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오랜만에 동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기로 하고 정한 프로그램은 홍상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다. 박찬욱의 <박쥐>도 상영중이지만 한편만 봐야 한다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여러 리뷰를 보건대 <박쥐>의 감상이 유쾌할 것 같지 않다). 두 시간쯤 남았는데, 마침 감독 인터뷰 기사가 있기에 '기념'으로 스크랩해놓는다. 인터뷰의 홍상수는 이젠 나도 잘 아는 홍상수이다. 아, 그의 취미는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니 영어제목이 'Like You Know It All'이군...  

서울신문(09. 05. 16) 칸 영화제 초청받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아니다. 홍상수(49) 감독 이야기다. 그의 최근 동선은 누가 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달 전주영화제(단편 ‘첩첩산중’)와 칸영화제(‘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부른 데 이어, 8월 열리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도 그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다.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홍 감독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9번째 장편 ‘잘 알지도 못하면서’(14일 개봉)에 호평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영화감독인 구경남(김태우)이 제천과 제주를 방문하면서 겪는 일화를 담고 있다. 두 곳에서 차례로 여자를 만나지만, 오해와 과욕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만다. 홍 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이메일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평소 영감을 얻는 곳은.

-남들이 보면 일상적인 상황인데, 나한테는 영화적으로 풀어나가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그 구현과정에서 ‘저절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직감으로 들 때가 있다. 난 거기서 시작한다.

→작품이 더 편안하고 재미있어진다는 평에 “나이가 들어서”라고 했는데 혹시 세계관이나 작품관이 바뀌었나.

-항상 지향하는 곳은 밝은 곳, 힘찬 곳, 명료한 곳이었다(어떤 것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명료함까지 포함해서). 내가 겪은 것이 있고, 생긴 게 있어서 나의 경로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영화 시작했을 때 내가 가졌던 관심들과 지금의 것들이 달라진 것이 있다. 난 언제나 부분으로서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따로 ‘관(觀)’으로서 얘기하면 과정에 대한 왜곡된 설명이 될 것이다. 영화가 나에겐 최선의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주인공 구경남에 혹시 본인의 모습도 투영이 됐나.

-모델이 있어야 작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모델과 최소한의 거리가 있어야 작업이 가능하다. 그래서 한 인물을 위해서 모델 여럿을 섞기도 하고, 모델 아닌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을 섞기도 한다. 구경남은 (퍼센티지는 모르겠고) 나와 김태우와 다른 언급 안 된 모델들과 내가 읽고 보고 들은 것들의 합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몇몇 인물의 경우, 연기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개의치 않는 건가, 특별한 느낌을 유도하기 위한 건가.

-내가 어떤 건 많이 꼼꼼하고, 어떤 건 조금 설렁설렁한다. 주어진 촬영 조건 속에서 더 중요한 것을 기준으로 오케이를 내면서 찍어간다. 그렇게 보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별로 걸리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이야기나 대사가 앞뒤에서 대구를 이루거나, 약간의 변형을 거쳐 반복된다. 이 기법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있나.

-삶이 일직선으로 나간다고 믿는 것도 대구·반복의 구조처럼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대구가 더 사실적인 삶의 구조일 수 있다. 입력된 해석의 틀이 너무 강해서 우린 삶의 현상을 맨눈으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분으로 봐서는 같지만 둘을 놓고 보면 꼭 다른 점이 보이고, 너무 다른 것이라도 같이 놔두고 보면 꼭 같은 면이 발견된다. 우린 그런 부분의 발견을 통해서 입력된 틀의 허구를 운 좋게 확인할 수도 있다, 가끔.

→감독의 영화를 보면, 현실의 비루하고 약간은 추잡한 모습들이 그럴 듯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모습을 그리는 것은 ‘이런 것도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라고 인정하기 위함인가.

-표현대로 ‘비루하고 약간 추잡한 게’ 우리가 매일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루하지 않고 추잡하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지만…. 난 과장된 사고와 근거 없는 환상 때문에 삶이 불필요하게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사고 과장과 환상들을 끄집어내서 같이 보려 하는 맘이 있다. 그런 맘 때문인지 어떤 삶의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보다 더 자주 선택되는 것 같다.

→여성 관객분들 중에 간혹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다 한번 건드리면 쉽게 넘어오는 것으로 그려져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더라.

-그런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어느 주체적이고 튼튼한 정신의 여자분은 내 영화를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이다. 둘은 뭘 다르게 보는 걸까. 한 분은 (어떤 이유나 목적의식으로) 그 여자 인물의 행동 액면가에 반응하는 것 같고, 한 분은 영화의 맥락과 태도에 감흥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홍 감독의 영화는 대개 현재 시점으로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을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가 있나.

