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꼽은 '11월의 읽을 만한 책'을 보니 서두에 "주말에는 써야 할 원고들이 많아서 미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라고 적어놓았다. 딱 1년이 지났지만 처지는 마찬가지다. 주말에는 할일이 너무 많아서 야밤을 틈타 미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11월은 2월과 마찬가지로 잘 눈에 띄지 않는 달이지만, 일정을 보니 매주 발표와 강연이 있다. 아마도 정신없이 보내다 12월을 맞을 듯싶다. 벌써 겨울인가?!..  

1. 문학 

신경숙 작가가 추천한 책은 줌파 라이히의 <그저 좋은 사람>(마음산책, 2009)이다. 이미 지난번에 '9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았으니 나로선 덧붙일 말도 없다. '그저 좋은 책'이고 나는 그제도 아는 분께 한권을 선물하기도 했다. 나대로 더 고른 책은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민음사, 2009)와 리비아 출신의 작가 히샴 마타르의 <남자들의 나라에서>(현대문학, 2009).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는 남아공 출신의 노벨상 수상 작가 쿳시가 2007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쿳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실험적인 소설이라 한다.   

<남자들의 나라에서>는 작가의 데뷔작으로 쿳시로부터 "리비아 정치의 폭력성에 너무 어린 나이에 노출된 아이에 관한 통렬한 스토리"란 평을 들은 작품. 공통점을 더하자면 두 작품 모두 쿳시와 하진의 작품을 주로 옮겨온 왕은철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1979년 리비아, 푸른 지중해와 뜨거운 햇빛으로 둘러싸여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아홉 살 소년 술레이만. 그의 어린 시절은 카다피 정권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는 것이 소설의 도입부로 작가 자신의 체험을 많이 반영하고 있는 듯싶다.   

2. 역사 

이덕일 소장이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김진경의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안티쿠스, 2009). 국내서로는 드물게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는 책으로, 추천자는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재적 관점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크게 돋보인다. 노비를 포함해 인구 5만 명 정도의 폴리스들이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독립적 상태로 존속할 수 있었는지를 추적하고, 베일 속에 묻혀 있던 고대 그리스의 모습을 현대인의 시야로 끌어올린 최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싣고 있어 흥미진진하다."고 평했다. 아직 손에 들진 못했지만, 나도 바로 구입한 책. 저자의 다른 책으론 <지중해 문명 산책>(지식산업사, 1994/2001), 번역서로 키토의 <그리스 문화사>(탐구당, 1984/2004)가 있다. 정평있는 그리스 입문서인 키토의 책은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갈라파고스, 2008)이라고 따로 번역되기도 했다.   

 

3. 철학 

이달부터는 철학분야의 선정위원이 김형철 교수(연세대 철학과)로 바뀐 듯한데, 첫번째 추천도서는 장근영의 <심리학 오디세이>(예담, 2009)이다. 의외의 책인데,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저자가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알기 쉽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화도 직접 그렸다." 분류하자면 교양심리학에 가깝겠다. 철학분야의 책을 고르자면,  노에 게이치의 <이야기의 철학>(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과 김용석의 <서사철학>(휴머니스트, 2009)을 고르고 싶다. 모두 '이야기'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책으로 이야기란 무엇을 기록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통찰들을 제공한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고른 정치/사회분야의 책은 김재명의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프로네시스, 2009)이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서구의 시각이 아니라 그들의 시각에서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우리의 시각에 균형을 부여하려는 시도이다."라고 평하는데, 추천자에 따르면, 이 책의 메시지는 첫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좌절과 분노이고, 둘째, 팔레스타인 지역에 평화가 정착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친이스라엘 일방주의를 거둬들이고, 유엔 평화유지군을 팔레스타인 지역에 파견하여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혈사태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을 다룬 책으로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현대사>(후마니타스, 2009)와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를 모았던 만화 <바시르와 왈츠를>(다른, 2009)을 꼽아두도록 한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한 경제/경영서는 이몬 버틀러의 <시장경제의 법칙>(시아, 2009). 제목이 눈길을 끄는 건 아닌데, 추천자는 시장에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입문서로 강추하고 있다. "이 책은 시장의 모든 측면을 A부터 Z까지 샅샅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설명에서 경제 전문가의 어려운 말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평범한 언어로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진정한 대가는 쉬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론 존 맥밀런의 <시장의 탄생>(민음사, 2007)과 시장경제로의 이행 문제를 다룬 조지 스티글리츠의 <시장으로의 길>(한울, 2009)을 골라놓고 싶다. 전자도 "어려운 전문용어 없이 상식적인 수준에서 모든 종류의 시장을 살핀다"는 책이다.     

6. 과학 

새로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최영주 교수(포항공대 수학과)가 추천한 과학책은 콘스탄스 루크의 <존 오듀본>(서해문집, 2009). "책은 미국 조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화가인 존 오듀본(1785-1851)의 열정과 일 그리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류학의 아버지'라고 하니까 국내에선 가장 널리 알려진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가 생각난다. 찾아보니 <날아라,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마음의숲, 2007)이란 자전적 에세이집이 나와 있다. 오듀본과의 차이라면 그림이 아닌 사진을 수록하고 있다는 점. 소개는 이렇다. "새와 사람 사이에서 대자연이 허락한 만큼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조류학자 윤무부 교수의 60년의 삶이 총망라되어 있는 에세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리고 새를 통하여 우리의 잃어버린 날개, 즉 마음속에 있는 식지 않은 열정을 되찾게 하는 격려의 메시지를 담았다. 지은이가 직접 찍은 다양한 새 사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7. 예술  

