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서 김철웅 논설위원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일본 총선 결과(선거혁명)에 견주어 처지가 뒤바뀌어가고 있는 듯한 한국 현실을 짚어보고 있다. 필자의 진단대로 지금은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시점인 듯싶다. 물론 '비관'이 뜻하는 바는 일본의 우파 정권 55년보다 더 끔찍한 반공 극우정권의 장기집권이다('극우'라는 이데올로기도 실상은 허울일 뿐이다. 기득권 지배집단의 장기집권이라고 해야겠다). 섣부른 낙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니 만큼 열심히 '학습'하고 열심히 칼을 가는 수밖에...

경향신문(09. 09. 02) 낙관과 비관 사이  

일본의 선거혁명이 우리에게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장기집권 시나리오에 대한 경고가 우심한 시기에 이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자민당의 반세기 집권이 허망하게 끝났다. 반면 한국은 장기집권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치 두 나라가 바통 터치라도 한 것처럼.

한국 진보·좌파 진영은 귀가 솔깃해졌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30여개월 후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고 말했다. 희망을 담은 말이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54년 만의 정권교체는 야당들이 54년 동안 정권교체에 실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원인을 찾아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이 일본 선거혁명에 깊은 관심을 갖는 이유야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 반서민, 반통일 행보가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정권은 요즘은 기만적인 친서민 정책을 펴는 노회함까지 보인다. 덕분에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로 뛰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정권은 총력을 다해 미디어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로써 족벌신문들에 방송을 주고 신문·방송·인터넷 매체들을 장악함으로써 장기집권을 위한 토대를 닦는다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 상황에서 일본의 선거혁명은 훌륭한 타산지석이 된다.  



장기집권 도모하는 극우정권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일본 같은 장기집권이 가능할까. 비관적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개탄스러울 정도로 높아 보인다. 한국은 사회 제분야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을 따라왔다. 신자유주의 수용과 토건국가 지향은 오히려 일본을 능가한다. 우익사회를 키울 토양은 비옥하다. 박노자 교수는 책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 “이 사회의 제도적 민주주의 경험이 일본보다 훨씬 짧은 만큼 ‘우경화’도 훨씬 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뉴라이트란 이름으로 일제의 ‘근대화’에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일본의 자민당 반세기 집권은 선진국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다. 미국·영국·독일 등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보수·진보성향의 양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게 보통이다. 한 정당이 20년 이상 집권하는 것도 드물다. 한국은 어떤가. 김대중, 노무현의 ‘좌파정권, 잃어버린 10년’을 제외하고는 간판만 바꿨지 모두 보수 우파정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철저한 반공 극우정권이었다. 지금도 이 정권은 잘해야 중도우파인 김·노 정권을 좌파로 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잃어버린 10년을 탈환한 것에 희희낙락하며 장기집권을 획책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일본의 ‘55년체제’는 개방된 정치경쟁이 만들어 낸 파벌의 연합체로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에서 완전히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선거와 정당간 경쟁을 통해 지배적인 정당의 지위를 확립했다”고 밝혔다. 공산당 등 마르크스주의적 혁명이론을 당이념으로 가진 정당도 제한 없이 선거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일본보다도 강고한 극우체제의 출발선에 위치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북한의 극우·극좌 세력이 적대적 공존을 통해 장기집권을 도모할 것이란 논리에도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비관만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성과가 쉽사리 허물어질 수 없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발전을 믿는 진보는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다. 조건은 어쩌면 일본보다 열악하지만 우리에게는 일본에는 없는 뜨거운 민주화 항쟁의 역사가 있다. 이명박은 언젠가 1970·80년대 민주화 세력을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라 비하했지만 그 민주화는 박제돼 과거의 벽장 속에 처박힌 게 아니다.

진보 , 기득권 버리고 결집해야
극우 정권의 장기화냐 아니냐의 중대한 기로에 선 진보는 저들의 개과천선을 기대해선 안 된다. 용산참사를 외면하고 공안통치를 일삼는 권력과 정권이 말하는 화해 통합론은 선을 가장한 악일 뿐이다. 진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진보·좌파의 결집만이 미래를 낙관케 만드는 조건이자 관건이다. 야권과 민주세력을 통합하는 일에 알량한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으론 어림도 없다. 극복대상은 이명박 이전에 진보 자신의 지역주의, 기득권주의다. 안그러면 정권은 박근혜로, 또 누구로 계속 계속 이어질 것이다.(김철웅 논설위원)  

09.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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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9-02 22:19   좋아요 0 | URL
부자 증세, 빈자 감세 등으로 부의 재분배와 금융규제를 강화,
노동자에 대한 기업 이윤 분배, 실업급여 인상, 각 종 수당 인상 등이
세계의 추세인데,,,

우리는 부자감세, 금산분리완화,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 등
옛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는 신자유주의로 갈까요? 혹시 잃어버린 얘기를
찾고자 해서 일까요, 아니면 불도자 팔기위해서 일까요?

강 건너에서는 폭넓은 중도를 이끌어 내야 한다며, 사회민주주의 원리를
대폭 받아 성찰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찰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는데,
눈치만 보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듯 합니다.

열정과 균형을 갖춘 도전자 보다는 기회는 이때다 '승자도식대열'에
끼려는 쌍판들이 넘쳐 납니다. 마을앞에는 현수막이 걸립니다.
"64회 동창 XXX 대표이사 취임"이라며 족보에도 실립니다.

로쟈 2009-09-03 18:38   좋아요 0 | URL
그게 쉽게 바뀌진 않겠죠. 박노자 교수는 동문회 안 나가기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펠릭스 2009-09-05 19:31   좋아요 0 | URL
박교수의 글과 의식의 흐름이 제게 불편함이 없습니다.

2009-09-03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03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