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안과에 가면서 손에 들었던 책은 이택광의 <영단어 인문학 산책>(난장이, 2010)이다. TV를 잘 보지 않아서 EBS의 '이택광의 어휘로 본 영미문화'란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책은 방송내용을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영어에 관한 '수다'라면 단연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선생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거기에 덧붙이자면 소설가이자 언론인 고종석의 '영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저자 또한 서문에서 한 차례 언급한다.
"우리는 영어책을 '독해'하려고 덤비지만,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의 말처럼, 영어책은 해석하지 말고 읽어야한다. 그러면 처음에 힘들지만 나중에 영어책도 한국어책처럼 술술 읽을 수 있다."
물론 번역은 또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덧붙이고는 있지만, 젊은 학생들은 시도해 봄직하다. 그렇게 '독해'에서 해방된 영어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주는가?
"영어를 실용적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인문학적 능력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세계에서 출간되는 인쇄물의 절반 이상이 영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그만큼 많은 지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서운 건 강조한 대목이다. 무섭기도 하지만 그만큼 엄연한 현실. 이러한 현실에 비하면 '회화'는 비교적 사소한 문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지식을 아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의 현실에 접목해서 독특한 지식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피겨스케이팅을 한국이 발명하진 않았지만, 김연아는 그 피겨스케이팅으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특수한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되는 것이 인문학의 법칙이라면, 영어도 한국이라는 영토에 터 잡아 깃들 인문학의 보편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연아(=특수한 것)가 피켜스케이팅을 매개로 보편적인 것(=세계적인 선수)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 인문학(=특수한 것)도 보편적인 것(=세계적인 인문학)으로 나가는 데 영어를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그때의 인문학은 '영어로 하는 한국 인문학' 혹은 '영어로 논문 쓰는 인문학'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란 의문을 갖게 된다. '한국이라는 영토'가 단서일까? 한국에서 한국인이 생산하되 '영어로 하는' 세계 수준의 인문학? 김연아의 경우는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수사적 차원에서 도입한 사례일 테지만, 아무래도 '세계적인 인문학'과는 그림이 잘 맞지 않는 듯싶다. 영어를 피겨스케이팅에 견주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건 그렇고, 저자가 염두에 두었을 법한 또 다른 '산책자'는 빌 브라이슨이다. <발칙한 영어산책>(살림, 2009)을 덕분에 책장에서 빼왔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학고재, 2010)도 비슷한 두께를 자랑하는데, 영단어에 대한 이해와 영국과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호작용하는 거라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 봄직하다. '미국인 발견'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학>(21세기북스, 009)로 대체하고. 더 좋은 책을 아시는 분을 알려주시길...
10. 06.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