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국민장이 치러지는 기간이었고, 애도와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론 몇 편의 원고를 억지로라도 써야 했던 한주였다. 주말이라고 한숨 돌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감정은 추스리고 기력은 다시 곧추세워야 할 시간이다(요즘은 피로도 만성적이 돼가는 듯하다). 넋을 놓고 있기엔 다급한 일들이 너무 많고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일도 앉아서 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에. 주말이면 북리뷰 기사들을 정리해서 올려놓곤 했는데, 이 주에는 휴업해도 좋을 정도다(개인적으론 두어 권 정도만 관심도서로 머릿속에 입력해놓았다). 대신에 향후의 과제를 짚어보는 기사와 칼럼을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21의 특집기사 가운데 '시스템의 노무현 죽이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023.html' 등도 참조).    

경향신문(09. 05. 30) 민주주의 완성·국민 통합 ‘노무현이 남긴 꿈’  

‘그’는 떠났고, 이제 ‘우리’가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는 29일 그가 떠남으로써 우리 안에서 부활했고, 그 꿈은 미완인 채로 ‘산 자’들의 어깨에 남겨졌다.‘바보 노무현’이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완성’과 ‘국민 통합’으로 요약된다. 인권·민주화를 가치로 평생 권위주의와 지역의 벽에 맞서고 ‘균형 발전’을 꿈꿨던 ‘노무현 정치’의 궤적 때문이다. ‘함께 잘사는 세상’이란 어릴 적 출발점부터 대통령 퇴임 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구까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필생의 신념 ‘민주주의’
노 전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까지 고민한 화두는 ‘민주주의’였다. 퇴임 후 참모·학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위해 만든 인터넷 카페는 그 고민을 모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진보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을 했다. 퇴임 후 그가 믿었던 인권과 탈권위주의의 ‘정치 개혁’이 허물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우향우’ 현상에 대한 고뇌가 배경이다.

국민에게 돌려준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다시 흔들리고, 참여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 정경유착과 권위주의 청산도 여전히 허약하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이라던 사회적 약자의 정치·경제적 ‘인권’에 대한 가치도 부정당하고 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계승해야 할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은 세 가지”라며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다. 이는 다름아닌 민주화 시대의 가치고 여전히 미완”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법은 그가 늘 “새 시대의 맏형”이고 싶었던 것처럼 ‘대결과 대립의 민주주의’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협치의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내 뜻을 관철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맘대로 못하는 걸 배우는 것, 내 마음에 다 들지 않지만, 그러나 일보 진전했다는 걸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2006년 4월3일 제주특별자치도 보고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South Korean opposition lawmaker Baek Won-woo (R) is blocked by security guards

◇필생의 과업 ‘국민 통합’
대통령 재임 동안 그가 심혈을 기울인 과업은 정치개혁과 함께 국민통합이었다. “격차는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분열한 역사는 모두 망하거나 엄청난 불행을 초래했다”(2005년 3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이는 네 차례나 낙선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산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에 도전한 것처럼 ‘지역주의 타파’와 이를 위한 ‘균형 발전’, ‘남북 평화’에 대한 희원으로 표출됐다. 또 ‘외국인정책기본법’ 제정 등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진보”(2006년 5월 외국인정책회의)라는 지역·계층·성별·세대·인종을 넘어선 통합과 공존에 대한 바람이었다.

경기대 손혁재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대결 구도의 화두를 가장 붙잡고 싸운 분”이라며 “흡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분권과 균형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과거청산 작업을 시작한 것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보수진영의 전원책 변호사는 “우리사회에서 이념·정책을 달리하는 측에서 우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까지 이야기했지만 문민정부 이후 4기 동안 내내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원인은 패거리 정치”라며 우리사회의 소통 노력과 파당적 정치의 혁신을 주문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우리사회가 변화해야 하고, 사회적 변화는 이성적 과정이어야 한다”면서 “슬픔에서 벗어나 내 박탈감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제도권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을 당부했다.

경희대 도정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한 사회는 언제든 무너진다”면서 권력기관 중립화 등 제도적·법률적 개혁의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앙대 강내희 교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흐름을 종식시키고, 그 흐름에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게 노무현 정부가 못다 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유지를 강조했다.(김광호·송윤경기자)     

한겨레(09. 05. 30)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기는 선물로 받은 시계를 수사가 시작될 때 버렸다는 참으로 치욕스러운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 저 모욕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무리 꺾어버리고 싶은 정적(政敵)이라도 그렇지 자신의 전임자에게 이런 모질고 야만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과연 문명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결국, 우리 사회가 문명사회로부터 멀다는 얘기인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적어도 인간사회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과 법도마저 무너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이 사회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

노일전쟁 때의 일화다. 노일전쟁의 영웅으로 지금도 일본인들이 기리는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는 자신의 두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병사의 희생 끝에 여순 함락에 성공했을 때, 러시아군 지휘관 스테셀의 항복을 받는 자리에서 적장(敵將)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극히 공손한 자세로 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패장이 무장해제를 당하지 않고 회담장에 들어오도록 배려했고, 러시아군의 용기와 전술의 훌륭함을 아낌없이 칭송했다. 게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스테셀 장군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노기 대장은 파리 주재 일본 무관을 통해 스테셀 구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균형감각 역시 그러한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자질이다. 지금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꼈던 전직 대통령의 비상한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말과 글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지식인들에 의한 공식적인 추도문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고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이 간절할지라도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물에 대한 추도문이라면 충분한 예를 갖추되 그 생애와 업적에 대한 묘사는 엄정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A hearse, second from top, containing the body of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Roh Moo-hyun