김춘미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임근혜의 <창조의 제국>(지안, 2009).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이란 부제를 곁들여야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영국의 현대미술의 메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현장중계를 통해 전달해주고 있는 책인 듯하다. 소개는 이렇다. "런던을 관광의 메카로 만들며 현대미술의 능력을 보여준 테이트모던 미술관, 시골 탄광촌을 일약 국제적 문화도시로 도약시킨 '북방의 천사', 런던 뒷골목까지 관광객이 찾게 만든 얼굴 없는 거리미술가 뱅크시, 그리고 경매 한 번으로 2천억 원어치 작품을 팔아치우며 피카소를 넘어선 데미언 허스트 등 yBa 아트스타들의 성공 스토리까지…"

 

yBa는 'young British artist'그룹을 가리키는 것으로 최근 세계미술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잠시 살펴본 작품들이 꽤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이유가 뭔지, 어떤 사회적 배경이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예술분야의 나머지 두 권은 개인적인 관심도서로 채운다.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휴머니스트, 2009)와 조선희의 <클래식 중독>(마음산책, 2009). 전자는 진중권의 그림 이야기이고, 후자는 조선희의 한국영화 이야기이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이다. 12점의 그림 가운데 어째서 이 그림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는 우리가 다 아는 바다. 이런 게 동시대인의 '특권'이라니!..    

 

8.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소 알로이시오의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책으로여는세상, 2009)이다. 제목이 이미 많은 걸 짐작하게 해주는 책인데, 저자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의 자서전이라 한다. 어떤 분이었나? "1957년 12월 8일 파란 눈의 젊은 미국인 신부가 일본 동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전쟁이 끝난 지 4년밖에 안 된 한국을 찾았다. 그의 첫 인상. "당시 한국의 모습은 세상의 종말처럼 보였다." 27살의 이 신부는 어릴 때부터 꿈이던 가난한 자,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려 했던 소 알로이시오. 루뱅의 신학교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신부와 평신도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그는 한국과 태국 중에서 한국을 선교지로 골랐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난한 이들이 많았던 부산교구를 선택했다."  그런 선택 이후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소 신부님'은 1992년 루 게릭 병으로 필리핀 소년의 집 근처에서 영면했다고 한다. 저자의 책으론 <굶주린 자와 침묵하는 자>(가톨릭출판사, 2002)도 출간됐었지만, 품절상태다. 알라딘에서는 '카톨릭 에세이'로 분류되는 이 책과 같은 분야의 책으론 고 김수환 추기경의 <바보가 바보들에게>(산호와진주, 2009)도 출간돼 있다.   

  

9. 실용

손주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꼽은 실용분야의 책은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궁리, 2009)이다. '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개의 시선’이 부제. 저자들은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소속. 노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탓에 이 책을 통해서야 '어사연'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런 곳이다. 

‘노인’과 ‘노인복지’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2000년 겨울 ‘노인복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시작한 소박한 모임이 가늘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져 9년의 세월을 보냈다. 특히 ‘어사연’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어사연 공부방’ 모임. 2001년 2월 1회 세미나(노인과 운동에 대한 기본 이해/노인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2009년 8월 100회 세미나(노인요양원에 살다 : 노인요양원 생활의 빛과 그늘)까지 노인문제와 관련 있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노인 복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들을 전하고 있다.(http://cafe.daum.net/gerontology)   

인생에서나 책에서나 '노년'은 '청춘' 이상으로 큰 주제이지만 소홀하게 다뤄진 감이 없지 않은데,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관련서들이 더 많이 출간되면 좋겠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교정해주는 책으로 김열규 교수의 <노년의 즐거움>(비아북, 2009)와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라는 마리 드 엔젤의 <살맛 나는 나이>(학고재, 2009) 정도는 기억해둠직하다. 마리의 한 마디는 이렇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늙음이 주위 사람들에게 행운의 부적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우리의 탐험을 인도할 길잡이 끈은 우리 안의 무언가는 늙지 않는다는 신념이다. 나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시들고 메마른 심장이 아니라 사랑하고 갈망하는 능력을 말한다.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힘, 인간 존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이 힘을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라 불렀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노화의 힘든 시련 한가운데서 버티게 도와줄 수 있는 건 바로 마음이다.

 

10. 알함브라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알함브라'로 정했다. 책상맡에 있는 달력의 11월 사진이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정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찾아보니 워싱턴 어빙의 기담소설 <알함브라>(생각의나무, 2009)가 출간돼 있기도 하다.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생각나고, 시인 로르카의 죽음을 소재로 한 영화 <데스 인 그라나다>도 떠오른다...

 

알함브라 궁전에서의 하룻밤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1월의 하룻밤 정도... 

09. 10. 30.  

P.S. 이달의 고전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한길사)이다. 학부시절에 건성으로 들춰보았을 뿐 정독하진 않은 책인데, 지난 봄에 함석헌 전집도 개정판이 나온 김에 독서계획을 잡아놓았었다(이달이 그달이다). <함석헌 평전>(삼인, 2001) 등의 관련서도 많이 출간돼 있다. 낙엽이 타는 냄새와 함께 고난에 찬 한국역사의 '뜻'에 대해서 궁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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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0-3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여기였던가요. 일때문에 외지에 왔는데. '바시르와 왈츠를' 후다닥 읽고 싶네요.

로쟈 2009-10-30 22:37   좋아요 0 | URL
노트북으로 접속하시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