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는 눈길을 끄는 교양 교양과학서도 여럿 눈에 띈다. 그중에서 한권만 골라야 한다면,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의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승산, 2010). 대칭성과 방정식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수학책인데, 오래전에 나온 <자연의 수학적 본성>(동아출판사, 1996)을 떠올리게 한다(<자연의 수학적 본성>은 <자연의 패턴>(사이언스북스, 2005)로 재출간됐다). 고등학교 때 이런 책을 접했더라면 수학에 좀더 친근함을 느꼈을는지도 모르겠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3. 20) 나비도 방정식도 ‘대칭’이라 아름답다
팔랑거리는 나비가 아름답다면, 그 두 날개가 대칭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복잡한 수식으로 채워진 방정식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등호’(‘=’·‘이퀄’)를 가운데에 두고 등가의 두 값이 팽팽히 긴장한 채 대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얼굴도, 인간의 몸도, 그 가운데를 위아래로 죽 내리긋는 선분을 상상할 때 좌우 대칭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완벽한 대칭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칭’(對稱·symmetry)은 ‘자기 닮음’이다. 이를 확장하면 ‘반복적 자기 닮음’이다. 인간은 대칭을 이룬 건물을 아름답다 느끼며, 자기 자신을 닮은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대칭은 아름답다’는 명제가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쓴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2007년)는 수학자들의 방정식 정복 과정을 톺아봄으로써 오늘날 물리학과 우주론을 구성하는 개념들 중 하나로 떠오른 ‘대칭’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독자의 흥미를 돋우는 글솜씨로 펼쳐놓는다. 자연의 패턴을 비롯한 대칭성 연구로 이름난 학자인 지은이는 수학에서 왜 아름다움은 반드시 참인지, 수학적 공식의 아름다움은 왜 자연과 우주의 아름다움에 곧장 맞닿아 있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방정식만 해도 시쳇말로 ‘해골이 복잡’해지는데, 알면 알수록 더 복잡한 ‘대칭’이론까지 알아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지은이의 말을 따르면 대칭이란 자연 혹은 우주, 곧 물리적 세계를 보는 심오한 방식인바, 그 길로 가는 초입에서 맞닥뜨리는 것이 바로 방정식이다.
먼 옛날 3000여년 전에 유프라테스 강가 바빌로니아 문명의 수학자들이 2차방정식을 푼 이래, 인류는 끈질기게 방정식을 발견하고 풀어왔다. 고대 그리스 기하학을 집대성한 유클리드의 가장 큰 업적은 수학적 증명의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 있다. 또한 유클리드는 증명이란 반드시, 이미 참으로 간주된 어떤 명제들로부터 시작되는데 그 명제들은 증명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증명의 시작점은 증명되지 못한다는 ‘역설’이다. 중세 유럽의 암흑기엔 페르시아의 시인 우마르 하이얌이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3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으며, 르네상스 수학자들은 3차와 4차방정식을 (증명은 못했지만) 풀어낸다.
인류의 방정식 정복의 여정은 그러나 5차방정식에서 멈추었다. 5차방정식은 250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다. 이 문제는 프랑스 대혁명기 급진 혁명사상가이자 결투를 벌이다 21살에 숨진 천재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1811~32)에 의해 비로소 ‘해결’됐다.
갈루아 이전에도 일부 5차방정식의 근(해)이 존재함은 알아냈는데, 문제는 ‘그 방정식의 근을 수학공식, 곧 대수(代數)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1828년 열일곱 살이던 갈루아는 어떤 5차방정식은 풀리는 데 반해 다른 5차방정식은 풀리지 않는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방정식이 지니는 대칭’에서 비롯됨을 발견했다. 요컨대 일반적인 5차방정식은 그것이 부적당한 종류의 대칭을 가졌기 때문에 근호(=루트)로 풀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6차, 7차 등등 5차 이상의 방정식에서 다 적용된다. 이 해답이 수학과 물리학의 진로를 바꾸어놓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5차방정식을 풀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하여 갈루아가 발견한 ‘대칭’으로부터 수학의 대확장이 시작된다.
