와 비교해 폄하되는 일이 더 많았다. 비평가들은 체호프가 넓은 시각을 가진 객관적 관찰자인 반면 맨스필드는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시야가 좁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가든파티를 여는 날 가난한 이웃이 가장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윤리적 갈등에 빠지는 부르주아 처녀의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가든파티>까지도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시야가 좁다’는 비판을 받았다면 맨스필드로서는 억울한 일일 것이다. 이 작품의 뛰어난 성취는 무엇보다도 결말에 있다. 주인공 로라는 초상집을 이웃에 두고 파티를 벌인다는 것을 불편해하지만 가족 누구도 그녀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천막을 치고 악단까지 부른 파티는 예정대로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파티가 끝난 뒤에 로라의 어머니는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초상집에 보내기로 한다. 이번에도 로라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에 맞는 일인지 미심쩍어하지만 음식 바구니를 나르는 일은 그녀의 몫이 된다. 그녀는 이웃에 문상을 가서 시신의 평화로운 모습까지 보고 어린아이처럼 울음도 터뜨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오빠 로리를 만나 흐느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말야.”
로라는 말을 더듬거렸다.
“사는 게……”
하지만 사는 게 어떻다는 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아무려면 어때. 오빠는 이해하니까.
“참 그렇지, 로라?”
로리가 말했다.(<가든파티>, 강)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가든파티>, 펭귄클래식)
여기서 로라가 더듬거리며 끝맺지 못한 말은 “Isn't life-”이다. 그녀는 그날 하루 겪은 너무도 대조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감정이 복받쳐서 “인생은 정말-”이라고 입을 열지만 말을 끝맺지 못한다. 인생이 어떻다고 규정짓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걸 보충하는 것이 “Isn't it, darling?”(정말 그렇지?)이라는 오빠 로리의 말이다. 서로 거울상인 이 두 표현이 말하자면 로라와 로리 남매가 합작하여 만든 ‘인생’에 대한 정의다(“인생은 정말, 정말 그렇지.”). 나는 이것을 인생에 대한 맨스필드 자신의 정의라고도 보고 싶다. 그녀의 대단한 성취는 “인생은 정말-”과 “정말 그렇지?”라는 대구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정의 없는 정의(definition without definition)’를 만들어낸 데 있다. 그것은 실상은 아무런 정의도 내리고 있지 않지만, 모두를 ‘이해시키는’ 정의다. 그렇잖은가?
동시에 이 마지막 장면은 대리언 리더가 설명해주는 남녀간 성차의 좋은 사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아이가 특정 음절을 발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상당수 여자들이 단어가 아니라 문장을 끝맺을 수 없음을 불평한다. 남자는 때로 그녀를 위해 대신 문장을 끝맺어주려고 나서지만, 그런 행동은 요점을 놓치는 것이다. 문장을 끝맺지 못한다는 것은 단어에 의해서 고정되기를 주저한다는 뜻이며, 누군가가 특정한 언어적 재현과 등가이거나 동등할 수는 없다는 것, 곧 그가 말한 것 이상의 존재임을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실존이 말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남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실존을 말로 환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225쪽)
그렇게 보자면, 더듬으면서 마무리 짓지 못하는 로라의 말을 로리가 부가의문문의 형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을 형식적으로라도 말로 환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행위에 값한다. 그래야 작품이 ‘종결’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로라와 맨스필드의 진짜 ‘종결’은 이 작품의 첫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날씨는 더할 나위 없었다.(And after all the weather was ideal.)” 여기서 어떤 연속성을 표시하는 접속사 ‘and’의 등장은 작품의 서두로서 파격이다. 그것은 이 ‘텍스트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동시에 뭔가 다르게 읽을 것을 제안한다. 혹은 대조해 읽을 것을 권유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인생은 정말, 정말 그렇지.”와의 대조다. “어쨌거나 날씨는 정말로 완벽했다”는 것! 우리가 정직하게,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정말로 날씨에 대해서뿐인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No matter? 상관없다고요?
10. 07. 05.
P.S. 현재 나와 있는 <가든파티> 번역본은 세 종이 더 있다. <원유회>란 제목으로 번역된 것까지 포함하면 두어 권 더 된다. 번역작품일 경우 작품 분석을 위해서는 대본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에, 조만간 기존 번역본들을 확인해보려고 한다. 창비에서 나온 영국 단편선에 포함된 <가든파티>는 안정감을 주는 번역인데, 첫 문장은 "그리고 어쨌든 날씨는 이상적이었다."고 옮겼다. 정석이라고 할 만하다('이상적 ideal'이란 말을 의미심장하게 읽을 수도 있기에). 그리고 맨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옮겼다.
"인생이란 게,"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인생이란 게-" 그렇지만 인생이 어떻다는 것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관이 없었다. 그는 무슨 소린지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응?" 로리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