-시간대가 늘어지면 시간 점프가 커지고, 그 사이를 설명 없이 건너가려면 (설명을 할 수는 없고) 뭔가 전형성에 많이 의존해야 해야 할 것 같다. 모른 척하고 그냥 건너갈 수도 있지만 그건 척하는 것 같고, 쿨한 척. 근접 시간대의 미세한 차이 속에서 뭔가를 얘기해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다.

→소위 특급 배우를 잘 기용하지 않는다. 캐스팅의 원칙이나 기준이 있다면.

-대강 이야기가 정해지면 배우들을 만나기 시작하는데, 그 배우란 사람 속에서 어떤 맥을 읽게 된다. 그 맥이란 게 그 사람을 ‘내 식으로 이해하는’ 어떤 기억 속의 인물의 환기같은 건데, 그걸 잡고 내가 미리 준비한 걸 섞으면서 과정을 시작한다. 



→취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취미라고 부를 것은 없다. 첫 영화하고 상금 탄 돈으로 뭔가 사둬야겠다고 해서 피아노를 샀다.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가끔 그걸 5분, 10분씩 치면 재미있다.

→감독의 연애관이 궁금하다.

-연애보다는 삶이 재미있다. 애인보다는 친구가 최고다.

→칸 영화제에 5번째로 가게 된 소감은.

-불러주니 가는 것이고, 내가 작업을 계속하는 데 도움되는 일이려니 생각하고 가는 게 크다.(강아연 기자) 

09. 05. 16. 

 

P.S. 영화는 예상보다 조금 길었지만 예상대로 아주 재미있었다(그런데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한 10명쯤 같이 본 듯하다). 이 저예산 영화에 아마도 무보수로 출연했을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좋았다. 공형진, 유준상 등의 연기. 그러나 압권은 정유미였다. <사랑니> <가족의 탄생> 등의 영화에서 이미 본 배우이고 간간이 그녀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들었지만, 이렇게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인 줄은 미처 몰랐다(스크린에서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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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9-05-1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탄생에서 정유미씨가 무척 눈에 띄더군요. 그러고 나서 사랑니를 우연히 다시 봤는데 거기 있더라구요^^ 어떤 드라마에서 얼핏 봤을 때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메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로쟈 2009-05-17 14:49   좋아요 0 | URL
제가 일본 드라마는 안 봐서요.^^;

딸기 2009-05-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유미라는 배우였군요. 고현정인줄 알았어요.

로쟈 2009-05-17 14:48   좋아요 0 | URL
아, 위쪽 사진은 고현정 맞습니다. 정유미는 좀더 작은 배역으로 나옵니다...

딸기 2009-05-18 23:42   좋아요 0 | URL
위에 쓰신 글에 여자가 두 명 나오잖아요. 위 사진에 남자랑 앉아있는 여자는 고현정인 거죠? 그럼 밑의 독사진은 누구인가요?

로쟈 2009-05-19 00:24   좋아요 0 | URL
독사진이 정유미예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현정 누나는 우리 고향사람(전남 화순에서 국민학교 2학년까지 다녔던가...여하튼)입니다.그 동네에 고씨 집성촌이 있지요.
정유미 누나는 우에노 주리 닮았다는 자명한 산책 님의 말씀인데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음...이 누나도 귀엽네요.
로쟈 님은 제시카를 알았고 저는 정유미를 알았네요.

로쟈 2009-05-17 22:34   좋아요 0 | URL
연기를 한번 보셔야 하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5-1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노 주리도 귀여워요.검색 한번 해보세요.로쟈 님 고향에서 나온 이쁜 연예인은 누구인가요?

로쟈 2009-05-19 00:25   좋아요 0 | URL
글쎄요, 딱히...^^;

노이에자이트 2009-05-19 23:39   좋아요 0 | URL
광주 및 인근 전남 지역출신 이쁜 연예인 엄청나게 많은데...문근영,유빈,한지혜,구하라 등등...그 외에도 수두룩합니다.로쟈 님도 찾아보면 고향출신 연예인이 나올 거예요.

릴케 현상 2009-05-18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우에노 주리라는 이름은 외워둬야겠네요...전 일드를 보는 방법도 몰라요. 만화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말씀드린 건데^^

Kir 2009-05-1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도 정유미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이 친구 정말 매력적이예요. 요새도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몇년 전에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고, 굉장히 호평받은 단편영화가 있었어요. 친구의 추천으로 봤다가 이 아가씨한테 반해버렸지요. 그 다음부터 영화 출연작은 다 챙겨보고 있는데, 이 영화는 아직입니다. 내리기 전에 빨리 봐야될텐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9-05-20 00:51   좋아요 0 | URL
네,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