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택배로 받은 책의 하나는 도올 김용옥의 <대학 학기 한글역주>(통나무, 2009)이다.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의 세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논어>와 <효경> 역주에 이어지는 모양이다(알라딘의 에러로 오늘 검색이 되지 않는다. '정전'인 셈치고 서재질도 쉬어야겠다!). 책은 생각보다 큰 판형의 하드카바. 이런 역주 작업이 도올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진작에 나섰어야 할 분야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싶어 관련기사를 찾으니 엉뚱하게도 지난 초가을에 있었던 그의 딸 김미루 작가의 사진 전시회에 관한 것만 잔뜩 뜬다. 뒷북이긴 하지만, 흥미를 끄는 작업이어서 관련기사와 몇 작품의 이미지를 옮겨놓는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기사(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05962)에서 가져왔다.    

  

여성신문(09. 09. 04) 김미루의 사진전시회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거물급들도 쉬이 전시를 하기 힘들다는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 한 20대 신진 작가의 첫 개인전 ‘나도(裸都)의 우수(憂愁)’전이 열리고 있어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 주인공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전공한 김미루씨. 버려진 도시공간의 이면을 속속들이 잡아내어 과거로 침잠해 있던 시간을 끌어올리는 50점의 작품을 이달 13일까지 선보이는 중이다. 



작가는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진작가로 변신하기까지 겪었을 그 감정의 위태로움처럼 까마득한 도심지의 교각, 버려진 설탕공장의 창고 등 방치된 도시구조물에 홀로 올라가 위험을 감수하며 거대도시의 황폐함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왜소함을 사진 속에 담았다.

황량한 도시풍경 속에 옷을 벗은 여성의 몸을 시각적 프리즘으로서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사진작업들을 보면 ‘왜소함’을 통해 오히려 해방감과 안락감을 얻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차가운 철로를 걷고, 맨가슴으로 도시의 음습한 치부를 호흡하고 대화하는 젊은 여성으로 분한 작가의 발가벗은 몸은 지극히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연출된다. 그리고 이 취약함은 2007년 뉴욕타임스에서 포착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기사는, 작업이 인간의 나약함과 거대도시를 극적으로 대비시키고 있는데 그러한 효과는 “단지 에로티시즘이라기보다는 여자의 벗은 몸이 인간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신이 직접 작업의 누드모델이 된 경위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살아있는 생물을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나 스스로 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다. 나는 모델을 고용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나는 이런 곳을 들어가길 좋아하니까 가능하다. 누드는 문화적·시간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기 위한 방법이자, 전 세계적인 공통 언어가 인간의 몸이기에 자연스러웠다. 옷을 벗고 촬영하다 보면 공간이 변한다. 위험하게 느껴지는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오며 나만의 공간으로 변한다.” 또 누드로 작업한 것에 대해서는 “나의 작업은 누드 그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장소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것이 더 크다”고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나 ‘개인적(private)’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유명인의 딸’(김씨는 도올 김용옥의 딸로 일찍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자의 누드’(많은 언론이 여성인 작가 본인의 누드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에 대한 색안경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는 현실을 작업과정에서 좀 더 노련하게 다루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작품은 20대 젊은 여성이 나체 상태로 후미진 도시의 버려진 공간에 들어가, ‘누구라도 행여 들어올까’ 싶어 조마조마하게 재빨리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들이 ‘이 세상의 지배적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수많은 ‘다른 시선의 소유자’들에게 긴 여운이 남는 한 가닥의 떨림으로 다가서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어쩌면 지금 한국에서 김미루씨의 작업은 사회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차단된 무균무떼의 예술이라는 진공관에서만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이자 사진 전문 트렁크갤러리 관장인 박영숙씨는 김미루의 작품세계에 대해 “사람들은 속은 안 보고 겉만 보는 데 익숙하다. 김미루씨는 이번 전시에서 사물의 속을 본 것”이라고 평한다. 그에 따르면, 김미루의 작업은 작가 자신의 말처럼 탐험이며, 한 명의 탐험가로 마치 위, 심장, 콩밭 등 우리 몸 내장을 들여다보듯 아무도 가지 않는 도시의 속을 들여다본 것이다. 박 작가는 “그가 옷을 벗고 도시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옷을 입고 도시의 원시림으로 들어가면 옷자락이 여기저기 걸리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며 향후 트렁크갤러리에서 김미루의 이러한 ‘탐험가로서의 측면’을 보다 상세하게 조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에게서 잊힌 도시의 공간에 잠시나마 내가 거함으로써 낯설기만 했던 곳은 친숙한 곳으로, 위험한 곳은 놀이터로, 거친 곳은 평화로운 곳으로 탈바꿈하였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러한 사회로의 탐험에 나침반이 필요하다면 작가의 작업노트와 작업설명을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김미루 홈페이지 www.mirukim.com (정필주 객원기자/ 이화여대 예술사회학 박사과정)  

0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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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12-16 21:52 
    [알라딘서재]김미루와 벌거벗은 도시의 우수
 
 
돈키호테 2009-12-1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문학을 전공하고 해부학을 공부하다 말고 사진작가의 길을 가군요. 미국 대학은 부전공 제도가 잘 된듯 합니다. 해부학은 몸의 내부를 해체하여 구조적인 면 등을 공부하는 것인데, 그 몸의 외형을 지상의 사물 사이에 배치하는 전환성에 관심을 갖게 합니다. 차가움과 따뜻함, 죽은 것과 산 것, 정지와 흐름 등을 연상케합니다. 또한 <도울 김용옥 비판/김상태/옛노을>과 MBC 여성 앵커모습도 생각납니다.

로쟈 2009-12-17 08:11   좋아요 0 | URL
꽤 화제가 됐던 듯한데,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sophie 2009-12-17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옷을 모두 벗은 여자의 몸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상당히 다른 느낌이 드네요. 인간의 몸이 말랑말랑하기 때문인가 싶기도하고요.

알케 2009-12-1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열살인 아들 이름이 미루입니다 ^^ 두루 彌 새길 鏤 아이 이름을 짓고 보니 도올선생 아이 이름과 같더군요. 아이 낳기 전 언제부턴가부터 그 이름이 입에 맴돌더니...^^

저는 도올선생의 <논어한글역주>를 읽고 있습니다. 주희 역주 위에 沃案이라고 역주를 단 도올의 서지학, 고문학 지식과 도발적 역주에 경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