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잠시 칼럼들을 훑어보다가 '탐욕의 미래'를 우려하는 칼럼 두 편을 묶어서 옮겨놓는다. 지난주 한겨레21의 특집기사와 오늘자 한겨레의 박노자칼럼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대박 환상'이 인성으로 제어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파멸로 가는 길에 브레이크는 없어 보인다...  

 

한겨레21(09. 08. 14) 잊혀진 공포, 살아난 탐욕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수천조원의 자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금융 패닉을 경험한 지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의 심리적 충격과 허탈했던 기억을 모두 잊은 듯 금융시장과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과열과 거품의 조짐이 일고 있다. ‘손실의 기억’은 사라지고 ‘수익률의 기대’가 부풀어오르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2000년 3월 미국 나스닥 거품 붕괴와 함께 무너졌던 코스닥 신화의 허망한 붕괴를 목도하며 21세기를 시작한 경험조차도 10년을 넘지 않는다. 당시 5천 포인트를 상회했던 나스닥이 수개월 만에 3천 포인트 밑으로 떨어지고, 한국의 코스닥 지수도 290포인트까지 치솟던 것이 50포인트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던 기억 말이다. 당시 정보기술(IT) 대박의 꿈을 좇아 ‘묻지마 투자’를 하던 수많은 개미들의 머니게임은 처절한 좌절로 끝났다.

그러나 머릿속의 ‘대박 환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수년 뒤 부동산과 금융상품에 대한 머니게임은 다시 되풀이된다. 2004년부터 저금리 기조 아래 부동산 시장이 점차 들썩이고 때마침 수익 경쟁을 벌이던 은행들이 대대적인 주택담보 대출을 풀어 실탄을 공급하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뒤 최대의 금융 거품이 세계적 차원의 폭발을 앞두고 있던 2007년 시점에, 한국에서는 2천만 계좌 이상의 펀드상품이 팔려나가고 있었고, 2006년까지만 해도 360만 명 전후를 맴돌던 주식투자 인구가 2007년 440만, 지난해는 460만 명을 넘어서게 된다. 경제활동인구 5명 가운데 1명이 주식투자를 한다는 얘기다. 종합주가지수도 2천 포인트를 돌파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대박의 꿈을 좇아 부동산에, 펀드에, 주식에 자산을 쏟아붓던 정점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2008년 10월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 충격은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 전 가구에 파급되었고 우리나라도 순식간에 은행 파산의 공포, 기업 파산의 공포, 가계 파산의 공포에 휩싸였다. 특히 우리 가계가 느꼈던 공포는 2000년 IT 버블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물가상승률 밑으로 소득이 추락하면서 가계 수입이 줄었다. 가계 자산의 77%를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고, 펀드와 주식이 반토막 행진을 이어가면서 가계가 보유한 자산가치는 급격히 축소되었다. 반면 각종 시중금리가 7% 이상으로 뛰어오르면서 지출해야 할 이자 비용은 급팽창하고 부채도 늘어났다. 대박의 꿈이 파산의 공포로 전환된 것이다.

‘고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던 사회심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면, 우선 부채를 줄이려는 부채 디레버리지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다시 ‘안전자산’을 찾게 되었다. 2007년까지만 해도 전체 금융자산 대비 41%로 떨어졌던 예금 비율이 2008년 말 기준으로 46%까지 올랐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심리적 수준을 넘어 구조화된 투기 욕망
외환위기 이후 줄곧 자신과 가정의 미래를 투기성 짙은 투자에 걸면서 이미 우리 가정의 소득과 소비, 저축 구조는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가계는 비교적 안정적인 노동소득 상승과 15% 이상의 높은 순저축률을 보이고 있었다. 그 결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을 기반으로 한 민간 소비는 경기가 악화되어도 크게 줄지 않았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되어도 소득의 일정 부분을 저축으로 쌓는 경향이 많아 소비가 급팽창하지도 않았다. 가계의 움직임이 경기의 급격한 변동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가계 운용 패턴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노동소득이 불안정한 가운데 저축을 줄이는 동시에 부채를 동원해서 소비를 확대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가계 부채는 빠르게 늘어나 지난해 기준 가처분소득의 1.4배까지 폭증한다. 반대로 가계의 저축률은 빠르게 줄어들어 지난해 기준 2.5%를 기록하는데, 이는 저축률이 0%까지 추락했던 미국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치다. 올해 미국인들의 저축률이 급상승해 6.5%까지 올라간 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은 가장 저축을 안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더욱이 한국 가정들이 경기변동에 민감한 상품들, 즉 투기성 자산에 몰리는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안정적인 저축성 예금이 줄어들고, 보험상품도 경기변동에 민감한 변액보험이 25%를 차지할 정도로 팽창했으며, 주식 직접투자도 2007년 기준으로 무려 21%가 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한국 가계 자산이 점점 더 ‘시장에 민감한’ 구조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곧바로 가계의 소비지출에 큰 영향을 주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제는 가계 운용이 경기변동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기변동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기로 충격에 빠진 가계가 갑자기 자산 운용 패턴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는 단순히 국민들의 고수익 기대, 투기 욕망이라는 심리적 요인으로만 투기 열풍을 해석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투기적 가계 운용 구조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서서히 수면 아래로 잠복하기 시작한 2009년 3월부터 즉시 그 실체를 다시 드러낸다. 유동성 부족으로 한국과 신흥시장에서 자금을 대거 회수했던 선진국 금융자본들이 다시 한국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가 올라가자 개미들은 이를 따라가기 시작한다. 가장 극적인 것은 이른바 공모주 열기였다. 지난 5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일반 공모 유상증자에 무려 26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려 사상 최대를 기록했는데, 이는 기존 하이닉스 주식 시가총액의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려할 만한 것은 개미들이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행위가 부활하려는 조짐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신용융자 잔액이 지난 6월18일 4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는 올해 들어 178%가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를 틈타 부동산 시장도 비록 국지적 양상을 띠고 있지만 다시 거품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올 4월 0.7%로 플러스 반전된 뒤에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고, 특히 서울 강남권은 1.18%까지 오르면서 2006년 가격대 회복을 말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난 7월, 월 단위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 경매에 사상 최대 금액인 1500여억원의 뭉칫돈이 몰리기도 했다.

