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100권의 책"
어제 읽은 흥미로운 기사는 동아시아 100권의 책 선정 소식이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서 동아시아 독자들이 함께 읽을 현대의 고전 리스트를 만들고 공동 번역 사업에 나선다는 것인데, '동아시아'란 게 무엇이며, '동아시아인'이란 정체성이 어떤 내용을 갖게 될는지 비로소 구체화될 듯싶다. 이후에 '동아시아의 소설들' '동아시아의 사회과학서들'이 더 기획될 수 있을 거라고 하니까 이제 첫걸음이다. 리스트를 보면 번역작업이 아주 지난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은 한국 선정 도서 26권의 리스트를 눈요기 해본다. 나머지 74권의 선정 도서가 차례로 번역돼 나오길 기대하면서...
한국일보(09. 10. 30) 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동아시아의 독자들이 함께 읽게 될 현대의 고전 100권이 선정됐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인문출판사들의 협의체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29일 전북대에서 제9회 동아시아출판인대회를 열고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발표했다.
100권의 책은 각국의 선정위원회가 고른 근ㆍ현대의 대표적 인문 도서로 한ㆍ중ㆍ일 각 26권, 대만 15권, 홍콩 7권으로 구성됐다. 이 책들은 2010년 선정 경위와 개요를 담은 해제집 발간을 시작으로, 각국 정부의 번역 지원을 받아 출간될 예정이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2005년 결성, 도쿄에서 열린 제1회 대회 때부터 100권의 책 공동 출판 사업을 추진해 왔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근대 이전 동아시아는 한자를 기반으로 상당히 넓은 지적 교류를 해왔지만, 근대화와 냉전을 겪으며 그 교류가 끊어졌다. 현대 동아시아가 위치한 지적 기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좋은 책을 읽는 일이 시급하다"고 사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언호 회장은 이날 대회 개회사에서 "책은 공유됨으로써 빛난다. 100권의 책 프로그램은 세계 출판계에 새로운 문제의식을 던져줄 것"이라고 말했다.
100권의 책에 포함된 한국 도서 26권은 <백범일지>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국의학사> 등 3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1970년대 이후에 출간된 책이다. 한경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저작권위원장)는 선정 기준에 대해 "1950~60년대 분단과 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산업적 토대를 구축한 한국 출판계가 본격적 인문 단행본 출판을 시작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 밖에 ▦상업성보다 한국 사회에 지적ㆍ사회적 영향을 끼친 책 ▦한국적 특성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책 ▦번역이 가능하고 너무 전문적이지 않은 책 등을 선정 기준으로 들었다.
한국의 경우 2008년 7월 이후 학자, 출판평론가, 출판사 대표 등이 참여한 선정위원회를 운영해 왔다. 한 교수는 "모두가 만족하는 목록은 불가능했다. 숱한 토론과 타협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며 선정 작업이 지난했음을 털어놨다. 한국 선정 도서에는 이밖에 <한국 음악사> <한국 근대 문예비평사 연구> <한국 수학사> <지눌의 선 사상> <한국 유학 사상론>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등 철학, 사회, 예술에 대한 현대의 저술이 다양하고 고르게 포함됐다.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은 김구(1876~1949)의 <백범일지>이며, 가장 최근의 것은 2006년 출간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풍경과 마음>이다.
26권 가운데는 정치ㆍ사회적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도 눈에 띈다. 따라서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을 놓고 논란도 예상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흔들리는 분단체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전쟁과 사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등이 목록에 포함됐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한국의 1970~80년대는 민주화를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포함된 책은 산업화ㆍ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책들이다. 오히려 사상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중국의 독자를 고려해 걸러낸 책도 있다"고 밝혔다.
중화권(중국, 대만, 홍콩)과 일본이 선정한 책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저술한 학술서와 고급 교양서가 주를 이뤘다. 일본의 류사와 다케시 전 헤이본사 대표편집국장은 "'동아시아의 독자들이 공유해야 할 책이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 선정 기준이었다"며 "목록에 포함된 책들은 근래 50년 동안 발간된, 일본에서 현대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들"이라고 설명했다. 동슈위 전 중국출판집단 싼롄서점 총경리는 "중국은 (문화대혁명 등의 이유로) 학술서가 출판되지 못하던 시절이 있어서, 1980~90년대 이후 신진 학자들의 저작이 많이 포함됐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저작권ㆍ판권이 확보되는 책부터 순차적으로 100권의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출간 작업은 각국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표지 디자인이나 편집 등에서 통일성을 추구할 방침이다. 한성봉 동아시아출판사 대표는 "번역은 무척 힘들고 중요한 작업이라 언제 완간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출판인회의에 소속되지 않은 출판사에게도 발간의 기회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예일대 출판사를 비롯한 비아시아권 출판계에서도 100권의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100권의 책은 계속되는 프로그램"이라며 "'동아시아의 소설들' '동아시아의 사회과학서들' 등 다른 이름과 형태로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유상호기자)
09. 10. 31.
P.S. 한국 선정도서들의 이미지를 나열해본다. <한국문학통사>만 제외하면 초판출간연대순이다. 한국의 인문서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시중에서는 구할 수 없는 '죽은 책'들도 여러 권 눈에 띈다. 알라딘에 이미지가 뜨지 않는 책은 제외했다(*표시를 했다).
1. 백범일지
2. 뜻으로 본 한국 역사
3-6. 한국의학사, 한국과학사, *한국음악사,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7-9. 한국수학사, 지눌의 선사상, 한국유학사상론
10. 한국사회사연구
11. 갈릴래아의 예수
12.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3-15.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흔들리는 분단체제
16-17. 한국사신론,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18-19. 시간과의 경쟁, 전쟁과 사회
20-22. 한국문학사의 논리와 체계, 한국미술의 역사, 운화와 근대
23-25. 한국인의 신화, 눈과 정신, 풍경과 마음
26. 한국문학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