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죽죽한 5월에 그나마 낙이 될 만한 것은 홍상수, 이창동 감독의 신작들이 개봉된다는 점이다. 홍상수의 <하하하>와 이창동의 <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제 구입한 이번주 <씨네21>은 아예 파격적인 분량의 홍상수 특집호를 만들었는데, 그의 영화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다(언제쯤 나도 '하하하'라고 웃어볼 수 있을까?). 순전히 그런 기대의 표시로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대신에 읽지는 않는다. 영화를 본 다음에 읽겠다.    



한겨레21(10. 04. 30) 넉살 좋게 허허허, 속물스럽게 하하하  

홍상수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하하하>의 무대는 경상남도 통영이다. 이번엔 남자들이 떠나고 돌아온 자리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문경(김상경)은 선배 중식(유준상)과 함께 청계산에 오르는데, 이들은 얼마 전에 상대도 통영에 다녀왔음을 알게 된다. 둘은 통영에서 각자 겪었던 “좋은 얘기만 하자”며 술잔을 기울인다. <하하하>는 홍상수의 전작처럼 대구와 중첩을 이루며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문경과 중식은 끝내 모르지만 이들은 실은 그곳에서 같은 식당을 드나들고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잘 알지 못하면서’ 만나고 얽히고
영화감독 지망생 문경은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고향 통영에 들렀다. 거기서 이순신 장군 유적지 관광해설을 하는 성옥(문소리)에게 끌린다. 예의 그렇듯, 여기에 더해지는 삼각관계. 성옥에겐 좋아하는 시인 정호(김강우)가 있다. 또다시 얽히는 관계의 실타래. 다시 정호를 좋아하는 선박회사 여비서 정화(김규리)가 있다. 이들이 서로 밀고 당기고 다가가고 멀어지는 과정에 영화 <하하하>가 있다. <하하하>의 또 다른 축은 유부남 중식과 애인 연주(예지원)가 통영에서 벌이는 “서로를 죽도록 예뻐하는” 애정 행각이다.

‘홍상수 극장’의 10번째 상영작도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행을 떠난 남자가 여행지의 여자를 만나고 삼각관계에 얽히고, 화내고 술 마시며 밀고 당기고 하다가 결국은 섹스에 성공하지만, 그렇게 만난 관계가 계속 이어질지는 모호한 채로 남는다. “좋은 얘기만 하자”고 시작하는 문경의 얘기가 이전 작품 남자 주인공 얘기에 견줘 관계의 지속 여부와 별개로 좀더 따뜻한 기운은 남긴단 차이는 있다. 그것에선 나이가 들면서 세상에 조금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감독의 변화도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이러한 기운은 <하하하>에서 반복되는 대사인 “어둡고 슬픈 것 안에 제일 나쁜 것이 있으니 조심하라” “좋은 것만 보도록 노력하라”와 이어진다.

홍상수 영화엔 변하지 않는 가운데 변하는 무언가 분명히 있었다. 갈수록 유머가 늘어가는 경향은 10번째 영화에서도 지속된다. 저마다 신경증을 지닌 인물들이 버럭 화를 내거나 삐치는 장면에선 예외 없이 웃음이 터진다. 홍상수 영화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남녀관계. 남자들은 갈수록 툭하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가 돼간다. 남자는 이제 젊은 여자와 관계에서만 아이가 아니다. 문경은 어머니(윤여정)에게 종아리를 맞으며 징징댄다. 여자들은 여전히 이상한 종류의 신경증을 가진 존재지만, 남자에 견주면 성숙한 존재다. 

홍상수 영화의 남자들은 갈수록 귀여운 ‘찌질이’가 되고, 여자들은 성숙한 속물이 되어간다. 성옥이 바람을 피우다 들킨 정호를 “마지막으로 한번 업어주고 싶어”라고 하며 정말로 업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처럼 <하하하>의 남녀관계는 여자들이 저만치 가면 남자들은 주춤주춤 쫓아가는 모양새다. 그것은 연주와 중식이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은데, 연주의 사랑이 저만치 질주하면 중식이 허겁지겁 따라가는 형국이다. 대신 남자들도 이전 영화에서보다 망설임이 줄었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잔머리를 쓰는 대신 상황을 ‘허허허’ 하며 받아들이는 남자 주인공 중식의 캐릭터는 이전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다. 결혼제도의 틀에서 보자면, 불륜인 중식과 연주의 관계가 홍상수 영화의 이전 남녀관계와 달리 안정적으로 보이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거처’가 점점 영화의 중심으로
역시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생김새도 홍상수 감독과 닮은 김상경은 허허실실 나사가 조금 풀려 보이는 문경을 넉살좋게 연기한다. 그는 <생활의 발견> <극장전>에 이어서 홍상수 영화의 세 번째 주연을 맡은 이유를 시종일관 증명한다. 통영 사투리를 쓰는 성옥을 연기한 문소리는 짜증내고 흔들리고 소리치는 연기로 여러 차례 객석에 큰 웃음을 안겨준다. 성옥의 캐릭터엔 모성애가 스며 있어야 설득력이 있는데, 문소리는 ‘불안한 모성애’로 부를 만한 복잡한 성격을 자연스레 소화한다. 여기에 문경의 어머니로 나오는 윤여정의 연기는 마치 소리 없이 강한 엔진 같다. 철없는 중식을 맡은 유준상은 적당히 과장하고 처절히 망가지는 캐릭터를 온몸으로 연기한다. 예지원, 김규리 등 <하하하>에 등장하는 배우 대부분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남긴다.

홍상수 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몇 가지 메시지가 있다. <하하하>에서 유난히 반복되는 대사는 “머릿속의 남의 생각으로 보지 말고 네 눈을 믿고 네 눈으로 보아라”. 홍상수의 전작에선 “네 머리로 생각해라” 등으로 변주됐다. 이 대사가 왜 거기에 있고, 왜 자꾸만 나오는지 곱씹으며 <하하하>를 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법이 되겠다. 이번에도 마지막엔 빈 아파트로 대표되는 집의 문제가 나온다. 누군가에겐 동굴 같은 그곳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보금자리가 된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이들이 돌아가 머무를 ‘거처’가 점점 그의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5월5일 개봉한다.(신윤동욱 기자) 

10. 05. 0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5-03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4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5-0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는 모습이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인물 답군요.^^ 유준상인가요?

로쟈 2010-05-04 09:23   좋아요 0 | URL
문소리, 김상경, 유준상입니다. 씨네21 특집호를 챙겨두시길. 온라인에 뜨지 않는 꼭지도 많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