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와 바냐 아저씨의 해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

안톤 체호프 원작의 <숲귀신>이 이번주 일요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여유가 없다 보니 관람기회는 놓쳤는데, 그래도 리뷰는 챙겨놓는다. 드디어 내달초에 찾아오는 러시아 말리극단의 <바냐 아저씨>공연 안내와 함께. 이미 여러 차례 예고한 바 있지만 도진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뉴스컬처(10. 04. 19) 121년 만에 빛을 본 연극 [숲귀신]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숨겨진 명작 [숲귀신](연출 전훈)이 무대화됐다. 국내 초연된 이번 공연은 1889년 당시와 같이 소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며, 전훈 연출은 노컷, 노어레인지로 연출해 작품의 초기 모습 그대로를 무대에서 보여줬다.

연극 [숲귀신]은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인 ‘바냐 아저씨’의 전신(前身)으로, 체호프가 발표한 세 번째 장막극이다. 초연 당시 참담한 실패를 기록했는데, 공연은 물론 희곡 자체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이에 체호프는 죽기 전까지 [숲귀신]의 출판 및 공연을 불허하고 작품을 봉인했다.

121년 만에 봉인이 해제돼 게릴라 극장에서 공연 중인 [숲귀신]은 ‘바냐 아저씨’와 비슷한 이야기를 가졌다. 퇴임한 교수 세레브랴코프, 그의 젊은 둘째 아냐 옐레나 그리고 딸 소냐가 두 작품에서 똑같이 등장한다. 옐레나를 짝사랑하는 바냐는 본디 이고르였으며, 숲 속에서 살던 의사 아스토르프는 ‘숲귀신’이라는 별명으로 의사 일보다는 숲을 지키는 일에 더 열성적인 흐루쇼프였다.

[숲귀신]은 ‘바냐 아저씨’보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3시간 동안 공연되는 희곡 또한 방대하다. 무대는 나무와 식탁, 창틀, 의자 등을 이용해 대저택의 정원과 식당, 응접실 그리고 숲 속 물레방앗간을 보여준다. 1막이 2명으로 시작해 2명으로 끝나는 등 인물 등장과 구성이 구조적이며, 전개는 다소 산만한 듯 나열된다.

그러나 [숲귀신]은 ‘바냐 아저씨’보단 한결 가볍다. 종종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랑한다는 고백과 함께 키스를 퍼붓는다. 특히, 4막만 봐서는 체호프의 작품이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쉽게 말해 ‘바냐 아저씨’의 로맨틱코미디 버전이자 100년 뒤 시대를 내다본 트랜디 드라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숲귀신]의 주인공은 옐레나를 사랑하는 이고르가 아닌 흐루쇼프다. 그는 실리를 위해 숲을 벌목하는 것을 반대하며, 후세를 위해 숲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숲에 대한 자신의 의견에는 거침없지만 소냐를 향한 사랑의 마음 앞에서는 소극적이고 방어적 자세를 취한다. 소냐와 흐루쇼프의 엇갈리는 마음은 극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숲귀신]이 그 옛날 혹평을 받았고, ‘바냐 아저씨’보다 가벼워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체호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함없다. 이고르의 권총자살로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시작의 발을 내디딘다. 떠나지 않았던 옐레나를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이던 교수는 “일을 합시다”라고 말한다. 좌절하더라도 삶을 살아내야 하는 ‘바냐 아저씨’의 주제가 약하게 나마 드러난다.

사실 안톤 체호프는 초기 희곡에서 큰 난항을 겪었는데, 희곡 자체의 문제 말고도 그에게는 작품을 이해하는 연출과 배우가 없었다. 당시 [숲귀신]은 “훌륭하게 각색된 소설이지 드라마는 아니다”라는 혹평을 들었을 정도. 이후 다행히도 체호프는 그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해준 연출가 단첸코와 스타니슬랍스키를 만나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체호프는 혹평으로 인해 ‘숲귀신’을 봉인시켰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개작에 착수, 10년 뒤 ‘바냐 아저씨’를 발표했다. ‘바냐 아저씨’는 1899년 10월 스타니슬랍스키 연출로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초연해 큰 성공을 거뒀다.

오는 5월, 연극 ‘바냐 아저씨’가 세계적 명성의 레프 도진 연출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이 스타니슬랍스키의 어법을 바탕으로 공연할 예정이다(5/5~5/8, LG아트센터). 전신인 [숲귀신]과 개작 후 명작이 된 ‘바냐 아저씨’를 비교해 볼 만하겠다.(양훼영기자)    

한국일보(10. 04. 21) 3시간 짜리 대하연극 "이것이 인생이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말리 극단은 무대를 삶의 축도로 만든다. 2001년의 '가우데아무스', 2006년의 '형제 자매들' 등 두 차례 내한 공연에서 그들은 무대가 곧 삶의 현장을 그대로 모사한 것일 수도 있음을 실증했다. 객석에게는 무대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들의 무대는 뚜렷한 방향을 갖고 생생한 삶을 그렸다. '대하(大河)'라는 말이 연극 무대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웅변했다.

그들이 다시 온다. 이번에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다. 작은 실험극단으로 출발했던 이 극단을 23년의 세월과 함께 세계적 극단으로 키워낸 연출가 레프 도진(66)의 이번 무대도 상연 시간이 3시간여다. '전원 생활의 정경'이란 원래 희곡의 부제대로 시골을 배경으로 19세기 말 러시아의 세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대하가 흐르듯 유장하게 진행되는 도진의 무대는 연극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사실적 수법에 의지해 최대한으로 확장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다.

도진은 이 무대를 "체호프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정수"로 꼽는다. 20여년 간 무대 구상만 하다 2003년에야 첫 상연한 데에는 그 같은 경외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무대는 또 연극을 유흥이 아니라 계몽과 학습의 장으로 여기는 러시아 특유의 연극관이 빚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도진의 배우들은 테크닉을 넘어서, 등장인물의 심성과 감각에 자신을 동화시키는 훈련을 거친다. 대연출가 피터 브룩이 "말리 극장은 세계 최고의 앙상블"이라 감탄했던 그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다. 5월 5~8일, LG아트센터. (02)2005-0114 (장병욱기자)  

10. 04. 22.   

P.S. '3시간짜리 연극'은 러시아에서 통상적인데, '대하연극'이라고까지 한 것은 다소 과장이다. 연출가 전훈의 체호프 공연 대본은 <안똔 체홉 4대 장막전>(제이앤북, 2005)으로 나왔었지만 현재는 품절상태다(<숲귀신>까지 포함해서 다시 나오면 좋겠다). 레프 도진과 말리극단에 대해서는 최근에 나온 세프초바의 <레프 도진과 말리드라마극장>(동인, 2010)이 매우 요긴한 참고문헌이다. <숲귀신>과 <바냐 아저씨> 등에 대한 국내 연구는 김규종 교수의 <극작가 체호프의 희곡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신아사, 2009)를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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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0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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