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대안 시리즈’에 이어서 우석훈의 '생태경제학 시리즈'가 출간되기 시작했다. 네 권의 시리즈 가운데, <생태요괴전>(개마고원, 2009)와 <생태 페다고지>(개마고원, 2009) 두 권이 우선 1차분으로 나왔는데,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레디앙, 2009)까지 포함하면 그래도 세 권이다. 언론의 아무런 조명도 없이 '조용히' 출간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작전'을 방불케 한다. 조용히 내딛는 걸음이지만 당차면서도 확고해 보인다.
배송도 그렇고 책은 연휴가 지나야 보게 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알라딘에 올라와 있는 소개와 목차를 통해 대강의 취지와 내용은 어림해볼 수 있다. <생태요괴전>의 부제인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의 풀이가 이렇다.
과시적 욕구로 가득 찬 본능, 혹은 마케팅에 의해 급조된 욕망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삶은 ‘넓게 살기’다. 큰 아파트, 큰 건물, 대형 승용차 같은 것들이 이런 본능 혹은 욕망이 지시하는 방향이다. ‘좁게 살기’는 이와 반대되는 삶의 상징적 표현이다. 예전에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망했다. 세상은 넓지 않다.
본능이 지시하는 과시적 소비의 욕구를 이기고 좁게 살려면 생각을 아주 많이 해야 한다. 한마디로 ‘넓게 생각하기’가 가능해야 좁게 살 수 있다. 넓게 생각하기란 어떤 것인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좁게 살기’도 해석의 여지가 많다. 적게 먹는다고 라면을 주식으로 먹거나 햄버거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은 ‘싸게 살기’이지, ‘좁게 살기’는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좁게 살기 위해서는 아주 넓은 생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에게 “왜 너는 생태적으로 살지 않니?”라고 야멸치게 쏘아붙이며 잘난 척하라고 좁게 살기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 높은 빌딩, 큰 차, 열관리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개발요괴의 전성기를 극복할 수 있고, 다가오는 ‘희소성의 시대’에도 한국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들임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247-8쪽)
이 대목을 읽고 서가에서 빼온 책은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2002)와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산책자, 2009)이다. 싱어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를 언급하는 대목이 생각나서다. '독서와 문화, 경험'이 '넓게 생각하기'의 도구라고 할 때, 특히 이런 책들은 '도구 중의 도구'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결국 돈이 문제다'(85-88쪽)라는 절에서 싱어가 인용하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돈은 '분리의 보편적인 기제'이다. "그것은 사람의 성격과 힘을 다른 무엇인가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추한 남자라도 돈이 있으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곁에 둘 수 있다. 마르크스의 생각에 돈은 우리를 진정한 인간성에서, 그리고 우리 이웃에게서 분리시킨다."(마르크스의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참조한 것이다.)
흥미로운 건 마르크스의 이러한 생각을 입증해주는 심리학 실험을 싱어가 소개하고 있다는 점. 개인적으론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의 하나였는데, 실험 내용은 이렇다. 두 대조군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한쪽에는 과제를 주면서 돈에 대한 문구를 중간중간 들려주거나 옆에 돈더미를 올려놓거나 각종 화폐가 나타나는 스크린세이버를 볼 수 있게 한다(이들을 '머니그룹'이라고 불렀다). 물론 대조군 피험자들에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얻은 결과는? 머니그룹이 다음과 같은 행동 특성을 보였다.
-어려운 과제를 주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말해주면, 도움을 청하기까지의 시간이 더 걸렸다.
-각자 의견을 갖지고 다른 참여자와 이야기하게 자리를 옮겨보라고 하면, 의자 사이의 거리를 가장 멀리 떨어지게 놓고 앉았다.
-남들과 함께하는 오락보다 혼자서 하는 오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을 도우려는 자세가 덜했다.
-실험 참가 수고비로 받은 돈의 일부를 기부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가장 적게 기부했다.
즉 두드러질 정도로 이기적인 행동양식을 보인 것인데, 이런 면은 다른 사람의 과제 수행을 돕는 일에 통제 집단이 평균 42분을 썼지만 머니그룹은 25분만 썼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사회에서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가족과 친구에 대한 의존도가 줄고, 개인은 보다 자족적이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돈은 개인주의를 북돋우는 한편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도록 만들었으며, 그것은 오늘날에도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넓게 생각하기'의 한 측면은 '돈에 대해 덜 생각하기'이고, '좁게 살기'에 한 방식은 '돈에 덜 의존하며 살기'이다. 혹은 거꾸로 '돈 안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기'이다(이런 서재질도 한 가지 예다). '돈이 말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의 목록을 늘려가는 것, 그것이 반자본주의적 실천이다. 물론 그런 실천은 '부자 되세요!' '대박 나세요!'란 말을 인사로 주고받고, 부동산과 재테크가 가족의 최대 관심사인 사회에서는 조롱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돈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시대는, 우석훈의 표현을 빌면, '개발요괴들'의 시대였다. 그리고 현재의 경제 불황이 시사해주는 것처럼 그 시대는 끝났다, 혹은 끝나가고 있다.
돈은 우리에게 안락과 편익을 제공해주지만, 더불어 확실한 건 우리가 또다른 지구를 돈으로 살 수 없으며, 인류의 행복도, 영혼의 구원도 역시나 돈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서, 필요한 건 방향전환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을 이렇게 비트는 건 어떨까. "돈을 목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수단으로서도 대우하라." 아주 당연한 요구이지만, 물신주의와 성장신화가 권력을 잠식하고 우리의 의식을 세뇌하는 시대인지라 새삼스럽게 들린다.
아, 돈은 한가위 보름달도 살 수 없다!..
09. 10.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