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주에나 리뷰가 올라올 거 같은데, 이번주 철학분야의 관심도서는 김진석 교수의 <더러운 철학>(개마고원, 2010)과 여덞 명의 사상가의 정치철학을 다룬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난장, 2010)이다. 이 중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목차와 함께 '기획의 말'을 도서출판 난장의 블로그에서 발췌해 옮겨놓는다.  

   

1. 클로드 르포르: 정치적인 것의 발견과 현대 민주주의의 모색(홍태영)
2. 알랭 바디우: 진리와 평등으로서의 정의(장태순)
3. 자크 랑시에르: 감성적/미학적 전복으로서의 정치와 해방(최정우)
4. 가라타니 고진: 교환 X로서의 세계공화국(조영일)
5. 에티엔 발리바르: 도래할 시민(권)을 위한 철학적 투쟁(장진범)
6. 조르조 아감벤: K(양창렬)
7. 샹탈 무페: 경합적 다원주의로서의 급진민주주의(홍철기)
8. 악셀 호네트: 인정투쟁, 사회적 갈등의 도덕적 구조와 논리(강병호)
  



기획의 말 
현대, 정치철학, 모험

2008년 봄과 여름의 길거리를 수놓았던 촛불은 사그라졌다. 그러나 그 촛불은 현재 ‘공화국’에 대한 논의, 87년-97년-08년 ‘체제논쟁,’ 그리고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을 낳았다. 이런 촛불의 흔적 또는 촛불효과는 신자유주의라는 반(反)정치를 넘어서는 ‘정치(철학)의 귀환’으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서구 유럽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 나아가 맑스주의의 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귀환은 맑스주의의 경제주의적 경향을 레오 스트라우스나 한나 아렌트 식의 ‘정치’의 자율성론으로 비판하고 존 롤즈, 마이클 샌들, 찰스 테일러, 로버트 노직,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같은 영미 정치철학자들의 이론을 수용하는 형태를 띠었다. 이처럼 서구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결국 철학이 곧 정치라고 봤던 루이 알튀세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질 들뢰즈,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등 ‘68사상가들’을 결산하며 정치철학의 고유한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와 달리 지금 이 땅에서 정치(철학)의 귀환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대중운동이 지성계에게 사유할 것을 요청, 심지어 명령하는 상황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건설적이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귀환은 하나의 철학적 조류에 또 다른 조류를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컨)텍스트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건강하다. 하지만 반신자유주의 연합이든, 반MB 연합이든, 또 그밖에 어떤 구체적인 전략을 사유하든 간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촛불의 교훈은 이것이다. 즉, 정치란 (국가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인 동시에, 제대로 된 ‘국가’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중의 의미에서) 국가에 대한 요구를 초과한다는 것, 민주주의는 일종의 합의나 체제가 아니라 갈등·경합·투쟁·계쟁·봉기의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것. 우리가 지금 소개하는 철학자들은 바로 이런 공통의 지평 위에 서 있다. 

정치철학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람직한 국가형태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어떤 권력이 정당하며, 누구에게 권력이 돌아가야 하는가 등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질문은 지금까지도 정치철학의 주된 물음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정치학』에서 평등/불평등의 문제가 정치철학의 난제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는 체제에 대한 고민의 가장자리야말로 정치철학의 아포리아가 자리하는 곳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권력의 정당성과 배분이라는 문제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정치 또는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지를 묻기. 기존의 정치 개념(권리, 정의, 자유, 평등, 인민주권 등)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바로 이것이 여덟 명의 철학자를 통해 우리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따라서 이 모음집은 구체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하나의 전략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라는 (주)텍스트를 읽기 위한 (곁)텍스트, 그러나 늘 곁에 두고 사유하며 곱씹을 것을 요구하는 (곁)텍스트이다. 

지금 선보이는 여덟 명의 철학자는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핵심 주장은 적게는 몇 년, 많게는 수십 년 지난 게 대부분이다. 이제와 이들의 사유를 소개한다는 것은, 그것도 본격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입문서의 형태로 소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지성사적으로 늘 뒤쳐져서 남들 뒤꽁무니 따르기에 바쁜 우리 모습에 대한 자조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니면 유행하고 있거나 유행할, 하지만 결국 사라질 운명에 처한 일군의 신상품을 풀어놓는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허나 무엇보다도 푸코가「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근대’를 하나의 태도, 그것도 ‘비판적 태도’로 규정했듯이 우리 역시 ‘현대’ 또는 ‘동시대’를 하나의 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거의 모든 철학자는 오늘을 사유하기 위해 과거의 텍스트를 읽었다. 이것은 오늘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시차적(時差的)이며, 과거의 텍스트를 다른 시각으로 읽는다는 점에서 시차적(視差的)이다. 요컨대 현대/동시대는 이 이중의 시차를 경유함으로써만 우리에게 온전히 주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이 모음집의 텍스트를 그 맥락에서 떼어내 자유롭게 인용할 때, 다시 말해서 이 텍스트들이 경전들에 대한 단순한 주석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이해하기 위한 (곁)텍스트가 될 때 이 모음집에 수록된 정치철학은 비로소 현대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음집에 참여해주신 글쓴이들의 약력에는 대부분 ‘과정’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있다. 그러나 학계와 사회의 끝자락 또는 가장자리에 있는, 이 ‘과정 중의’ 사람들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들이 아닌가. 이제는 당신의 차례이다. 

10. 01. 24.  

P.S. 개인적으론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의 '슬라보예 지젝' 편 집필을 제안받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아서 사양했었다. 가령 <지젝의 정치학>(2006)을 아직 읽지 않았고, <바디우, 지젝, 그리고 정치의 변형>(2009)이란 책은 배송되는 대로 읽어봐야 한다. 예정대로라면 하반기에는 지젝의 정치철학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혹은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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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10-01-25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속에도 철학적인 사유가 존재합니다. 우연과 필연에 대한 계속되는 선택의 문제는 정치에서도 다를게 없습니다. 세계속에 한국의 정치는 어디로들 향하는지, 뱀의 머리가 되어 봄처녀를 따라 오겠지만요.

소심한가시 2010-01-25 13:16   좋아요 0 | URL
정치가 인간의 본질적인 차원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대중적 자각 같은 게 필요해보입니다. 신간도 그런 맥락에서 의의가 있을 듯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