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학술서'라고 할 만한 책은 단연 <열녀의 탄생>(돌베개, 2009)이다. 주중에 서점에 들렀을 때 표지를 보기는 했지만 '열녀의 탄생'이란 제목만 보고 그냥 지나쳤는데, 리뷰를 보니 강명관 교수의 '대작'이다. 850쪽이 넘는 분량이 대작이란 말을 붙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부제는 '가부장제와 조선 여성의 잔혹한 역사'. 이미 제목과 부제가 내용을 다 짐작하게 해주는데, 그럼에도 물론 중요한 것은 '디테일'이다. 책은 한국사회 여성 차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꼼꼼하게 짚어준다. 리뷰를 읽어보니 문제는 <소학> <삼강행실도> 열녀편, <내훈> 등의 핵심 텍스트들이고, "<열녀의 탄생>은 18세기 이후 종법제에 입각한 가부장적 친족제도가 완벽하게 정립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의 대뇌에 장착돼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 ‘열녀’의 역사를 축으로 삼아 치밀하게 파고든다." 저자의 노고와 열정이 인상적이다. 책은 지난주에 출간된 강준만 교수의 <어머니 수난사>(인물과사상사, 2009)를 떠올리게 해주어, 서평기사를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16) 여성은 조작된다, 지금도 쭉~

누나는 대학, 남동생은 중학교 입학시험을 쳤는데, 둘 다 합격했다. 아버지는 누나한테 진학 포기를 종용했고 공부 잘하던 딸은 거기에 따랐다. 자신을 희생한 누나와 그 남동생의 그 뒤 인생은 흔히 미담기사의 재료가 되거나 인기 있는 방송 드라마로 등장했다. 이런 얘기도 가능하다. 오누이가 있었는데 이번엔 오빠가 대학, 여동생은 중학교에 시험을 쳐 둘 다 합격했다. 가난했던 그 집 어머니가 둘 중 하나한테 학교를 그만두라고 종용한다. 누구한테? 열에 아홉, 아마도 열에 열 모두 여동생 쪽이 아닐까.

얼마 전까지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하며 그런 성차별은 과거지사라고 말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요즘 대학 인문분야 학생들 다수가 여학생이다. 그런데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 여성은 한두 명뿐이다. 교수 공채 때 여성은 아예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된다.” 정치권을 보든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보든, 검사 판사를 보든 우리 사회 힘 있는 분야에서 실세를 점하고 있는 쪽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임금격차와 승진기회, 가사노동 모두 여성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게 우리 현실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아이 많이 낳지 말라고 닦달하더니 이젠 많이 낳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낮은 출산율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비판의 화살이 쏠리는 쪽도 주로 여성이다. 따라서 “작동방식만 다를 뿐 우리는 여전히 가부장제하에서 살고 있다”는 게 강 교수 생각이다.

<열녀의 탄생>(돌베개)은 이 유구한 우리사회의 성차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전적들을 섭렵한 철저한 문서검증을 통해 고고학적·계보학적으로 더듬어 올라간 강 교수의 10여년에 걸친 노작이다. ‘열녀’(烈女)가 무엇인가? “열행(烈行)을 실천한 여성”이다. 열행의 대종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유일하게 공인된(또는 공인될) 성적 상대자(대부분은 남편)에게 자신의 성적 종속성을 천명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학대하거나 신체의 일부 또는 신체 전부를 희생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남편을 위험에서 구하거나 정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를 훼손하거나 목숨을 버리는 행위다.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피와 살을 먹이거나 외간 남자한테 잡힌 손목을 잘라버리는 행위, 개가를 거부하며 코나 귀를 베어버리거나 굶어죽는 행위, 임진·병자 양란 때 겁탈에 저항하다 학살당한 일 등이 이에 포함된다. 나라가 문을 세워 이들을 표창하고 집안의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준 게 정려(旌閭)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정려의 대상으로 뽑힌 열녀는 거의 목숨을 버린 경우다. 선조 이후 열녀 553명 중 임진왜란과 직접 관련된 열녀는 441명이고 이들 중 죽지 않고 열녀가 된 여성은 단 4명, 1%도 되지 않았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열녀나 열행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말조차 없었다.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 ‘절부’(節婦), ‘열부’(烈婦)란 말이 일부 사대부들의 글에 등장한다. 절부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는 여성이며, 열부는 열행을 감행한 남편 있는 여성이다. 열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열행까지 포함한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절부는 아내가 죽어도 새장가 들지 않고 수절한 남편인 ‘의부’(義夫)와 짝을 이뤘다. 고려 때까지만 해도 남편 잃은 여성의 재가, 삼가는 전혀 허물이 되지 않았으며, 수절은 여성에게만 강요된 윤리가 아니라 남녀 모두의 선택이었다. 게다가 결혼한 여성이 남자 집(시댁)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남자가 여성의 친가(처가)에 들어와 사는 게 일반적 관행이었다. 이런 풍경은 조선 전기까지 대체로 유지됐다. 15세기 후반 성종 때의 ‘경국대전’에서 ‘의부’란 말이 사라지고 개가를 하는 여성의 후손들에겐 벼슬길을 극도로 제한하는 등 법·제도상으로는 가부장제가 어느 정도 정비됐으나 본디 윤리적 성격이 강한 열행, 열녀를 법·제도로 장려하고 강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국가를 가족의 연장으로 본 조선의 성리학 사도들이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본디 대등했던 ‘남성=여성’ 관계를 ‘남성>여성’의 위계적 관계로 바꾸고, 여성들이 그것을 자연스런 인간본성으로 받아들인 뒤 남성에 대한 종속성을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목숨까지 내던지게 만드는 더욱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 종속적 윤리의 내면화, 이념적 세뇌를 위한 텍스트, 유교적 가부장제의 욕망을 윤리의 이름으로 여성의 대뇌에 설치해 그것을 끝없이 복제함으로써 종속적 여성을 대량으로 자동제조해내는 프로그램이 바로 국가-남성이 독점한 인쇄물이었고, 그 대표가 <소학> <삼강행실도> 열녀편, <내훈>이었다.  

