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이름의 수수께끼

독일의 거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새물결, 2009)이 번역되었기에 관련기사를 검색해보다가 작년에 나온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푸른숲, 2008)에 뒤늦게 주목하게 됐다. 미처 몰랐는데, 저자가 루만의 <열정으로서의 사랑>에 영감을 얻어서 쓴 책이라고("비개인화된 사회에서 개인적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소통 코드로서 사랑을 규정한 니클라스 루만의 화두로부터 시작해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제 그 '소스'가 되는 책이 출간됐으니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루만의 책에 대해서는 주말에나 리뷰기사가 올라올 듯싶고, 여기선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둔다.   

한겨레(08. 05. 14) 사랑은 움직인다, 21세기 실용 전술을 짜라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놀라운 것은, 우리는 사랑이 탈마법화됐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랑 그 자체는 마법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정체가 발각됨으로써 사랑의 마법은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사랑의 본질을 좀더 상세히 파악하면 유일무이한 사랑의 모델을 끌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이를 통해 사랑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유일성을 체험할 수 있다.”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랑의 코드>는 사랑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서다. 독일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지은이의 방법론은 니클라스 루만의 책 한 권에서 비롯했는데, 그것은 <열정으로서의 사랑>이다. 루만은 1982년에 펴낸 이 책에서 “근대적 사랑의 전형인 ‘낭만적 사랑’이 퇴조하면서 이해관계의 차가운 계산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루만과 달리, 사랑의 신화가 소멸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사랑이 인간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비록 낭만적 사랑이 예전처럼 존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 접어들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실용주의와 맞물려 ‘전대미문의 새로운 형식’으로 융합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해설을 쓴 김홍중(대구대 사회학 전임강사)씨는 지은이의 핵심 주장이라 할 ‘사랑의 새로운 결합’이 두 가지 현상의 중첩이라 말한다. 현대사회의 복잡성이 더해갈수록 개인은 자유로운 동시에 실존적 고독을 느끼게 된다. 하루의 많은 시간을 비개인적이고 사무적인 환경 속에서 보내는 현대인은 친밀하고 열정적인, 다시 말해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 안에서만 진정한 소통을 이뤄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시사하는바, 그것이 우리들 ‘심장의 코드’(Der Code des Herzens)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낭만적 사랑은 ‘자아의 희생’을 담보로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 현대인이 과연 그와 같은 개체의 소멸을 견뎌낼 수 있는가 지은이는 묻는다. 때문에 낭만적인 사랑을 유지하되 그것을 위험하지 않은 정도에서 현실적 사랑의 가능성으로 창출할 필요가 생긴다. 이것이 지은이가 힘주어 말하는 사랑의 유형이다. “소통의 시대가 지나자 사랑은 실용적 단계로 진입하였고, 문제 지향성은 실천 지향성에 자리를 내주었다. 사랑은 묵은 허물을 벗고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실용적 사랑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감정과 실리, 낭만과 현실주의, 열정과 자유방임은 새로운 결합에 도달하였다.”

루만의 이론을 이정표 삼아 지은이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소통 코드’라는 결론을 향해 묵직한 성찰을 시도한다. 시대별로 사랑이 어떤 변모를 겪었는지 훑어보고,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믿는 열정을 사랑의 맹점이라고 말한다. 대중매체의 확산과 함께 사랑도 급격히 진화하면서 프로그래밍되는 현실을 분석하는가 하면 소비문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현대인의 사랑 풍속도를 해부해 보이기도 한다. 나아가 지은이는 전통적 가족 구조가 해체되면서 벌어지는 ‘가족의 탄생’을 짚어내는데 그 대표적 예로 별거 동침과 패치워크 가정을 들었다. 별거 동침은 가까운 곳에 각자 집을 얻어 살되 필요할 때 만나는 경우이며, 패치워크 가정은 재혼한 부부가 이전 결혼생활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와 구성된 형태를 가리킨다.

사람의 삶에서 온갖 다사다난을 만들어내는 사랑. 그 간난신고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현대인들에게 건네는 지은이의 충고. “아무리 투철한 전략도 사랑을 조종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계산 불가능성을 ‘백미러’로 계속 관찰하며 대처해 나간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게 언제나 진행형이며 결코 완료형일 수 없다는 전제만 받아들인다면 눈을 쉬이 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전진식 기자)  

09.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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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09-10-22 10:46   좋아요 0 | URL
권기돈 씨와 조형준 씨 외에도 먼젓번 루만의 <사회체계이론(한길사)>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정성훈 씨가 참여하셨더군요. 제 짧은 식견 안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루만 전문가'이신 것 같은데 번역이 기대됩니다.

게슴츠레 2009-10-22 10:24   좋아요 0 | URL
책을 직접 읽어봐야 알겠지만 기사에 인용된 "근대적 사랑의 전형인 ‘낭만적 사랑’이 퇴조하면서 이해관계의 차가운 계산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루만의 비관적으로 보이는 입장이나, "낭만적인 사랑을 유지하되 그것을 위험하지 않은 정도에서 현실적 사랑의 가능성"을 말하는 슐트의 입장이나 그리 썩 시원하게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그보다 "전략적"인 사랑과 "낭만적"인 사랑은 서로를 지탱해주는 보완물의 관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케이블TV에서 나오는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외모, 직업, 종교 따질 것 다 따지면서도 '저는 운명적인 한 번의 사랑을 믿어요'라고 말하는 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그 분이 '이 분이 운명같다'라며 택한 분은 앞서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죠. 스스로의 현실주의적 기준을 낭만주의적 양념으로 아름다게 합리화시키는 구조. 그런 맥락에서 슐트의 제안은 도달해야 할 목표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고, 루만의 예상은 이런 물신적인 구조까지는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시스템론을 통한 '사랑'에의 접근은 이런 논의를 시작하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물질적인 기초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군요. 얼마되지 않는 믿을만한 루만 번역서라는 데도 큰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로쟈 2009-10-22 11:31   좋아요 0 | URL
네, 오래 기다린 책인데, 기대를 갖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