투기에 대한 잠재적 욕망이 건재하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외환 마진거래(FX 마진거래) 열풍이었다. 환율 변동에 따라 설계되고 자기 자본의 50배에 해당하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투기적 상품인 외환 마진거래에 올해 다섯 달 동안 무려 361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렸는데, 이 가운데 99%가 개인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개인의 90% 이상이 손실을 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고, 결국 금융위원회가 규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금 부활하는 투기 욕망이 이번에는 무엇으로 귀결될 것인가? 제2의 부동산 버블과 금융 버블을 만들어낼 것인가, 아니면 녹색 성장 분위기에 편승해 세간의 우려처럼 ‘그린 버블’이라는 제3의 버블을 만들어낼 것인가?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뇌관(금융 자유화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소비경제)은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버블 시스템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노동소득은 여전히 줄어들고 있고 실업률은 올라가는데, 교육비와 의료비 같은 경직성 지출은 늘어만 가고 있다. 노동소득에 기초하지 않고 금융적 투기수익으로 줄어든 소득을 보완하려는 구조가 온존하는 한 거품과 거품 붕괴, 공포와 탐욕은 끊임없이 교차될 것이다.(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한겨레(09. 08. 18) [박노자칼럼] 가난의 시대 

한국의 지배자들이 "선진화"를 들먹일 때마다 북한 지배자들이 이야기하는 “강성대국”이 생각난다. 북한과 같은 동북아의 최빈국에서 “강성대국”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기만적 프로파간다에 불과하지만, 한국 보수주의자들의 “선진화”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선진화”에 대한 장밋빛 이야기 속에서 다수의 한국인들은 가난과 불안의 늪으로 점차 빠져든다. 물론 평균 가구 월소득의 절반도 벌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은 아직은 11%를 넘지 않으며, 저소득층은 약 26%, 적자 가구들은 29% 정도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빈곤화의 추세는 꼭 “맨 아래” 25∼30% 한국인만의 문제라고 본다면 오판이다.  

한 달에 200만∼250만원 정도의 “괜찮은 소득”을 올려 빈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명목상의 중산층이라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를 비정규직이나 기업형 마트와의 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밀리는 동네가게 주인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져 간다. 고용 불안이 심화되고 쌍용자동차 해고자에 대한 잔혹한 탄압으로 새로운 “구조조정” 캠페인에 파란불이 켜지고 시장에서 대기업의 독점화 추세로 영세업체의 줄도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성장 시대의 중산층은 점차 신흥 빈곤층으로 재편돼 간다.  

소득 기준으로 봐서 아직도 국내 가구의 58% 정도가 중산층이라 하지만 지금대로 중산층의 비중이 해마다 약 1%씩 줄어간다면 15∼20년 뒤의 한국은 “선진국”은커녕 브라질처럼 빈곤층과 준빈곤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형 사회가 될 것이다. 오늘날 전임교수의 자녀가 연구교수직을 전전하는 평생의 박사급 비정규직이 되고 오늘날 정규직 공장 노동자의 자녀가 평생 각종 임시직과 계약직 이상을 얻지 못하는 “영구적 아르바이트생”이 될 확률이 높은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다수 절대빈곤의 상징이 보릿고개였다면 저성장시대 다수의 상대빈곤층의 상징은 마이너스통장과 현대판 고리대인 대부업체들의 “론”, 그리고 밀리고 밀리는 각종 사회적 보험료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스트레스, 자살 충동일 것이다. “내가 언제 잘릴까”, “우리가 늙으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론 상황이 밀렸는데 이제 깡패들이 우리 가족을 괴롭히지 않을까”해서 늘 겁에 떠는 이들이 출산을 할 의욕보다 자살을 해버릴 충동을 훨씬 더 강하게 느끼니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세계 최대의 자살률은 앞으로도 “일류 국가 대한민국”의 상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전체 개인 보유 주식의 73%를 갖고 있는 이 나라의 “최고 1%”나 전체 부동산의 78%를 갖고 있는 “최고 10%”는 영원한 불안의 생지옥을 체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의 귀한 자녀들은 유치원 때쯤이나 미국이 되든 중국이 되든 그 어떤 “높은 나라”로 건너가 “오렌지”의 본토 발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자사고 등 국내 “귀족 학교”를 졸업하여 등록금이 2000만∼3000만원이 될 수도권의 “최고 명문대”를 다닐 것이다. 새로운 “귀족”과 “평민”, “천민”들의 거주지역과 생활코스, 음식과 문화 등이 철저하게 차별화돼 그들의 자녀들은 서로 만날 기회조차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 한 발짝 한 발짝씩 단결력이 있는 “국민”도 “계급”도 없고 파편화된 개인들과 고착된 신분, 영구화된 불안만이 있는 사회가 돼간다는 것을 그 희생자가 될 다수의 한국인들은 과연 아는가? 아니면 토건과 수출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가? 이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는지 가까운 미래가 우리에게 곧 보여줄 것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09.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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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08-18 13:33   좋아요 0 | URL
예측되는 그린버블, 신흥빈곤층 속에 '올바른 절망'만이 있을까요?

로쟈 2009-08-20 22:53   좋아요 0 | URL
사실 거짓(주입된) 희망들이 투기의 원천이지 않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