<열녀의 탄생>은 18세기 이후 종법제에 입각한 가부장적 친족제도가 완벽하게 정립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 텍스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여성의 대뇌에 장착돼 어떤 파급효과를 낳는지, ‘열녀’의 역사를 축으로 삼아 치밀하게 파고든다. <소학>은 결코 아이들 교육용 책이 아니었다. 난해한 남성용 한문서적인 소학(나중에 언해본도 나옴)은 성리학 사도들을 길러내는 의식화 작업의 실천원리였다. 경국대전의 차별적인 여성 조항들이 모두 주자가 중국 고대 고전들에서 따와 편집한 이 소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역시 대부분 중국 <고금열녀전> 등에서 얘기를 따와 그 가운데서 능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부분들을 제거해버리고 재편집한 <삼강행실도> 열녀편은 여성의 종속성 내면화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여성용 책이다. <내훈>은 주로 위기시의 열행을 기록한 <삼강행실도>와는 달리 일상적인 열행을 담았다.

오누이 이야기는 과거지사가 아니다. 강 교수에 따르면 “‘나’는 권력적 타자에 의해 제작된 존재”다. 예전에는 국가-양반(남성)이 <소학>과 <삼강행실도>와 <내훈>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들을 양산해냈다면, 오늘날엔 국가-자본(테크놀로지)이 교육과 미디어라는 권력기구를 통해 그들의 욕망을 대뇌에서 대리복제하는 개인들을 양산해내고 있다. 따라서 나는 정말 나일까? <열녀의 탄생>은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한승동 선임기자)   

» 가족계획 지도원(오른쪽 끝)이 농촌 여성들을 상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 가족계획사업이 시작된 1962년 당시 교육 내용은 산모 나이 35살까지 3년 터울로 4명의 자녀만 낳자는 것이었다.

한겨레(09. 05. 09)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만드는 사회

‘한국 생활사’ 집필을 평생 작업으로 구상중인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농축된 한국형 가족주의 시스템의 모순을 파헤쳤다. 책 제목이 <어머니 수난사>다. <입시전쟁잔혹사>에 이어 넉 달 만에 선보인 생활사 단행본이다. 그런데 왜 ‘수난사’인가. 강 교수가 볼 때 한국의 어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각개약진해야 했던 사회에서 가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과잉 순응’ 전략으로 ‘투사’가 됐다. 이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입시전쟁 투사, 치맛바람 투사, 자녀결혼 투사, 부동산 투사. 전투의 일선으로 내몰린 이들에겐 사는 게 축복일 리 없었다. 싸움으로 점철된 역사는 고난의 역사, 시련의 역사였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자기희생’의 상징이자 실체로 자리잡았다.  

이런 어머니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 사건으로 강 교수는 한국전쟁을 꼽는다. 전쟁은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를 파괴하고 피붙이의 중요성을 실감케 함으로써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주의를 한층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물론 ‘강한 어머니 만들기’에는 정부도 한몫했다. 1955년 정부는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는데, 이를 통해 전파시키려고 했던 것은 어머니의 끊임없는 인내와 희생이었다. 해마다 어머니날이 오면 대통령 담화가 발표됐고, 언론은 “자녀의 빛나는 생을 위하여는 자기 몸을 초개처럼 내던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앞다퉈 강조했다. 이즈음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부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자유부인>이 반향을 일으키자, 정부와 사회단체들은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허벅지 살을 도려내 복약시켰다는 ‘허벅다리 부인’의 사연을 발굴해 맞세우기도 했다.