사실 공적 인간의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서구 선진사회의 언론들이 주요 인물의 부음을 전할 때 거의 반드시 짧지 않은 추도문을 게재하여 그 인물에 대한 때로는 냉정하기까지 한 평가를 기술하는 것은 공적 공간에서의 인간 행동이 갖는 의미의 무거움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노무현과 그의 이상은 여러모로 매력적이고 찬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지도자로서 그는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할 대목이 많았다. “대통령 하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거나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본심이야 어쨌든 그는 서툴고 경솔한 일처리 방식으로, 아마도 역사상 최악의 정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큰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고, 그 때문에 마침내 자신도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09. 05. 30. 

P.S. 기사에서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이 요청된다는 대목, 칼럼에서 '인문적 교양'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국민통합'은 선결과제들의 해결 이후에나 가능할 일이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더 바삐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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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5-30 12:43   좋아요 0 | URL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돌아봐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노무현의 재평가'는 아마도 중요한 화두가 되겠지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노무현 전대통령도 많은 실수와 실책을 범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죽음 이전에는 이 실수와 실책에 대한 좌우를 막론한 과도한 비판이 긍정적인 부분까지 압도해 버렸다는 데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긍정적인 부분이 훨씬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악의 정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정권의 탄생'에 그가 기여했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우선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의 원인을 노무현 일인에게만 돌리는 특이한 담론 구조에 대판 비판적 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5-30 19:13   좋아요 0 | URL
'특이한 담론 구조'를 낳은 어떤 '특이점'도 있지 않을까요?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민은 그를 지지하고 여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주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죠. 그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인지 개인적으론 궁금합니다...

자유새 2009-05-31 13:09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한계도 무시하기 어렵지만,내부의 적- 당시 여당과 지지세력들이 지녔던- 한계와 극복방안에 대안 성찰이 더욱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성인 혹은 절대자로 추앙하는 예수조차도 부활이라는 수단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로쟈 2009-05-31 14:37   좋아요 0 | URL
저로선 그 '지지세력'의 한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궁금합니다(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통령에 당선됐었지요). '무능한 정권'이란 수구언론의 프레임이 결국은 먹히도록 만든...

자유새 2009-05-31 15:12   좋아요 0 | URL
"왕좌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욱 힘들다"는 속된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동력이 비단 그의 삶의 궤적이나 개인적 매력만이 아니
었던것처럼 제가 판단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적,정책적 과오 역시 그의 책임
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그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여깁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당의 한계와 지지세력의 한계의 성격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아닙니다.

우선 `여당`의 한계를 지목한 것은 열린우리당내의 다양한 세력들의 입지로
부터 기인한,그리하여 그의 발목을 잡은 분열상을 지적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지지세력의 범주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비판적
지지자들의 한계를 지칭했다기보단 소위 노빠라고 일컬어지는 맹목적인 지지자
들의 과도하게 온정적인 행태를 지적한 것입니다.

로쟈 2009-05-31 15:22   좋아요 0 | URL
아, '분석'은 자유새님에게 요청한 건 아니구요, 앞으로 그런 분석이 나오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죄송.

자유새 2009-05-31 15:19   좋아요 0 | URL
뻘쭘~ @,.*

베네치아 2009-06-02 17:38   좋아요 0 | URL
독야청청 홀로 완전한 듯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또아리 튼 녹색평론의 김종철 씨의 글은 참으로 안타깝군요. 정치라는 거치른 들판에 서보지 못한 아니 서보려고도 하지 않는 온상의 수목이 어찌 거치른 들녁의 푸르른 소나무이고자 하는 자의 고뇌와 고통을 짐작이나 하겟습니까? 멀리 안전한 곳에 앉아서 관전평 쓰기란 뛰고 있는 선수들의 땀에 대해 결코 냉정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 아닐까요?

로쟈 2009-06-02 22:26   좋아요 0 | URL
김종철 선생도 '활동가'입니다. '인간 노무현'과는 달리 '대통령 노무현'은 사실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었지요. 일부 정책에 대해선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도 반대했습니다. 적어도 당시엔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죠. 지난 대선 결과가 말해주듯이. 그의 '진의'가 좀더 빨리, 더 잘 소통될 수 있는 방도는 없었을까란 뒤늦은 의문을 갖게 됩니다...

멋진빤스 2009-06-02 18:06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히 읽기만 하다 노무현을 사랑하던 사람으로서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여당이 다수당이 되었는데 왜 '실패'하였는가에 대해 변명 한 번 달아보려 합니다.
노무현에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김대중의 민주당이나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노무현이 추진하려던 많은 개혁정책들이 여당의 확실한 지원사격을 받았었나
챙겨보셨으면 싶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 같은 경우도 노무현 대통령은 무척이나
원하였고 지원사격을 했음에도 다수여당이 통과시키지 못하였지요.
또하나 열린우리당 자체의 태생적 한계도 있습니다.
당이 만들어지고 다수당이 되고 나서의 당원단합대회였나 거기에서
(알고보면 열린우리당 내의 소수인) 유시민 의원이 울부짖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끝내선 안된다고... 당의 정체성이나 나아갈 길에 대한 더욱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로쟈 2009-06-02 22:2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사정들이 보다 자세하게 기술되고 분석된 책을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