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책 가운데 화제작은 가장 두툼한 책이기도 한 박성관의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그린비, 2010)이었다. 하지만 당장엔 읽을 여유가 없어서 책을 구해놓고도 리뷰기사를 옮겨놓는 것마저 생략했었다. 인터뷰기사를 포함해서 리뷰기사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굳이 거들지 않아도 됐고.  

원래 같이 묶어서 다루려고 했던 책은 앤드류 니키포룩의 <대혼란: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 섹스>(알마, 2010)였다. '21세기를 위협하는 생물학적 유행병에 대한 보고서'이기에 최근의 구제역 파동과 관련해서라도 크게 다루어질 만한 책이었지만 아직까지 리뷰가 뜨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번 주말에나 다루어지는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아직 주목받지 못한 책 가운데 개인적인 관심도서가 몇권 더 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시몬느 코르프소스의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해피스토리, 2010)도 그중 하나다.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한길사, 2000)와 견주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소개기사가 뜨지 않고 있고 알라딘의 책소개도 목차만 나와 있는 형편이다(저자에 대해서 '뒷조사'까지 해두었지만 바쁘기도 해서 포스팅은 미뤄두고 있다). 내달에 카뮈의 <최초의 인간>(열린책들, 2009)을 강의에서 다룰 기회가 있는데, '아버지'란 주제에 대해서는 그때쯤 포스팅을 할까 한다.  

생물학과 정신분석학을 거쳐서 시선을 경제학쪽으로 옮기면, 지난주 관심도서는 리처드 윌크와 리사 클리젯 공저의 <경제 인류학을 생각한다>(일조각, 2010)이다. 찾아보니 필립 커튼의 <경제인류학으로 본 세계무역의 역사>(모티브북, 2007)란 책도 이미 나와 있다. '경제인류학'은 물론 칼 폴라니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인데(폴라니의 책은 조마간 더 나오는 것으로 안다), 신간은 이 분야에 대한 계보도를 그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크게 주목받지는 않은 책인데(학술적인 성격의 책이어서인가 보다) 그래도 거의 유일한 소개기사를 늦게나마 스크랩해둔다. 학술서라고 해서 제쳐놓지는 않으니까...  

 

서울신문(10. 04. 28) 경제학계 마이너리티 칼 폴라니 금융위기 이후 그의도덕경제 다시 깨어났다

미국 금융사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불어닥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뜻밖의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금융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났음에도 사람들은 위기와 공황이 화두였던 칼 마르크스를 찾지 않았다. 대신 불려 나온 사람은 ‘시장경제 따위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일종의 유토피아적 망상’이라고 선언한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1886~1964)였다. 오래 전 절판된 폴라니의 책 ‘거대한 전환’이 새로 번역되어 나오기도 했다.

●시장경제도 결국 잘살기 위한 도구
아마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을 끝내고 사회가 시장을 통제해야 한다는 폴라니의 주장이 마르크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마켓 프로세스 자체가 목적”이라는 하이예크식 자유시장 논리보다 시장경제도 결국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상식도 작용했다. 



이번에 출간된 ‘경제인류학을 생각한다’(리처드 윌크·리사 클리젯 지음, 일조각 펴냄)는 폴라니로 상징되는 경제인류학적 논의에 대한 입문서다. 냉정하게 말해 경제학계에서 경제인류학적 논의는 그다지 발언권이 없다. 기존 분과학문 체계에 잘 들어맞지 않는 데다 복잡한 수학 모델을 즐겨 쓰는 현대 경제학 흐름 속에서, 문화와 역사 운운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비쳐질 수 있어서다.

“경제인류학 연구를 수행하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자신이 경제인류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언급이나, 척박한 토양 때문에 “이 책과 상호보완해서 읽을 수 있는 문헌이 지극히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는 번역자(홍성흡 전남대 교수)의 언급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대형마트보다 동네슈퍼의 생존이 더 중요
경제인류학의 핵심은 ‘시장경제가 현대 인간사회의 핵심이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가령 폴라니는 경제활동을 교환(exchange)·호혜성(reciprocity)·재분배(redistribution)로 나눈 뒤, 시장경제는 교환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이들은 호혜성이나 재분배 같은 전근대적 경제활동을 ‘도덕경제’(Moral Economy)라 부르며 이미 끝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도덕경제적 요소는 아직까지도 교환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이는 경제학의 정교한 수학모델 대신 주변을 잠시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은 준조세라며 우는 소리를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사회공헌활동을 벌인다.

대형마트의 경쟁력보다 동네 슈퍼마켓의 생존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폴라니식 표현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에 ‘묻어가는(embedded)’는 것이고, 시장경제가 제 분수를 잊고 점령군처럼 나대면서 ‘악마의 맷돌’이 인간과 사회를 갈아버린 것이다. 



고전경제학에서 문화경제학까지 두루 다뤄
무엇보다 책의 장점은 그간 경제에 대한 논의가 알기 쉽게 총망라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시경제학적 흐름에 대해서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고전경제학을 거쳐 최근 논의되는 제도경제학, 행동경제학, 실험경제학까지 두루 건드린다. 또 사회·정치경제학적 흐름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와 종속이론가들은 물론,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에밀 뒤르켕이나 구조기능주의자들까지 다뤘다.

문화경제학에서는 사회학자 막스 베버, 인류학자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 민족지학자 프란츠 보애스, ‘증여론’으로 유명한 마르셀 모스, ‘두꺼운 서술’(thick description)을 언급한 클리퍼드 기어츠 등이 등장한다. 종착역인 결말에서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까지 끌어들인다. 경제인류학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서구 사회과학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조태성기자) 

10.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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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0-05-06 22:11   좋아요 0 | URL
제 무식함을 드러내는 물음일 수도 있는데 원제가 Economies & Cultures 니까 경제인류학보다는 경제문화학이라고 옮기는 게 더 알맞을 거 같은데요.

로쟈 2010-05-06 23:29   좋아요 0 | URL
'문화학'이란 말은 용례가 또 달라서요. 저자 서문 같은 봐야 좋을 듯해요. 한데, 책은 어지간한 서점엔 없더군요...

로쟈 2010-05-08 10:16   좋아요 0 | URL
아, 부제가 '경제인류학의 토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