6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더불어 전투적인 가족계획이 추진되면서 가족 구성과 어머니의 구실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돈 쓰고 로비도 불사하는 것을 가리켜 ‘치맛바람’이라 이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정부와 언론은 공모한 듯 거세게 치맛바람을 질타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모든 궂은일은 어머니가 떠맡게 하는 구조를 온존·강화하면서 그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문제의 책임을 어머니들에게 돌리는 수법은 이후 지속되는 어머니 수난사의 핵심을 구성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복부인’과 ‘신사임당’이 공존한 70년대를 거쳐 입시전쟁에 질적 전화가 이뤄지는 80년대가 열렸다. 입시전쟁도 점차 제도화·체계화의 길을 밟는데, 더는 어머니의 희생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계급전쟁’의 양상을 띤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어머니가 동원할 수 있는 경제력의 크기와 현명함 또는 영악함”이 중요했다. 8학군 신드롬과 함께 중산층의 강남을 향한 질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97년 외환위기는 ‘강한 어머니’를 다시 호명했다. ‘남편 기 살리기’를 강조하는 신현모양처론이 유행하는 가운데 한쪽에선 ‘아줌마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아줌마 때리기는 기혼 중년여성의 가족 이기주의와 공공의식 부재를 문제삼았다. “어머니는 찬양하고 아줌마는 때려라”였다. 아줌마를 어머니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런 심리를 강 교수는 ‘자궁 가족’ 이기주의로 규정한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아름다워도 너의 어머니가 너를 위해 벌이는 투쟁은 추하다는 이중적 인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런 어머니 수난사를 야기한 주범으로 ‘가족주의’를 지목한다. “자궁 가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일부 어머니들은 ‘복부인’이 되기도 했고 ‘마담뚜’의 도움을 받아 ‘정략결혼’의 수익성을 최대화하고자 했다. 일부 어머니들은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했고, ‘원정출산’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럴 경제적 능력이 못 되는 어머니들은 ‘우골탑’ 대신 ‘모골탑’을 쌓았다. 많은 어머니들이 극성 엄마, 속물 엄마, 부패 엄마 노릇을 불사했다.”

문제는 이렇게 험난한 어머니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말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인데, 강 교수는 이를 일러 “모두가 희생자요 모두가 불만인 체제”라고 한다. 비극은 이 체제의 덫을 벗어날 속시원한 방도를 누구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진보진영을 향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투쟁의 틀을 벗어나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라”고 주문한다. “당장 어머니들의 육아 부담을 제도적으로 덜어주는 게 백날 ‘신자유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 극복책이 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어머니가 투사가 되어야만 하는 잔혹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세영 기자)  

09. 05. 16. 

 

P.S. '여인 잔혹사'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영화가 두 편 있다. 한국 최초의 칸느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한 이두용 감독의 <물레야 물레야>(1983)와 정진우 감독의 <자녀목>(1984).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영화들인데, 짐작엔 <물레야 물레야>에 대한 호평 때문에 <자녀목>이 제작된 게 아닌가 싶다. 두 편 다 원미경 주연작이며, <자녀목>은 그해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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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5-16 16:46   좋아요 0 | URL
'열녀' 이야기도 나왔으니 '효자/효녀/효부'에 대한 책도 나와야 할 것 같군요^^ 사실 조선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녀'도 중요하지만 '효자/효녀/효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로쟈 2009-05-16 21:09   좋아요 0 | URL
네, <효경>에 대한 비슷한 연구서도 나올 법하네요...

딸기 2009-05-17 14:06   좋아요 0 | URL
저는 잘 몰랐는데, 강명관 교수가 대단한 분인가봐요.
책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

로쟈 2009-05-17 14:51   좋아요 0 | URL
한겨레 쪽에도 칼럼을 쓰시죠. 연구서 네 권을 한꺼번에 펴내기도 하시고...

노이에자이트 2009-05-17 15:31   좋아요 0 | URL
강명관,강준만 둘 다 기성논리에 도전하는 지식인의 전형이지요.그리고 글 읽는 맛이 있어서 좋아요.강명관의 한겨레신문 토요일 고정칼럼은 끝난 것 같던데요.

로쟈 2009-05-20 21: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칼럼들을 묶어도 읽을 만한 책이 나올 거 같습니다...