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가장 예기찮은 책은 박홍규 교수의 '루이스 멈퍼드 읽기' <메트로폴리탄 게릴라>(텍스트, 2010)와 번역서 <유토피아 이야기>(텍스트, 2010)이다.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의 저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 문명비평가의 전모를 소개하고 20대에 출간한 그의 처녀작을 우리말로 옮겨놓은 것인데, 멈퍼드(멈포드)가 자칭한 '제너럴리스트'란 말은 박홍규 교수에게도 더 없이 잘 적용될 듯싶다.
멈퍼드는 '스페셜리스트(전문가)'와 대비하여 '제너럴리스트'를 "개별적인 부분을 상세히 연구하기보다 그러한 파편들을 하나의 질서 있고 의미 있는 패턴 속에 통합하는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사람"(<유토피아 이야기>, 17쪽)이라고 정의한다. 박 교수는 이를 '전인(全人)'이란 말로 옮겼는데, 그 자신이 진정한 전인이자 우리시대의 '르네상스인'이라고 해야겠다(대표적인 다작 저술가인 저자는 최근 들어 매년 5권 이상의 저/역서를 출간하고 있는데, 오직 강준만 교수만이 이에 비교될 수 있다).
자유와 자치, 자연이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가치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박홍규 교수는 바로 그런 맥락에서 멈퍼드 또한 '소박주의자'에 '아나키스트'였다고 평한다. 멈퍼드는 어떤 인물이었나?
루이스 멈퍼드(1895-1990)의 94년 긴 생애는 20세기와 거의 겹친다. 기술적 전문가들에 의한 거대한 물질 만능주의 시대인 20세기에 그들이 섬긴 거대한 권력, 도시, 기계를 비판하고 소박한 자유, 자치, 자연을 존중하는 르네상스적 전인으로서 살다 간 20세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비평가이며 지성인이자 지식인이고 휴머니스트였던 사람이 멈퍼드였다.(<메트로폴리탄 게릴라>, 27쪽)
"그런 멈퍼드의 삶과 사상을 검토하여 우리의 지적 스승으로 삼고자 이 글을 쓴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멈퍼드는 60년에 걸쳐서 28권의 저작을 남기고 있는데, 저자는 이를 연대별 주제별로 재구성하여 멈퍼드의 사상을 조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고정적 직업도 갖지 않았지만 삶과 앎을 일치시키고자 했던 지적 거인이자 '가운을 걸치지 않은 철학자'에 대한 경애감이 없었다면 쓰여지지 않았을 책이다. 덕분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편하게 멈퍼드의 '게릴라전'을 관람할 수 있게 됐다(독자의 몫은 이제 그 게릴라전에 '동참'하는 것일까?).
'르네상스적 제너럴리스트'답게 전방위적 저술을 남기고 있지만 멈퍼드의 저작 목록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내겐 <허먼 멜빌>(1929)이다. <모비딕>(1851)의 작가, 그 멜빌 말이다.
멈퍼드 시대까지도 멜빌은 해양소설을 쓴 비주류 작가로 낮게 평가되었으나 멈퍼드는 멜빌의 개성과 그 발전에 대해 흥미를 기울여 그를 단테와 같은 도덕적 철학자로 평가했다. 멈퍼드는 특히 <모비딕>을 <햄릿>이나 <신곡>과 같이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147쪽)
멈퍼드가 쓴 <허먼 멜빌>은 300쪽이 넘는 본량의 본격적인 작가론인데, <모비딕> 읽기를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터라 관심을 갖게 된다. 김석희본도 출간된 김에 내년에는 <모비딕>에 대한 강의도 기획하려고 한다(<모비딕>과 멜빌의 책 몇 권을 바로 주문했다). 오래 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와 멜빌을 비교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내년에는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1977년에 멜빌 협회 명예회장으로 추대됐을 정도로 멈퍼드의 멜빌 연구는 높이 평가됐다고 하며, 멜빌과 함께 그가 찬양한 작가가 <악령>의 도스토예프스키였다고(토마스 만의 <마의 산>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모비딕> 얘기가 나오니까 떠올리게 되는 작가는 알베르 카뮈다. 그건 지난주에 <페스트>에 대한 강의를 한 때문인데, 이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카뮈는 멜빌의 <모디딕>을 사숙한 걸로 돼 있다. "멜빌은 카뮈의 창조를 상징과 신화의 차원으로 승격시키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었다는 게 김화영 교수의 설명이다. <모비딕>을 정독하고 노트했다는 내용은 <작가수첩1>에 들어 있으며, 카뮈의 '허먼 멜빌'이란 짧은 작가론은 <스웨덴연설/문학비평>에 포함돼 있다. 개인적으론 이번에 다시 읽으며 <페스트>가 '카뮈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생각이 들었다(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카뮈는 이반 역을 맡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자세한 건 방학때 쓰고자 하는 <페스트>론에 적어두려고 한다. 아무려나 허먼 멜빌을 매개로 루이스 멈퍼드와 알베르 카뮈가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오늘의 발견이다...
10.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