갈루아에게서 시작되어 이후 더 촘촘해진 ‘대칭’이란 무엇인가. 대칭은 그 대상의 구조를 보존하는 변환이자 치환이며, 사물을 재배열하는 방식이다. 5차방정식은 풀 수 없다는 갈루아의 발견은 바로 ‘군’론(group theory)으로 나아간다. ‘군’은 대칭을 나타내는 언어다. 주어진 대상의 대칭들을 모두 뭉뚱그려 ‘군’이라 부른다. 대칭이란 아이디어는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의 창을 열었으니, 갈루아의 ‘군’론은 19세기 후반 들어 수학자 마리우스 솝후스 리가 생각해낸 연속적인 무한군, 곧 ‘리군’(Lie group)으로 발전한다. 이 ‘리군’이 현대 물리학의 화두인 시간, 공간, 물질의 심층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대칭’이 자연과 우주, 그 물리적 세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만물 이론’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 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현대 물리학의 두 기둥, 곧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은 이론적으로 서로 충돌하는데, 이 두 체계를 넘어 시공간에 대한 새 이론을 세우는 데 ‘군’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두 이론을 통합하려 했던 아인슈타인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역사학도 출신 물리학자 에드워드 위튼(59)은 리군의 대칭 개념을 발전시킨 초대칭 개념(=양자장론)을 통해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통일하는 과정은 그저 난해한 수학적 과제를 푸는 문제일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허미경 기자)
10. 03. 19.



P.S.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와 경합을 벌인 책은 후쿠오카 신이치의 <동적평형>(은행나무, 2010)이다. 저자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은행나무, 2008) 이후에 연이어 소개되고 있는 일본의 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다. 안드레스 에드워즈의 <지속가능성 혁명>(시스테마, 2010)과 함께 나중에 실물을 확인해봐야겠다. 일단은 소개기사를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0. 03. 20) 당신이 먹은 음식이 당신 몸의 분자가 된다
쇤하이머란 과학자가 이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의 소화과정을 보기 위해 단백질에 포함된 중질소에 표시를 한 뒤 쥐에게 먹였다. 중성자가 8개인 중질소는 양성자 7개, 중성자 7개로 된 일반 질소에 비해 미량으로 존재하지만 무거워서 질량분석계로 측정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쇤하이머는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우리 몸을 움직이는 연료가 될 것이고, 중질소는 대부분 배설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험 결과는 의외였다. 배설된 투여량은 27%에 불과했고, 나머지 질소는 모두 몸속에 흡수됐던 것이다. 실험 결과는 우리 몸이 꾸준히 분해, 합성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새 손톱이 헌 손톱을 밀어내듯이 끊임없는 분자의 교환작용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 몸을 이루는 분자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내가 된다는 것’이다. 분자생물학자인 작가 후쿠오카는 이런 의미에서 ‘생명이란 동적인 평형 상태에 있는 시스템’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환경은 항상 우리 몸속을 관통하고 있고, 우리 몸도 환경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동적 평형이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소재를 예로 들어 쉽게 풀어준다. 이를테면 똑같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조금씩 나눠먹을 때보다 한 번에 많이 먹을 때 체중이 늘어나는 원인, 먹는 콜라겐이 피부 탄력에 효과를 줄 수 없는 이유,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흐르게 느껴지는가에 대한 과학적 견해, MSG가 들어간 음식을 왜 맛있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분석을 중학생 정도의 과학상식만 있으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다. 눈여겨볼 것은 첨단 분야의 과학자인 작가가 심장은 펌프이고, 신체는 그 부속이라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생명관에 반대하는 것이다. 줄기세포를 배양해 우리 몸의 기관을 따로 만들어 불치병을 고치겠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작가는 비판적이다. 생명을 기계론적으로 조작하기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