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잠시 집에서 가까운 분향소에 들러 분향을 하고, 오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 실황을 TV로 봤다. 무거운 마음에 해야 할 일들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한번 더 정권교체가 된 이후에 세상을 떠나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모두가 좀더 흔쾌히 보내드렸을 터인데...     

  

오전에 <인권의 발명>(돌베개, 2009)을 읽기 위한 리스트를 만들어놓으며 떠올린 기사는 지난 주초에 시사IN에서 읽은 것이다. 지난 6월 북미 지역 대학 교수 240명도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한 바 있는데, 그중 36명은 외국인 교수였다. 이들과의 인터뷰가 특집기사였는데, 그중에서 김 전 대통령과도 교분이 두터웠던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최소한 고문은 없어졌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전두환 같은 독재 정부는 아니라는 멘트 때문이다(<인권의 발명>에 따르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도 참혹한 고문이 법정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졌다). 브라보 마이 컨츄리! 하긴 80년대만 하더라도 고문이 횡행하고 '고문기술자'들도 있었던 것이니(김대통령의 장남 깅홍일 전 의원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잖은가)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인 것인지! 그럼에도 기사를 읽으며 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하도 '역주행'이 현 정부의 주특기인만큼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면 한심하면서도 끔찍한 일이다(아래는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과연 '고문 없는 사회'가 형식적 민주주의의 최대치인 것인지?.. 



시사IN(09. 08. 17) "민주주의의 밀물이 빠지고 있다"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67)는 하버드 대학 옌칭연구소 부소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하버드 대학 한국학연구소 수석 프로그램 매니저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도우며 인권·평화 운동을 펼쳤고 이후 아시아인권감시센터를 창립하기도 했다.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8월13일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신호철 기자)  

 

2003년 8월2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강연에 에드워드 베이커 교수(오른쪽)가 함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한데 한국 민주화 운동을 도왔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각별할 것 같다.
어제 세브란스 병원에 문안을 가서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보지 못했는데, 그건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 말로는 김 전 대통령이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말을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거의 주무시는데, 잠자는 건지 의식이 없는 건지 걱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을 언제 처음 만났나?
1975년 동교동 자택에서였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 아웅산 수치 여사처럼 가택 연금 중이었고, 나는 미국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한국에 있었다. 당시 서울 서소문 풀브라이트 하우스에는 나를 비롯한 미국인 친구들이 모여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했다. 이희호 여사는 영어를 잘해서 미국인들과 친분이 있었고, 김대중 선생은 47세에 늦깎이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김 선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던 더글러스 리드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가 우리보고 동교동에 가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했다. 김대중 선생은 한국 민주화 영웅이었으므로 꼭 뵙고 싶었다. 동교동 자택에서 통역은 필요없었다. 우리도 한국어를 꽤 했고, 김대중 선생은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정확하게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가 영어를 참 빨리 배웠다고 생각했다.

이후 미국에서 또 그를 돕게 되었다.

첫 만남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1983년 그가 석방돼 미국으로 왔을 때, 이틀 만에 워싱턴 D.C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갑자기 미국으로 와서 어떻게 생활할지 준비가 덜 돼 있었다. 나는 하버드 대학과 이야기를 해서 국제문제센터 연구원으로 계시게 했다.

미국에서 김 전 대통령은 어떤 대우를 받았나?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미국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에 김대중씨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미국 지식인의 평가는 김영삼보다 김대중 쪽이 더 실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선생이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졌을 때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선생은 하버드 대학에 있으면서도 계속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을 매우 걱정했다. 1983년 8월21일 베니그노 아키노 의원이  필리핀으로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암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한국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국의 김대중에 대한 관심은 한국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 1987년 6월 항쟁 때 당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개스턴 시거가 한국에 왔을 때 처음 만난 사람이 김대중 선생이었다. 이것은 미국이 전두환에게 1980년 광주처럼 군대로 시민을 치지 말라는 신호였다.  

외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높은 데 비해 한국에서는 반대자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때는 추도사를 하려다 좌절되는 수모도 당했다. 입원하기 전에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내 생각에는 김대중 선생은 한국에서 아주 역사적인 역할을 하신 분인데, 안타깝다. 요즘 한국이 왜….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많은 잘못을 했다.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때와 비교해 지금은 덜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

예를 들어 노동계에 대한 공세적 대응이나 용산 참사에 대한 대처라든지, 남북 관계는 방치한 것 따위. 북한도 책임이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맺은 선언과 국가 조약을 이 정부가 무시한 것을 고려하면, 북한이 화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쇠고기 수입 문제는 아주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한국 국민과 같이 토론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 미국 방한 때 이 대통령이 자신을 CEO 대통령이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CEO라고 생각하는 건 민주주의 나라 대통령의 마음가짐이 아니다.

CEO라는 말은 한국에서 좋은 이미지로 통용되고 있다.
CEO라는 자리의 특징은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과 아주 다른 결정을 내리는 자리라는 점이다. 이게 핵심이다.

미디어 정책도 공세적이다.

얼마 전 미디어법 통과 논란을 지켜봤는데, 권력 기업이 신문·방송 겸영하는 것은 미디어의 집중화와 독점화를 가져오고, 비판 기능은 떨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 1970년대 동아투위 생각이 났겠다.
동아투위 사태 때 이부영 기자가 소공동 풀브라이트 사무실의 우리 미국인 모임을 찾아왔다. 그래서 동아투위를 알게 됐고, 우리가 돈을 모아 동아일보에 독자 광고도 냈다. 문구가 “언론자유 만세, 미국의 친구 16명”이었다. 동아일보 앞에서 한국인들이 시위하고 있는데 키가 큰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서 있는 모습이 도드라졌던 기억이 난다.  

 

베이커 교수(위)는 박정희 정권 이래 한국 현대사를 눈앞에서 지켜보며 민주화 운동을 도왔다.

이명박 정부를 독재 정부라고 생각하나?
아니다. 전두환 같은 독재 정부는 아니다. 최소한 요즘 고문은 없어졌다.

그럼 노태우 정부와 비슷한가? 김영삼과 노태우 사이일까?

글쎄, 그것도…. 노태우도 겨울 공화국이란 간판 밑에서 여러 가지 나쁜 짓을 많이 했다. 당시 내가 아시안인권감시센터를 세웠는데 그때 한국 민주운동가들 아주 힘들었다. 어떤 선을 그어서 어디까지 후퇴했다고 측정해 말하기는 힘들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밀물이 빠지고 있다(high tide of democracy is now going backward)는 점이다

09.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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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2009-08-24 11:39   좋아요 0 | URL
'이웃집 아저씨'론을 언젠가 써야겠어요. 이웃집 아저씨는 돌아서면 나를 죽으려 작동합니다. 조직속에서 나의 이웃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직의 적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등을 맞대고 서로의 이웃를 욕합니다. 아저씨는 어느 공간에, 어느 집단속에 있을 때면 다른 괴물로 변합니다. 조직이라는 미명하에. 해가 지면 낮에 했던 말과 행동을 잊고 은밀한 밤공기를 쏘이며 이웃을 위해 무슨 작전을 합니다.
"너희의 비애가 아무리 크더라도 세상의 동정을 받지마라, 동정속에 경멸의 생각이 들어있다"(플라톤)

로쟈 2009-08-26 01:0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웃집 살인마'보다는 나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