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영화 <해운대>의 관객이 100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예고편에서 받은 인상을 넘어서는 뭔가가 영화에는 있는 모양이다. 더불어 '쓰나미'라는 대재앙과 경제불황에서의 심리가 잘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도 싶고(영화 기획단계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효과일 수도 있겠다). 사실 그런 효과라면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살림Biz, 2008)도 누릴 만하지 않은가 싶다. '자본주의 대재앙'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책읽는 경향'에서 김영진 영화평론가도 지적한 것이다.  

경향신문(09. 08. 21) [책읽는 경향]쇼크 독트린 

영화 <해운대>를 보고 천만관객을 동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편안한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그럴 듯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대재앙이 시작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여하튼 그간 묵은 상처를 봉합하고 거듭난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영화를 보고 정작 현실 속의 우리는 재난을 겪고 어떻게 거듭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늘 사회가 힘들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고 경제가 어렵다는 말도 숱하게 들었다. 그렇게 해서 수립된 새 정부는 다 바꾸자고 한다. 4대강 사업을 벌이고 땅값은 계속 올려 다 같이 부자가 되자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난이 올 것처럼 말이다.

진짜로 무서운 것은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재난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한 책 <쇼크 독트린>(살림 Biz)에서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라는 말을 쓴다. 기업하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감을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그에 준하는 자연재해나 여타 사회적 재난을 핑계 삼아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를 가동시킨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레벨을 민영화하고 정부의 기능을 아웃소싱했다. 그 와중에 사회의 공공성 축대는 무참하게 무너졌다.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이 체제는 저절로 세계의 주류가 된 게 아니었다. 그 이념적 지주인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지휘 아래 제자들, 후원기업과 미국 CIA가 세상을 꾸준히 바꾸었다. 정부권력과 기업이 합작해 만들어낸 이 시스템의 파국이 우리에게도 닥쳐왔으나 우리는 여전히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김영진 영화평론가) 

09. 08. 25.  

P.S. 진보적 지식인의 새로운 기대주로서 "30년전의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도 듣는 나오미 클라인은 이제까지 세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그중 두권이 번역됐다), 벌써 '세계를 뒤흔든 지식인' 반열에 들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패턴을 찾아내어 감춰진 진실을 폭로한다. 이 책은 이제껏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책이다."라는 것이 <쇼크 독트린>에 대한 하워드 진의 평가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워서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1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다고 하니 우리의 사회과학서 현실과 비교된다(물론 클라인의 책도 한국시장에서는 한국의 현실을 따르지만). 아시아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용에 대해서도 클라인은 소략하게 다루고 있는데, 쇼크 독트린의 '한국 버전'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니까. 영화 <해운대> 관객의 1%만 관심을 가져줘도 '대박'이 날 텐데..

지난 연말에 나온 책이지만 만만찮은 두께를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미뤄두다가 나는 어제서야 뒤늦게 책을 구입했다. 시작부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학파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공격이 신랄하다(나오미는 이 책을 30대에 썼다). 문제는 레오 스트라우스가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이다?! 생각난 김에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 <불경한 삼위일체>(삼인, 2007)와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려나 책이 좀더 많히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나대로 한번 더 '광고'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저자인 클라인은 1970년생으로 나이로만 치자면 나보다 젊다. 앞으로도 '창창한' 동행길이 독자로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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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noxr 2009-08-25 11:08   좋아요 0 | URL
아 쇼크 독트린은 재미있게 읽은 책입니다. 이번 재난은 신종 플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D 그다음은 지구온난화겠죠?

로쟈 2009-08-26 01:05   좋아요 0 | URL
지구온난화는 많이들 다뤄서 신선할 것 같지 않은데요. <쇼크 독트린>의 주기라면 3년뒤쯤 책이 나올 듯합니다...

펠릭스 2009-08-25 21:18   좋아요 0 | URL
남한 인구의 1/5분이 특정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세월이 겉을 싹~ 훌터버린 지금, 첫번째 우주발사 성공(?),
연애인의 파격적인 결혼 발표 등도 내겐 '쓰나미(-재앙)'다.
'쇼독(SD)'은 '즉사(卽死)'다. 내 또한 순진한 관객이다.
죽고 죽인 것들이 자연이 아닌 어떤 시스템에 의함에 놀랍다.
도착할 미래의 땅에서는 '인공쓰나미'가 나올법도 하다.

로쟈 2009-08-26 01:06   좋아요 0 | URL
네 칼럼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란 지적이 아프죠. 재난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사회인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